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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향계/ 아이캔스피크(I can speek)<유영선>
풍향계/ 아이캔스피크(I can speek)<유영선>
  • 유영선
  • 승인 2018.03.09 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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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아이캔스피크’를 보고 난 느낌은 슬픔보다 분노였다. 
지난해 개봉한 이 영화는 2007년 미국 의회에서 열렸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청문회의 실화를 배경으로 한다. 당시 청문회에는 김군자 이용수 할머니, 그리고 네덜란드의 얀 러프 오헤른 등 세 명의 피해자가 직접 참석해 증언을 했다. 

영화에서 옥분할머니(김군자 할머니 모델)는 평생 과거를 숨기고 살아왔지만, 친구가 치매로 증언을 할 수 없게 되자 대신 증언을 하기로 결심한다. 그러나 청문회에 참석한 상당수의 미국 의원들은 일본 정부의 집요한 반대와 거짓주장으로 옥분할머니의 증언에 의심의 눈빛을 보낸다. 옥분할머니는 주저하다가 옷을 걷어 올려 자신의 배를 보여주며 말한다. “내 몸이 증거요.” 칼자국과 낙서 자국이 난자한 할머니의 몸은 끔찍했던 당시의 피해를 생생히 드러내 주었고 이 증언으로 미국 의회는 일본 정부의 공식 사과를 촉구하는 내용의 ‘일본군 위안부 사죄 결의안’을 채택했다. 

영화를 보며 답답하고 화가 났던 것은 이들을 품어주지 못한 우리 사회의 시각 때문이었다. 옥분할머니뿐 아니라 대다수의 가족들은 상처투성이로 살아 돌아온 딸을 품에 안고 보듬어주기보다 가족의 명예를 위해 ‘침묵’을 강요했다. 죽음까지 생각하며 하루하루 지옥을 견디고 살아 돌아온 소녀 옥분할머니도 그랬다. 

영화 속 옥분할머니는 자신을 드러내고 증언을 하기로 결심한 뒤 어머니 무덤에 찾아가 통곡을 한다. 왜 내가 돌아왔는데 천대를 했느냐고, “욕봤다, 고생 많았지” 하고 따뜻하게 안아줄 수 없었느냐고.

침묵을 강요한 가족. 국가가 그랬고 우리 사회가 그랬다. 자신의 잘못이 아님에도 살아 돌아온 여성들은 죄의식을 갖게 되고 피해 사실을 말할 수 없었다. 가부장적 남성중심 사회가 만든 폐해였다. 그래서 화가 났다. 

그런데 최근 성폭력 피해를 폭로하는 ‘미투’(#Metoo) 운동이 확산되면서 그 침묵의 벽이 깨지고 있다. ‘미투’운동은 해일처럼 몰려오며 사회적인 충격을 주고 있다. 이름만 대면 알 만한 문화예술계 인사들부터 대학교수, 배우, 정치인 등 사회 지도층 인사의 성폭력을 고발하는 ‘미투’는 그동안 잠재해오던 한국사회 전방위에 걸친 남성들의 왜곡된 성 의식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다.

‘미투’ 운동이 의미가 있는 것은, 그동안 은밀하게 감춰진 채 자행되던 마초들의 성폭행 성추행 행위 등에 대해 더이상 피해자가 숨어서 혼자 감내하며 침묵하지 않아야 한다는 사회적 변화의 바람이 시작됐다는 데 있다.

과거부터 성에 관한한 남성들에게 관대해 왔다. 이것은 우리 사회의 성차별적인 구조 때문이다. 남성과 여성에 대한, 성에 대한 이중기준이 성별에 따른 권력관계를 형성하게 되고, 이것이 여성의 몸을 통제하고 지배하는 수단으로 이용된다. 

최근에 미투 가해자로 지목된 사람들의 경우도 지위나 신분에 의한 권력의 차이가 성별에 따른 권력의 차이로 동시에 작동하기 때문에 피해자들이 대응할 수 없었고, 가해자는 거리낌 없이 범죄를 저지를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침묵을 깨고 용기를 낸 피해자들이 2차 피해를 당하지 않도록 제도적으로 막아줘야 한다는 점이다. 최근 열린 유엔 여성차별철폐위원회는 한국의 미투운동과 관련, 성폭력 피해자들이 무고나 명예훼손 등으로 2차 피해를 경험하고 있는 한국의 현실에 대해 우려를 표했다. 우리 헌법에는 사실을 적시하더라도 명예훼손으로 처벌을 받도록 명시돼 있기 때문에, 피해자가 되레 명예훼손으로 고소를 당할 수 있는 것이다. 법 뿐만이 아니라, 무고녀, 꽃뱀 등으로 몰아가는 분위기 역시 피해자에게 큰 상처가 된다. 이러한 2차 피해는 피해자를 침묵하게 하기 때문에 정부는 이참에 정책적 조치를 취할 필요가 있다. 

성평등한 민주사회를 위해선 침묵을 깨고 용기있게 “아이캔스피크(I can speek)”를 외치는 사람들이 더 많아져야 한다. 그리고 이들을 지지하고 지원하는 ‘위드유(#With you)’ 운동이 함께 해야 한다. 김군자 할머니가 그랬듯 침묵을 깨소 일어 선 ‘미투’ 여성들의 용기에 큰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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