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아롱

박아롱 <변호사>

평창 동계올림픽 여자 피겨 경기가 열리고 있던 강릉아레나 관중석에 낯익은 얼굴이 보였다. 그녀는, 그 날 경기한 선수들 중 두 번째로 어린 김하늘 선수가 실수 없이 경기를 마친 모습에 함께 울컥하며 눈시울을 붉혔고, 항상 든든한 모습을 보인 최다빈 선수가 역시 클린 게임으로 경기를 마무리하자 환한 웃음으로 기쁨을 함께 했으며, 메달을 딴 선수들에게는 아낌없이 경의를 보냈다.
자연인 김연아는 선수 시절 반짝반짝 빛나는 모습 한 켠에 어쩔 수 없이 드리워져 있던 고단함과 독기를 이제는 완전히 뒤로 한, 개운하고 맑은 얼굴로 후배들의 경기를 지켜보았다.
김연아는 20대 중반 선수 생활을 마무리한 뒤에도 무거운 책임을 어깨에 짊어져야 했다. 평창 동계올림픽을 유치하기 위해 발 벗고 나서야 했고, 유치가 확정된 뒤부터는 어수선한 나라 상황에도 불구하고 올림픽이 성공적으로 개최되도록 노력했으며, 그 와중에 국가대표로 나설 후배 선수들에게도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고 한다. 영광스러웠지만 그만큼 고통스러웠을 선수 생활을 마친 그녀는 한참을 더 쉬지 못하고 개인이 아닌 공공의 이익을 위해 애썼다.
김연아는 오랜 기간 나의 우상이었다.
사법시험을 공부하던 시절 앳된 모습으로 ‘죽음의 무도’ 연기를 하는 그녀의 모습에 처음 매료되었고, 그녀가 척박한 환경에서 스스로의 노력만으로 최고에 가까워져 가고 있으며, 고질적인 부상에 시달리면서도 연습을 쉬지 않고 진통제와 테이핑에 의지해 경기에 나서왔다는 사실을 알고, 어린 시절 지폐에 등장하는 위인 분들께도 품지 않았던 존경심이 생겨났다.
많은 관심과 응원을 받지만 결국은 차가운 빙판 위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혼자 경기를 마쳐야 하는 외로움과 넘어졌을 때의 고통, 결과에 대한 부담감을 오롯이 견뎌내는 모습에서, 짧지 않은 기간 시험을 준비하는 고시생으로서 감히 동질감 같은 것도 느꼈고, 멋진 성과를 하나 둘 이뤄내는 것으로 보면서 많은 위로도 받았던 것 같다. 김연아는 나보다 훨씬 어리지만 나는 김연아를 내 마음 속의 ‘언니’로 모셨다.
사실 자국에서 개최되는 올림픽에서 성화 점화자로 나선 영광되고 아름다운 모습을 봤을 때도, 한편으로는 기쁘고 감격하면서도, 긴장감과 책임감에 약간은 굳어진 듯한 모습에 안쓰러움이 느껴졌었는데, 그저 자연스럽게 앉아서 후배들의 경기를 응원하는 얼굴이 그렇게 편안해보일 수가 없었다.
드디어 부담감과 책임감에서 벗어난 것인지, 그늘 없이 맑은 김연아의 모습을 보니 그녀에 대한 부채의식이 조금이나마 옅어지면서 마음이 가벼워지는 것 같았다. 물론 그 빚의 대부분은 채권자인 그녀가 스스로 갚은 것이고, 나는 응원 외에 어떠한 기여도 한 바가 없지만 말이다.
선수생활을 마치고도 평창올림픽까지 쉼 없이 달려온 그녀의 인생은 아마도 또 다른 장을 맞게 될 것이다. 지금과 같이 많은 사람에게 영감을 주는 자리에 있을 수도, 이제는 대중 앞에서 모습을 감출 수도 있을 것이다.
그녀가 어떠한 모습으로 살아가든, 선수로서의 김연아, 자국 올림픽 개최에 큰 기여를 한 인사로서의 김연아, 선배로서의 김연아, 인간으로서의 김연아는 많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 오래오래 자리할 것이며, 나에게도 잊을 수 없는 영웅이자 우상으로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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