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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칼럼-정화수(井華水)와 효도의 길<반영섭>
동양칼럼-정화수(井華水)와 효도의 길<반영섭>
  • 반영섭
  • 승인 2018.03.05 2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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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영섭 인성교육칼럼니스트

(반영섭 인성교육칼럼니스트) 올해 설 때 시골집에 설을 쇠러 갔다. 자주 들리는 고향집이지만 늘 그래왔듯이 제일 먼저 집 구석구석을 한 바퀴 돌아보았다. 구순이 넘으신 노모님이 사시기 때문에 습관이 되어 버렸다. 그런데 안채 뒤쪽으로 걸음을 옮기던 나를 그 자리에 얼어붙게 한 것이 있었다.

은빛 스테인레스 사발에 시선이 고정된 것이다. 언제나 그 자리를 지키는 가장 커다란 씨간장 항아리 그 위에 살얼음이 살짝 낀 큼지막한 사발 하나, 바로 정화수다. 집에 들를 때마다 보곤 하는 정화수 사발이었다. 그러나 오늘 본 정화수는 나의 명치끝을 찡하게 자극하였다. 오늘 같은 엄동설한에 살얼음이 살짝 얼어 있음은 물을 오늘 또 갈아 놓으신 것이다. 오늘 아침에도 구십이 넘으신 노모님께서 어김없이 치성을 들이 신 것이다. 봄, 여름, 가을에는 복복(福)자가 새겨져 있는 하얀 사기사발을 사용하는데 겨울인지라 얼어 깨지기 때문에 스테인레스 사발로 바꾼 것이다. 팔남매의 행복을 위해 빌고 또 비신 것이다. 어린 시절부터 늘 그 자리에 놓여있던 하얀 사발이다. 그 하얀 사발의 비밀을 알게 된 것은 중학교 1학년 때였다. 당시 1964년 보천에서 청주로 기차 통학을 했던 나는 새벽부터 일어나야 했다. 첫 기차가 아침6시경에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기차는 화물열차와 여객열차 구분 없이 함께 운행했기 때문에 청주까지 2시간정도가 소요되었다. 그래서 한겨울에는 초승달이나 샛별이 떠 있을 때 일어나야 했다. 어느 날 새벽 뒤뜰 장독대에서 중얼거리는 어머님목소리가 들려왔다. 문살사이 명함 한 장 크기로 붙여 놓은 유리판을 통해 장독대에 시선을 고정시켰었다. 아직 여명조차 없는 어둠 속에서, 새벽 살을 에는 찬 공기를 맞으시며 어머님은 두 손을 합장하고 치성을 드리고 계셨다. 어머님은 팔남매를 기르시며 온갖 어려운 일들을 무수히 겪어내셔야 했다. 정화수는 샛별과 달빛을 먹은, 해뜨기 전의 최초의 순수한 물을 의미한다. 엄동설한 추위 속에서도 이른 새벽 우물가에서 정화수를 길어 올리시던 그 정성으로 우리를 길러내신 것이다. 어머님은 지금 홀로 고향에서 살고 계신다. 다행히 이웃에 형님이 살고 계셔서 마음이 놓이긴 하지만 아무리 모시겠다고 해도 고향에서 사시는 게 더 편안하다 하신다. 만성관절염으로 불편한 몸을 이끌고도 텃밭을 가꾸어 나누어 주신다. 요즈음 명절 때 고향에 가보면 쓸쓸하기 그지없다. 시골에는 노인분들만이 굽어진 허리에 무거운 삶의 무게를 지시고 고향을 지키신다. 명절연휴 때만 되면 자식들은 해외로 국내 관광지로, 바닷가로 황금 같은 기회라며 여행을 떠난다. 이것이 나쁘다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현 세태는 이런 노부모님께 물질적으로만 봉양하여 효를 행하였다고 착각하는 자식들이 주변에 많음은 실로 안타깝다. 공자께서는 부모님을 공경하지 아니하고 봉양만 하는 것은 집에서 키우는 가축에게도 할 수 있는 일이다. 라고 하였다. 요즈음 애완견을 기르는 집이 부수기지이다. 얼마나 정을 쏟고 공을 들이는지 모른다. 노부모님들께도 그렇게 하는지 의문이 간다. 연로하신 할아버지, 할머니 손발 한번 씻겨드리지 않는 젊은이들이 애완견은 하루가 멀다 하고 목욕에 향수까지 뿌려 씻겨 꾸며 주는 것을 보면 격세지감을 느낀다. 비록 떨어져 부모님을 모시지 못하여도 出必告反必面으로라도 효를 행하여야 한다. 여행을 가든지, 어디서든지 자주 전화로 안부를 묻고 어디를 다녀왔습니다. 무엇을 보았습니다. 참으로 살기 좋은 세상입니다. 일상의 평범을 밝은 목소리로 전해드리자.

때와 장소를 가리지 말고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니 행하여 보자. 그리고 청소년 자식들에게도 권고하여 버릇을 들여 주어야 한다. 우리도 누구를 막론하고 머지않아 노부모가 된다는 사실을 망각하지 말아야 한다. 송강 정철의 시조를 읊어본다. 어버이 살아 실 제 섬기기를 다하여라. 지나간 후에 애닯다 어이하리. 평생에 고쳐 못할 일 이 뿐인가 하노라. 효도의 길이 그리 어려운 것만이 아닐 진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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