이현수 한국폴릭텍대 청주캠퍼스 학장

이현수 한국폴릭텍대 청주캠퍼스 학장

설 연휴에 만난 조카는 내년 특성화고 졸업을 앞두고 대학 진학과 취업 사이의 갈림길에서 나이의 질량보다 더 무거운 삶의 고민을 안고 있었다. 자존감이 지극히 낮아진 표정도 그러려니 와 ‘공돌이’란 호칭을 받고 싶지 않다는 푸념 앞에서는 가슴이 먹먹했다‘공돌이’란 이 고약한 비속어는 사전적 의미도 불순했다. 포털의 어학사전을 찾아보니 ‘공장에서 일하는 남자를 낮잡아 이르는 말’이라고 나온다어릴 적 성적이 좀 떨어졌다 싶으면 어김없이 들었던 “기술이나 배워라”의 사농공상(士農工商관념이 그 배경이다제조업 근로자를 비하하는 인식도 근간에 깔려있음은 물론이다한국 사회는 여전히 그 통속적 관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한국에서 대학은 ‘인생의 훈장’이다학생들에게 공동체와 인류애 보다 승자독식과 명문대 입학이 성공이라고 인식시키는 대학의 서열화가 얼마나 위험한 직업관과 세계관을 낳는지 사회 기득권층의 일탈을 우리는 연일 보고 있지 않은가정녕대학 진학만이 생존이며 행복해지는 능수인가?

미국의 저명한 명상 컨설턴트인 샬리니 발 박사는 지난 2008년 미국의 금융위기를 초래한 10대 기업의 CEO와 가장 책임 있는 기업으로 존경받는 10대 기업 CEO의 학력을 비교하는 흥미로운 조사를 했다골드만 삭스 등 금융위기를 일으킨 10개 기업의 CEO는 모두 하나같이  명문대 출신이었던 반면파타고니아와 더바디샵탐스와 같은 미국에서 가장 책임 있는 기업의 CEO는 단 두 명만이 명문대 출신이었다나머지 여덟 명 중 두 명은 미국의 가장 성공적인 대안 대학교인 햄프셔 대학을다른 한 명은 배스 대학을 졸업했고 나머지 다섯 명은 모두 학교 중퇴자였다. 금융위기의 책임이 있는 경영자들은 경쟁에서 이기고 명문대를 나와 초일류  기업에 입사했다그러나 남보다 더 많은 돈을 버는 것이 목적이었던 그들은 자국뿐 아니라 세계인의 삶을 위기에 빠트렸다심지어 그들은 물러날 때마저도 막대한 퇴직금을 챙긴 사실이 드러나 공분을 샀다반면 존경받는 기업의 경영자들은 대부분이 대안 교육을 받거나 학교를 박차고 나온 이들이었지만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윤리경영의 롤 모델이 되었다그러나 우리에겐 학력 서열 없는 신분상승의 공정한 사다리가 놓여져 있는가? 

우리 사회에서 인간 개개인의 존엄성의 훼손은 언제부터인가 일상이 되었다. 모든 영역에서 절대다수의 사람들이 존엄을 침탈당하며 살아간다“공부 안 하면 저렇게 된다”라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뱉는 부모들이 넘쳐난다10분만 더 공부하면 아내 얼굴이 바뀐다” 같은 반인권적 언어를 급훈으로 내거는 교사들이 여전히 존재한다인성과 공동체의식은 도덕 교과서상에 나오는 텍스트일 뿐이다과거와 달라진 부분은 이러한 사회문제를 심각하게 생각하는 이들이 늘어났다는 점이다. 

인간은 경제적 손실만큼이나, 아니 그 이상으로 존엄의 훼손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존재다성적에 의해 계급을 결정하고 순위를 규정당하는 것은 소수를 제외한 대다수가 존엄하지 못한 사회이다극소수만 존엄해지는 것이다그 정점에 학력 위계 사회가 있다학력의 위계질서에 적극적 혹은 소극적으로 연루된 우리 모두에게 솔직하게 추궁해보자명문대를 졸업한 이들이 누린 모든 편익은 해방이후 생존만을 위해 살아야 했던 우리 부모 세대의 숱한 ‘까막눈’들과 이른바 가방끈 짧은 사람들의 설움을 딛고 그 위에 서늘하게 조성된 것이다만약 그 학력의 위계질서가 정당한 질서라면 문제 될 것이 없을 것이다그러나 그것이 정당한 질서였는가배운 자들은 더 지혜로웠던가그들이 삶의 진실과 정의에 더 근접해 있는가그들은 과연 그들을 위해 스스로를 희생시킨배우지 못한 그들의 부모 세대들보다 나라에 대한사람에 대한 더 높은 진정성을 가지고 있는가?     

우리의 일터와 우리의 삶을 실질적으로 바꿀 수 있는 건, 정치로는 태부족하다인간은 혼자서 존엄할 수는 없다학교의 성적만이 아닌 각 분야의 땀의 노력들도 존중받는 공정한 사회에서 만이 함께 존엄해질 수 있다이른바 정치권의 거대담론인 적폐 청산도 열심히 일하는 이들의 삶이 달라지는 것이어야 한다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라는 보편적 윤리의식을 우리의 교육이 기여하지 못한다면‘공돌이’라는 비속어에 상처받는 청춘이 여전히 존재한다면끝내 가야 할 공정사회를 위해 대학은 무슨 의미가 있는지를 우리에게 추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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