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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향계 / 먼 데
풍향계 / 먼 데
  • 박희팔
  • 승인 2018.03.06 21: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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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희팔 논설위원 / 소설가
박희팔 논설위원

동네에 먼 데 사람이 들어왔다. 이웃동네도 아니고, 같은 면내, 군내, 도내도 아니고 멀리 뚝 떨어져 있는 다른 곳에서 왔다는 것이다. 달랑 두 내외로 60대 초반은 돼 보인다. “그래 워디 사람이랴?” “먼 데 사람이랴.” 그러자 흰머리 장 씨가 킥킥 웃는다. “왜 웃는겨 내가 무슨 우스운 소리라도 했는감?” “그러게?” 모두가 의아해 하는데 한 사람이 한참 만에 역시 쿡쿡 웃더니, “아이구, 저 장가 또 엉뚱한 생각을 하고 있구만. ‘먼데 사람’이 아니구 ‘먼 데 사람’이란 말여 이 사람아!” 한다. 헷갈리지 말라는 거다. ‘먼데’는 뒷간 즉 지금용어로 화장실이다. 옛날엔 화장실이 밖에 있었을 뿐 아니라 사람이 기거하는 안채나 사랑채에서 멀리 떨어져 있었다. 냄새 때문이다. 그래서 뒷간과 사돈집은 멀수록 좋다고 했다. 뒷간이 가깝게 있으면 인분냄새가 나고 사돈집이 가까우면 서로가 오해받을 만한 말이 나돌기 십상이라는 데서 나온 말이다.

하여 ‘먼 데’ 즉 ‘멀리 떨어져 있는 곳’은 ‘뒷간(화장실)’을 뜻하게 됐고 이게 하나의 본말로 자리매김하면서는 띄어 쓰지를 않고 붙여서 ‘먼데’가 된 것이다. 아직도 시골의 나이 지긋한 노인장들 사이에는 ‘뒤보다, 뒷간에 가다’ 하는 말을 ‘먼데(를)보다’ 로 쓰기도 하는 것이다. “난 또 무슨 소리라고, 그건 그렇고 그래 워디서 왔다는겨?” “저 아랫녘에서 왔대지 아매 말씨가 그렇잖여?” “근데 이상혀. 행색을 보나 나이세를 보나 귀농이나 귀촌은 아닌 것 같은디 그 먼 데서 아무 연고도 없는 이 시골바닥엔 뭣하러 왔을꼬?” “그러게 말여 충북이 양반 곳이고 바람 맑고 풍광 좋다니께 전원생활 하러 왔남?” “글쎄, 하지만 설마 그럴라구.” “아녀 그럴지도 몰러 동네 끄트머리에 있는 언덕배기다 전원주택처럼 지어놓은 원구네집을 사서 왔잖여.” “참 원구는 그 잘 지은 집을 왜 팔은겨?” “일은 잔뜩 벌여놓고 이익은 보지 못하니 별수 있남.” “여하튼지 간에 이제 한동네사람 됐으니 그 먼 데서 왔다는 사람 네도 우리 동네사람들과 어울려야 될 것 아녀 통 인사도 없고 왕래도 없으니 원!” “내뻔져 둬 자기들이 아쉬우면 다가오겄지 뭐!” “아녀, 제일 가까운 그 아랫집인 명구네완 첫대바기를 했다는데 그 명구가 텃세하느라구 시큰둥한 태도로 외면을 했다는겨.” “이게 시방 무슨 소리여, 텃세하느라구…?” 그러니까 그렇게 따지면 이 동네서 본토백이가 몇이나 되느냐 이거다. 동네가 지금 26가구인데 이 중 20여 호가 타곳에서 들어온 사람들이다. 해방직후에 터를 잡은 집, 1.4후퇴 때 피란 와 눌러 사는 집, 머슴살이 하다 색시 얻어 살림 꾸린 집, 외삼촌 땅 마름으로 들어왔던 집, 매형 네 방앗간 돌보러 왔던 집… 등등 살길 찾아 타곳에서 들어왔던 것이고, 주위에 각종 공장이며 산업단지 조성으로 이에 발붙이고자 들어왔던 집들이다. 애초에 있던 본토백이들 중엔 노름으로 탕진해 망해 나간 집, 바람피우다 쫓겨난 집, 더 큰 돈 벌어보고자 사기꾼과 어울리다 빈털터리 돼 후회하고 누님 댁으로 의지하러 간 집… 등등이고, 지금까지 남아있는 10여 가구도 자식들 다 도회지로 나가고 알량한 집과 농토 지키며 사는 노인네 들 뿐이다.

지금 말 나온 명구는 제 할아버지가 외지에서 들어와, 당시 동네서 제일로 갑부이고 소위 양반집이라고 했던 큰 기와집의 행랑살이로 그 집의 허드렛일을 했던 사람인데 제 아버지가 건축 일을 배워 좀 형편이 피자 자신은 사업을 해보겠다고 대처로 나갔다가 여의치 않아 돈 다 까먹고 되 들어와 남의 토지 얻어 오이하우스 하고 있는 처지다.

“명구 그 사람 그러면 쓰나 저나 나나 토백이 외지인 따져 차별할 게재가 아니지.” 그러면서 모두의 시선이 한 사람에게로 쏠린다. 줄곧 아무소리도 하지 않고 이들의 말을 듣고만 있는 노인회장이다. “여기 있는 사람들 중 정작 토백이는 여기 노인회장님 한 분뿐이구먼. 어떻습니까? 제 말이 틀렸습니까요?” 그제서야 노인회장은 빙그레 웃는다. 그러더니, “뭘 토백이 외지인 따지는가.

시방 여기 동네사람들은 벌써 몇 십 년 동안이나 한 식구처럼 살 부딪고 살고 있지 않은가.” “암 그럼은요. 똑 같은 한동네 사람들이지유. 누가 먼저 들어오고 누가 낭중에 들어왔다고 따져서 차별하지 않지유. 아니 그런가 들?” “물론이지 그런 게 워딨어!” “그래서 하는 말인데….” 그는 여기서 말을 끊고 뜸을 들이더니, “새로 온 사람들이 먼 데서 왔다고 했지?” “예, 저 아랫녘에서.” “말이 있네. ‘먼 데 무당이 영하다.’고. 즉 ‘ 아는 사람보다 새로 만난 사람을 더 중히 여긴다.’ 는 뜻이야. 그러니 그쪽에서 인사오기 전에 우리가 먼저 다가가 환영의 말을 해 주세!” 모두들 머리를 끄덕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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