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경 <청주시흥덕구 민원지적과>

김민경 <청주시흥덕구 민원지적과>

나에게는 절대 잊혀지지 않는 계절이 있다. 바로 2012년의 봄이다.
“여보~빨리 일어나 봐! 나 배가 너무 아파! 병원 가야 할 것 같아!”
나는 새벽 4시가 지난 시각에 남편을 다급히 깨워 근처 종합병원 응급실을 찾아갔다.
검사결과를 기다리며 남편과 나는 급성장염이 아닐까 생각하고 있었지만, 의사는 충수염(우리가 흔히 말하는 맹장염)이라는 충격적인 말을 했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그때 임신 6개월이었기 때문이다.
남편과 나는 의사의 말이 도저히 믿기지 않아서 몇 차례를 되물었다. ‘감기약은커녕 커피 한 잔도 조심해왔는데, 지금 맹장수술을 하면 엑스레이와 마취약과 진통제를 우리 아기가 다 어떻게 견뎌내라고…!’
순식간에 일어난 이 청천벽력 같은 사실 앞에 온몸이 떨리고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최대한 태아에게 무리가 없게 수술을 진행하겠다고 이야기하는 의사에게서 받은 수술동의서에는, 수술로 인한 태아의 기형이나 유산 가능성에 대한 고지가 있었고 이를 본 남편은 선뜻 사인을 하지 못하고 당황하여 할 말을 잃고 서 있었다.
나는 남편을 붙잡고 울다가, 문득 평소에 진료 받고 있었던 동네 산부인과 선생님이 떠올랐다. 진료 때마다 웃음 진 얼굴로 세심한 부분까지 살펴주시던 그 선생님에게 수술을 받아도 아기가 괜찮다는 말을 들으면 안심이 될 것 같았다. 그래서 무작정 그 산부인과 병원에 전화를 걸어 야간당직 간호사에게 제발 의사선생님과 통화할 수 있게 해달라고 통사정을 했다. 무리한 부탁인 줄도 모르고 내 절실함만 호소하며 간호사와의 전화를 끊고 나서 5분 정도의 시간이 지나자, 전화가 왔다.
“안녕하세요? 담당의사 000입니다~아이고~세상에 얼마나 놀라셨어요! 그런데 어머니, 아기는 괜찮아요! 저는 그런 경우 종종 봤어요. 엄마가 겁먹으면 아기도 무서워하니까 마음 편하게 하시고, 담당의사 믿고 수술 잘 받으세요.”
나는 의사 선생님의 전화가 너무 고마워서 또 한바탕 눈물을 쏟았다. 지금 생각하면 산모에게 그렇게 말을 해주는 것이 부담스러운 일일 수도 있는 것인데, 어쩌면 그 이른 시간에 그렇게 친절하게 전화를 해 줄 수 있으셨는지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너무나 감사한 일이었다. 아무튼 나는 그 전화통화로 인해 걱정을 떨치고 수술을 잘 받을 수 있었다.
요즘 맹장수술은 흉터가 남지 않도록 복강 경으로 하는데 이는 공기를 주입하는 과정에서 복압이 올라가기 때문에 태아에게는 위험하여 나는 국소마취를 하고 의식이 있는 채로 일반 절제술을 받았고, 수술 후에도 진통제를 제대로 쓰지 못해 너무나 아프고 힘든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뱃속의 아기가 그 모든 것을 견디게 해주었고, 수술도 회복도 잘 되었다.
그리고 세 달 뒤, 나는 동네 산부인과에서 누구보다 건강한 아들을 자연분만으로 낳았다.
그 때도 그 의사선생님은 “정말 고생 많으셨다”며 내 손을 잡아주어서 얼마나 눈물 나게 고마웠는지 모른다. 맹장수술을 잘 끝내긴 했지만 과연 건강한 아이를 무사히 잘 낳을 수 있을까 하는 염려로 하루하루 애타게 보낸 시간들을 마치 모두 이해받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별 다른 말의 기교가 없어도 “얼마나 놀랐냐”, “얼마나 고생했냐”는 그 한마디가 당시의 나에게는 정말 큰 위로가 되고 힘이 되었다. 추운 겨울날씨 같았던 내 마음이 한 마디 말로써 순식간에 봄날이 되었던 그 날의 기억을 나는 오래도록 잊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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