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호 논설위원 / 청주대 명예교수

봄이다. 그토록 추웠던 겨울이 가고 봄이 왔다(Winter is gone, spring has come). 산천의 초목들이 묵은 옷을 훌훌 벗어버리고 새 옷으로 단장하기에 바쁘다. 제일먼저 개화하는 꽃이라 하여 ‘첫사랑’이란 꽃말을 가진 개나리가 피고, 고운 님 가시는 길에 뿌릴 진달래도 꽃 봉오리를 터뜨린다. T.S 엘리어트가 지은 ‘황무지’ 라는 시의 구절처럼 ‘죽은 땅으로부터 라일락도 피어난다.’ 만화(萬花)가 방창(方暢)한다. 대지가 잠에서 깨어 창조의 역사를 시작하는 것이다. 참으로 웅장한 생명의 퍼레이드가 펼쳐지고 있다. 이러한 생명의 퍼레이드를 보면서 봄이 인간에게 주는 메시지를 생각해 본다.

첫째, 봄은 생명이야말로 더없이 숭고하고 고귀하다는 것을 알게 한다. 겨울 내내 꽁꽁 얼었던 땅위로 솟아오르고 가지에 움을 틔우는 새싹들이 이를 잘 말해준다. 극동초(克冬草)들과 인동목(忍冬木)들의 향연이 줄을 잇는다. 경이롭고 신비스럽다. 신이 아니고는 상상할 수 없는 창조물들이다. 초목들은 아무리 한풍이 불고 기온이 떨어져도 죽지 않고 살아 있다가 새싹으로 인사한다. 강풍과 함께 폭우가 쏟아져도 꺾이지 않고 하늘을 향하여 팔을 뻗는다. 강인한 생명력의 끝없는 전진이다. 이렇게 태어난 생명들이기에 더없이 찬란하고 소중하다. 생명은 우주만물의 존재 근거이다. 그렇기에 자연의 자손인 인간은 생명존중의 의식과 자세를 가져야 한다. 봄의 식물들이 어떠한 고난이 닥쳐와도 이겨내고 생명의 건재함을 과시하듯 새싹으로 거듭나는 삶을 영위하여야 한다. 마음먹기(성찰과 의지)에 따라 얼마든지 새사람으로 거듭날 수 있다는 것이다.

둘째, 봄은 무(無)에서 유(有)로의 가능성을 일깨워 준다. 인간을 가리켜 만물의 영장이라 칭한다. 이 말은 인간은 누구나 신성(神性:자유의지))을 가졌고 무엇이든지 해낼 수 있는 위대성을 지녔다는 것을 가리킨다. 인간은 그만큼 가능성의 존재라는 것이다. 봄은 자연의 재생과 인간 부활의 신비를 창조해낼 수 있는 가공할 능력을 소유하고 있다. 이는 계절의 순환과 함께 자연과 인간을 동일체로 한다는 하늘의 뜻일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인간에게 크나큰 축복이고 선물이다. 인간으로 하여금 봄의 꽃과 수목처럼 향기롭고 청신(淸新)한 생명체가 되어야 한다는 하늘의 주문인 것이다.

셋째, 봄은 인간으로 하여금 인간은 본래 성선(性善)의 존재라는 사실을 깨닫게 한다. 예부터 인간의 본성에 대하여는 인간은 ‘본래부터 착한 존재인데 사회구성원으로 살면서 사회로부터 악행을 보고 배워 따라하게 된다는 맹자의 성선설’과 ‘본래는 악한 존재인데 사회의 규범과 법적 제도적 규제를 받아 바른 언행을 하게 된다는 순자의 성악설’이 대립해 왔다. 필자는 봄은 온갖 꽃들이 궁궐을 이루며 향기를 뽐내는 계절이라는 점에서 성선을 뿌리로 하고 있다고 본다. 아름다운 꽃을 보고 있노라면 마음은 저절로 착해지고 맑아진다. 더 나아가 남을 미워하고 증오하는 사람도 예쁜 꽃 앞에서는 착한 마음을 갖게 되고 부드러운 표정을 갖게 된다. 인간은 바로 성선으로 태어났기에 성선의 영역을 확장해 가는 삶을 살아야 한다.

넷째, 봄은 인간에게 미래지향적인 삶을 영위하라고 계시한다. ‘하루는 아침에 달려있고 일년은 봄에 달려있다’는 말이 있다. 시작이 반이라는 말처럼 하루를 어떻게 보낼 것인가는 아침을 어떻게 시작하고 계획대로 실천하는가에, 1년을 어떻게 보낼 것인가는 봄을 어떻게 계획하여 보내느냐에 달려 있다는 의미이다. 봄은 시작이고 창조이며 미래를 잉태하고 순산시키는 계절이다. 봄을 찬란하게 보낸다는 것은 그만큼 1년의 출발점과 창조의 과정 및 미래의 무대를 견고하게 설계하고 개척한다는 것을 말한다. 중국 송나라 때의 유학자인 주자가 십회훈(十悔訓)을 통하여 경고한 바와 같이 ‘봄에 씨앗을 뿌리지 아니하면 가을에 후회하게 된다(春不耕種秋後悔)’ 봄은 미래의 산실이라는 것이다. ‘세월은 사람을 기다리지 않으니(歲月不待人)’ 시기를 놓치지 말라는 메시지이다.

봄, 싹이 트고 수만 가지의 꽃이 만발하는 계절이다. 봄은 꿈과 희망을 잉태케 한다. 그런가하면 화첩을 들고 개나리와 진달래를 찾아 나서게 한다. 하늘이 인간에게 봄을 선물했다는 것은 더 없는 축복이다. 봄을 맞아 거짓과 위선, 시기와 미움, 원망과 저주, 적개와 배척의 마음 등을 다 내던지고 그 자리에 1년 내내 향기를 잃지 않을 항향(恒香)의 화초를 심자. 물리적인 꽃 못지않게 마음의 꽃을 심고 키우자. 정치, 행정, 경제, 문화, 교육, 환경 등 모든 분야가 항춘(恒春)이도록 할 것을 다짐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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