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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칼럼-‘외설-예술 경계’ 판정 필요한가?<이상주>
동양칼럼-‘외설-예술 경계’ 판정 필요한가?<이상주>
  • 이상주
  • 승인 2018.02.26 2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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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주 중원대 교수

(이상주 중원대 교수) 예술과 외설의 경계를 판정하는 기준을 세우는 것이 필요한가? 취업시험, 자격시험, 공산품 제작에도 기준이 있다. 음주단속, 국전심사에도 기준이 있다. 문학작품의 평가, 미스코리아 선발에도 기준도 있다. 이 세상에 기준이 없는 것은 없다. 왜 기준을 만드는가? 공정성과 질서를 유지하고, 객관적으로 엄정하게 평가하며, 능률과 질을 향상시키기 위해서다.

먼저 사람이 외설과 예술의 시비를 유발하게 하는 성행위 장면을 다루는 심리적 이유를 제시한다.

첫째, 인간은 본래 알몸으로 태어났다. 그래서 본래대로 홀딱 벗고 알몸이 주는 부드러운 촉감을 즐기며 극대적인 성적 쾌락을 오감으로 만끽하고 싶어 한다. 둘째, 남이 안하는 기이한 체위 새로운 기교를 부려, 야릇함과 짜릿함을 느끼며 남과는 유별난 사람이라는 자기도취 우월감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셋째, 남자는 여자를 강간 정복하고 싶어 한다. 여자는 강간당하는 피학적(被虐的) 쾌락을 느끼고 싶어하는 측도 있다. 이런 욕구를 직접 체험하기 힘들기 때문에 남의 성행위 장면을 보면서 대리만족한다. 넷째, 본래 관음증이 있다. 남이 하는 음탕한 행위와 그를 표현한 대상물을 보면서 대리 쾌락을 즐기고 싶어한다. 그래서 성행위를 다룬 표현물들을 만들어 낸다.

외설과 예술을 구분하는 기준도 당연히 있어야한다. 외설과 예술을 구분하는 기준의 수립이 필요한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예술의 정의를 알아야 외설을 배제하고 시간 낭비 없이 그 기준에 맞춰 수준 높은 예술을 창작할 수 있다. 둘째, 예술 수준에 맞춰 예술을 추구하는 예술인구가 증가하여 예술이 더욱 발전할 수 있다. 셋째, 기준에 맞춰 작품을 평가하여 예술의 객관적 신뢰도를 높일 수 있다. 넷째, 감상자에게 상상력과 아름다움을 느끼게 해주어 정신세계를 풍요롭고 고아하게 해준다. 다섯째, 창작자와 감상자가 예술의 정의를 올바로 인식해야 서로 긍지를 갖고 예술수준과 문화수준이 높은 사회를 지향할 수 있다.

다음에 요약인용한 두 신문기사는 각자의 판단에 맡긴다. 조선일보 1999년 3월 30일 화요일 19면. “아듀 20세기” 藝術과 猥褻의 차이. 표현의 자유 그 오용남용의 사례. 1957년 미국 연방대법원은 마찬가지로 외설시비에 휘말렸던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와 관련 “외설적이란 당대의 도덕적 기준에 비추어 그 전체적인 주제가 일반인으로 하여금 성적 충동을 불러 일으키는 것”이라며 그토록 난해한 예술소설을 억누르던 외설의 굴레를 벗겨주었다.

스포츠서울 2000년 3월 16일 목요일 17면. 첫째, 비디오대여점에서 큰소리로 찾으면, 장면이 생각나면, 보고나서 눈물이 나면, 감상하면서 마음이 흔들리면 예술. 둘째, 진열장에서 조용히 꺼내면, 제목만 떠오르면, 군침이 돌면, 몸이 움직이면 외설이라 했다.

흔히 문학예술이라 말한다. 문학작품에서도 표현미를 따진다.

예술도 마찬가지다. 그 기준은 언제나 은유와 상징이다. 진리는 객관적 보편성이 인정되는 이론이다. 필자는 위와 같은 동양의 전통적인 문학예술관인 은유와 상징을 기준으로, 성행위를 다룬 표현물에 대해 외설과 예술을 판정하고자 한다.

첫째, 남녀가 성관계하는 장면을 직접적 직설적으로 표현한 것은 외설이다. 그런 그림은 춘화, 음화이다. 둘째, 예술은 다음단계에서 성적 결합행위가 전개된다는 사실을 상상할 수 있게 암시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1970~80년대 영화에서 남녀가 알몸으로 포옹하고 그 여인이 격렬하게 탄성을 지르며 요동친 후 땀에 젖은 남녀의 몸을 비쳐준다. 전통혼례에서 신방을 차릴 때 신부의 족두리와 저고리를 벗기고 치마만 남긴 신부를 눕히는 장면까지만 보여준다. 셋째, 성행위 장면을 직접 표현하지 않고 대체적 방법이나 상징물을 통해 간접 비유적으로 표현한다. 물레방아나 절구공이로 떡방아 빻는 장면, 풀무질하는 장면 등으로 대체한다. 넷째, 신윤복의 “혜원전신첩”중의 ‘사시장춘(四時長春)’을 보자. 제목이 암시한다. 대낮에 닫힌 방문 앞 댓돌 위에 남녀의 신발 네 짝이 놓여있다. 술상을 들고 오던 여동(女童)이 방문 앞 마당에 멈춰서있다. 그 새를 못 참고 방안에서 운우지정을 즐기고 있음을 짐작하게 했다. 그외에 자연경물을 통해 남녀가 음양을 교융하는 장면을 상상하게 했다. 이게 예술이다.

윤을 내도 자갈돌과 옥돌은 색깔이 다르다. 노란 빛이 나도 황금은 황금이고 상골은 상골이다. 외설은 외설이며 예술은 예술이다. 예술을 아는 고식(高識)의 예술가는 고도의 연금술로 고순도의 황금을 생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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