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복회

김복회 <청주시 오근장동장>

나는 안동김씨 군사공파 24대 손이다. 늦은 결혼을 한 아버지는 첫딸인 나를 낳고 이름을 짓기 위해 고심 끝에 한학자에게 찾아가 이름을 지었다 한다. 그래서 지은 이름이 ‘복(福)회(會)’다. 끝자리는 항렬을 따랐다. 항렬을  따른 것이라지만 이름의 끝자리가 회자이다 보니 부르기가 여간 힘든 게 아니다. 격음화 현상이 일어나 세게 발음을 해야 하고 정확하게 부르기가 어렵다. 이런 연유로 내 이름에 대한 사연이 많다.
60대에 들어선 지금까지 내 이름을 정확하게 쓰는 이가 아주 적다. 아버지는 늦게 얻은 딸이기에 더욱 복을 모으며 편안하게 살라고 그렇게 지었지만 제대로 부르지 않고 항상 ‘복희’라 부르고 그리 쓴다. 중학교 1학년 때 국어시간에 출석을 부르는데 내 이름을 ‘김복희’라고 부르셨다. 나는 “선생님, ‘복희’ 가아니고 ‘사회’할 때 쓰는 ‘회’자예요”라고 말을 했다. 하지만 그 다음에도 또 ‘복희’라고 부르셨다. 난 포기하고 말았다.
학교를 졸업하고 취업을 해서 근무를 할 때도 직원들이나 지인들에게 항상 이름을 댈 때 ‘희’가 아니고 모을 ‘회’자라고 강조를 해야만 했다. 교육원에 교육을 갈 때에도 담당자의 실수로 ‘희’라고 쓰인 명찰을 받으면 그 중요한 점을 꼭 찍어 다시 받곤 했다. 같이 근무했던 직원들은 내가 늘 강조하기 때문에 잘 알고 있는데 다른 과로 이동해 근무를 하게 되면 또 영락없이 점을 빼고 쓴다. 그럴 때 마다 난 목소리를 높여서 ‘희’가 아니고 ‘회’라고 열변을 토한다. 그러면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아, 난 여자라 ‘희’인 줄 알았다”고 한다.
때로 전화민원을 받아서 처리할 때는 ‘복혜’로 돌변하기도 한다. ‘기쁠 희(喜)’도, ‘은혜 혜(惠)’도 다 좋지만 점 하나의 차이라도 ‘희’자보다는 ‘회’자가 난 더 좋다. 우리 집은 형제가 7남매다. 딸이 여섯이나 된다. 우리 아버지가 첫딸인 나와 셋째 까지는 항렬을 따져서 이름을 지어 주셨다. 복회, 순회, 명회….
아들을 기대하셨던 아버지는 계속 딸을 낳자 그 다음부터는 복남, 영순, 용자 라고 이름을 지으셨다. 집념이 강하신 우리 아버지가 드디어 아들을 낳으시자 집안에 경사가 났다고 ‘경사 경’에 ‘모을 회’를 넣어 ‘경회’로 지었다. 어릴 때 셋째동생이 불만을 토한 적이 있었다. 여자 이름을 부르기 힘들게 지었냐면서 다음에 우리가 커서 연애할 때 남자친구가 “명회 씨”라고 부를 때 얼마나 어렵겠냐고, 좀 예쁘게 지어 주시지 하고, 그렇게 말했던 동생도 이제는 그 이름조차 불러주는 이 없는 애들의 엄마가 되었을 뿐이다.
중학교 졸업반으로 기억되는데 집에 가기위해 학교 교문에서 버스를 기다리는데 친구가 나를 큰소리로 ‘김복회’라고 불렀다,  그러자 그 옆에 있던 다른 애가 “어머, 이름이 ‘진돗개’여? 했다. 그 친구의 발음이 이상했던지 아님 듣는 그 애의 청각이 이상했던지 내 이름이 황당하게도 ‘진돗개’가 돼 버렸다. 정말 이런저런 에피소드가 많은 이름이다.
예전에는 개명허가가 매우 힘들었다. 그러나 지금은 참으로 많이 수월해져 너도 나도 개명을 하고 있다. 주변엔 전 가족이 개명을 한 경우도 있다. 내 이름처럼 발음하기가 좋지 않아서, 이름 때문에 출세를 못한다고, 몸이 아프다는 등 각양각색 사연도 참 많다.
그러나 내 이름이 비록 부르기 힘들어도 지어주신 아버지의 바람대로 ‘복을 모으는 사람’으로 살고 싶다. 이세상 주어진 삶을 열심히 살다가 하늘나라에 가서 아버지를 만났을 때 아버지가 지어주신 이름값하고 왔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도록 살고 싶다. 오늘도 지인의 결혼 축의금 봉투에 나는 한자로 이름을 꼭꼭 눌러쓴다. 
金福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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