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희팔 논설위원 / 소설가

(박희팔 논설위원 / 소설가) 욱둥이 때문에 동네사람들의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처음엔 남의 일 같이 여겼다. 아니 남의 일이었다. 내 자식이 아니고 동네 초입의 장서방의 자식이니 내가 하등 신경 쓸 필요 없는 그 집일이라 생각했다. 무슨 말인고 하니, 욱둥이가 내 자식으로 태어나지 않은 것을 천만다행으로 여겼던 동네사람들이 지금은 그 애의 일이 동네사람들 모두의 관심거리가 됐다는 말이다. “욱둥이 말여 시집갈 나이는 훌쩍 넘었는디 저러다 영영 시집두 못가보고 마는 거 아녀?” “그러니 어떡하나 도대체 데려간다는 사람이 나와야제.” “아녀 그래두 그냥 보구만 있을 게 아녀. 우리 모두가 힘써봐야 하는 것 아녀?” “장서방 그 사람 제 자식두 어떻게 못해 보는데 우리가 뭘 어떻게 하느냐구?” “그렇긴 하네만 그래두 우리 동네일인디….”

욱둥인 계집애인데 사내애보다도 더 욱기가 있다고 해서 붙여진 별명이다. 별것 아닌 일에도 참질 못하고 욱하는 성질을 부릴 때면 그렇게 사납고 괄괄할 수가 없다. 그래서 아버지 장서방이 그 성질을 잡아보겠다고 하루는 작심하고 몰아세웠다. “이것이 왜 이리 성질이 사내애보다 더 지랄여. 기집애면 기집애답게 안존한 맛이 있어야제. 어디 한 번 애비한테두 성질머리 부려봐라!” 하고선 머리채를 잡고선 마구 흔들어댔다. 그런데 한참을 그러는데 애가 아무런 반응이 없다. 이상타 생각하고 멈추었는데 애가 입에 거품을 물고 눈은 딱 감은 채 새파랗게 질려 있는 것이다. “아니 얘가 왜 이려?” 장서방은 놀라서 소리소리 질렀다. ‘누구 빨리 와봐! 누구 빨리 와봐!’ 집안이 발칵 뒤집히고 동네사람들이 모여들고 급기야는 읍내 의원까지 와서야 정신이 돌아왔는데, 제 성질을 못 이겨 정신 줄이 잠시 끊어졌었다는 것이다. “아니 그래두 그렇지 그만한 일 가지고 곧 죽어 넘어가는 꼴이 돼 그래!” 아무래도 믿기지 않는다는 것이다. 지난 갈이다. 동네 제 또래인 고등학교 2학년짜리 남자 아이가 대처에서 놀러 왔다는 왈패에게 맞아 얼굴이 피투성이가 됐었다. 이를 들은 욱둥이가 욱하고 일어나더니 버스정류장까지 쫓아가 그 중 우두머리라는 놈의 사타구니를 잡고 동네 곳집(상여를 보관하는 집)으로 끌고 왔다. 이놈이 처음엔 계집애가 그러니 같잖게 보고 코웃음을 치며 순순히 끌려 왔는데 후미진 산기슭 괴괴한 곳집 안으로 들어와 다짜고짜로 욱둥이의 머리에 얼굴을 치받히면서부터는 정신이 혼미해졌는지 무릎을 꿇는 거였다. 그런 녀석에게 연이어 그 특유의 우락부락한 표정으로 으르며 난폭하게 위협했다. 도둑놈을 때려서 그 죄를 불게 하듯이, 왜 순진한 시골동네 아이를 이유도 없이 때렸느냐? 어디 한 번 이 시골년한테 당해봐라! 등등 낱낱이 캐묻고 욱대기고 따져서 잘못이나 죄를 털어놓게 했었다. 그런 앤데 이렇듯 제 아버지의 가벼운 으름장에 혼절을 하다니 믿기지 않는 일이다. 이후 제 부모들은 섣불리 건드리질 못하고 무슨 일을 하든지 그냥 내버려두었다. 하지만 동네사람들은 욱둥이의 이 점을 희한타 여기고 머리를 맞댔다. “그 애 성질에 제 애비의 그만한 일에 혼절하면서까지 아무런 대항을 하지 않다니 참 이상타.” “그러게 말여 제 또래나 낯선 사람이 그랬으면 억지를 부려서라도 덤벼들 승깔머린데 말여.” 그러다 한 사람이 무릎을 탁 치며 말했다. “맞어, 맞어, 참 그런 게 있네!” “무슨 소리여?” “제 아비이고 어른이니께 참았던겨. 그러자니 제 성질에 못 이겨 혼절한 게야. 틀림없어 잘 생각들 해 보게나 제 부모나 동리어른들에겐 한 번도 제 성질을 함부로 부린 적 없잖여.” 이에 모두 다 그렇다 여기고 그렇다면 아직까지 서른이 가깝도록 그 욱기 땜에 임자를 만나지 못했을 뿐 알고 보면 성정 올바른 욱둥이의 혼인길을 다 함께 터보자는 의논에 이른 것이다.

이장이 장날에 이웃 몇 동네의 이장들을 만난 술자리에서 욱둥이의 이야기를 했다. 그랬더니 한 이장이 대뜸 나선다. “우리 동네에 말여 칠팔월 수숫잎 같이 여려빠진 암사내가 하나 있네. 이 녀석이 어찌나 성질이 약해빠진지 딴기적기가 이를 데 없어.” “딴기적다니?” “사내놈이 기력이 약해서 기운차게 남을 앞질러 나가질 못한단 말여” “그런데?” “그런데 말여 이놈이 그래도 위아래를 알아보는 바른 놈이긴 한데 그 암사내란 꼬리표 때문인지 서른이 넘도록 장가를 못가고 있어….” 아직 그의 말이 안 끝났는데 다른 이장이 주먹을 불끈 쥐곤 술상을 탁 친다. “볼 것 없네 둘이 딱 맞는 연분일쎄 임자들 만났어!” 그러면서 두 이장을 쳐다본다.

술판을 서둘러 물리고 각기 동네로 향하는 두 이장의 발걸음이 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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