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핵 폐기문제를 둘러싼 한반도 안보 위기감이 수그러들지 않고 있는 가운데 미국 트럼프 행정부의 한국에 대한 통상 압력이 거세다. 미국은 핵위협 제거를 구실로 선제공격도 불사하겠다며 북한을 압박하고 남한에 대해서는 강력한 보호무역조치로 통상압력을 가하고 있다. 미국이 정치적으로는 북한을, 경제적으로는 남한을 압박해 한반도 전체를 틀어쥐고 뒤흔들고 있는 모양새다. 미국은 지난달 한국의 세탁기·태양광 제품에 긴급수입제한 조치를 발동한 데 이어 지난 16일에는 한국산 수입 철강에 대한 고강도 수입 규제안을 내놨다. 미국에 본사를 둔 한국GM은 군산공장을 폐쇄하겠다는 방침도 발표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GM의 군산공장 폐쇄 방침을 자신의 업적이라고 치켜세우고, ‘재앙’이라며 한미FTA 폐기까지 들먹거리고 있다. 미국이 동맹국이면서 우리에게 과연 이래도 되는가 하는 우려 섞인 불만을 사기에 충분한 대목이다.

특히 미국은 철강수입 규제 대상 12개국 중에서 주요 대미 철강 수출국인 캐나다, 독일, 일본 등은 빼고 한국만 포함시켰다. 야권은 미국에 밉보여 동맹국 중 우리만 포함된 게 아니냐는 우려를 제기하고 있다. 우리 정부가 평창동계올림픽을 계기로 북한에 대한 유화정책을 펴는 데 대한 미국의 불만이 표출된 것이라는 말도 흘러나온다. 한미동맹의 균열로 인한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반면 한국이 미국의 철강수입규제 대상국에 포함된 것은 최근 몇 년간 대미 철강수출량이 급증했고, 이에 따라 미국이 한국을 중국산 철강의 우회 수출국으로 지목했기 때문이어서 한미동맹과 통상압력을 직접 연결시키는 것은 무리라는 시각도 만만치 않다.

그러나 비즈니스맨 출신인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 핵문제를 지렛대로 삼아 한국을 압박해 통상 부문 협상에서 우위를 점하는 전략을 구사하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마저 떨쳐 버릴 수는 없다. 미국 정부의 보호무역주의와 이에 바탕을 둔 초강경 통상 압력은 이미 예고됐던 일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초기부터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웠다.

지난해 12월 트럼프 행정부는 미국의 경제적 이익을 위해서는 무엇이든 하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밝혔다. 지난 12일엔 일본과 한국을 거론하면서 “동맹이지만 무역에서는 동맹이 아니다”고도 말했다. ‘통상은 통상, 동맹은 동맹’이라는 투트랙 전략을 선언한 셈이다. 이에 대해 정부는 단호한 입장을 내놓았다. 미국의 부당하고 불합리한 보호무역 조치에는 국제규범에 근거해 WTO제소 등 당당하게 대처하겠다는 의지를 강력하게 밝혔다.

정부는 미국의 투트랙 전략에 맞춰 대북 핵문제는 강력한 한미동맹을 기반으로 공조하고, 통상문제는 국익 우선의 냉철한 논리로 대응할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행정부가 북한 핵문제와 한반도 안보문제를 빌미로 한국과 통상 협상에서 이득을 취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국가 위기 상황에서는 여야가 따로 없다. 미국의 전방위적 통상압박에 거국적으로 대처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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