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 30대가 보는 고령자 / 어른은 없다

김세진 뱅크샐러드 CM팀장 (건명원2기)

어르신들의 행보가 심상치 않다. 자칭이든 타칭이든 ‘어른’이라고 여겨졌던 이들의 추한 모습이 연일 사회를 경악하게 하고 있다. 국가의 어른이라는 자들이 저지른 부정부패, 권력남용, 그리고 국정농단의 행패는 물론이거니와 교과서에서 위인으로 다뤄지는 문학가조차도 끝끝내 추악한 모습을 드러내고 말았다. 돈 좀 있는 어른들과 정치 좀 하시는 어른들의 단골주제인 ‘갑질’은 ‘못 가진 존재’, ‘없는 존재’, ‘젊은 세대’의 분노를 끓어오르게 한다. 사회생활을 경험하는 젊은 세대가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는 존재인 ‘꼰대’를 빼놓으면 아쉽겠다. ‘앞뒤가 꽉 막힌 채 자신의 논리를 일방적으로 강요하는데 눈치까지 없는 어른이’라고 정의할 수 있는 꼰대 역시 어른을 빙자하고 있다. “있는 것들이 더 하네!”라는 말은 서민층과 젊은 세대의 자조 섞인 한탄인 동시에 분노의 표현이며, 극복할 수 없는 세대간극을 뜻하기도 한다. 나이가 많을수록 삶의 지혜가 풍부하고 더 넓은 마음으로 포용해 줄 걸로 기대했으나 되레 뒤통수를 세게 두드려 맞은 아픔을 나타낸다고도 볼 수 있다.

‘어른’으로서 바르게 잘 살아낸다는 것이, 모범적인 존재가 된다는 것이 이리도 어려운 일인 걸까? 이 땅에 진짜 어른은 존재하는 것일까?

나는 언젠가 “세상에 어른이는 많아도 어른은 없다.”라는 도발적인 결론을 내리기도 했다. 고개 돌려 눈 씻고 찾아봐도 어른다운 어른을 찾을 수 없었다. 특히 2016년 촛불혁명 당시 사회가 극단적으로 분열되었을 때에도, 진영논리와 세대갈등을 부추길 뿐, 시대의 아픔을 보듬는 어른을 찾아볼 수 없었다. 어른이라는 존재가 되는 것이 정말 가능하긴 한 걸까? 벌써 30줄에 접어든 나도 어른이 되기 힘든 걸까?

천명관 작가의 책 ‘고령화가족’에서 어머니는 40대 중년에 접어들어서도 앞가림을 하지 못하는 사고뭉치 자식들을 돌본다. 세상에 나가 실패의 쓴맛을 보고 다시 엄마에게 모여든 ‘한심한 인생’들을 핀잔하지 않는다. 그저 묵묵히 밥을 챙겨주고 날마다 고기로 배를 든든하게 채워준다. 힘을 얻은 자식들은 다시 세상에 도전하게 되는데, 그 과정에서 콩가루 같았던 형제들이 끈끈한 가족애로 뭉치게 되며 서로의 존재를 긍정하게 된다.

작가는 진정한 어른의 역할을 넌지시 던지고 있는 것 같다. 잘 먹여주는 존재. 따뜻하게 보듬어주는 존재. 세상을 향해 과감하게 도전하게 북돋아주는 존재. 혹시라도 실패하게 되면 한 번 꽉 안아주고 ‘괜찮다.’라고 말해줄 수 있는 존재, 많이 말하기보다 많이 들어주는 존재, 자신의 논리를 강요하지 않는 존재,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받아들일 줄 아는 존재, 나이가 들어도 철저히 자기관리에 신경 쓰는 존재…. 어쩌면 어른은 모든 것을 품는 존재인 것 같다. 언제라도 희로애락을 나눌 수 있고 잠시 기댈 수 있는 은신처인 동시에 길이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나아갈 방향을 넌지시 비춰주는 등대 같은 존재. 이런 어른은 세대 간의 차이를 무색하게 하며 갈등을 원만하게 해결해줄 수 있는 존재이기도 하다.

한국은 2017년 고령사회(총 인구 중 65세 이상인구가 14%이상)로 접어들었다. 2020년대에는 초고령화 사회(20% 이상)가 된다는데, 이미 노인인구가 27%를 넘어 초고령화 사회로 진입한 지방자치단체도 여럿 있다고 한다. 생물학적으로 어른이 정말로 많아지는 시대가 코앞에 다가와 있다. 언젠가 나도 젊은 세대로부터 해체되고 분리되어 ‘고령세대’로 불리는 순간이 올 것이다. 그런데 나는 아직 ‘어른이’다. ‘어른’이 될 수 있을지 없을지 잘 모르지만, 어제의 나보다 조금 더 성숙한 자아가 되고자 오늘 노력한다면, 타자의 아픔을 어루만지는 어른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아니 적어도 1명의 젊은이에게서 만큼은 ‘어른답다’는 분에 넘치는 소리를 들을 수 있지 않을까?

어른을 찾기 힘든 시대, 나는 어른을 보고 싶다. 나는 어른이 되고 싶다. 속담에는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는데, 그게 쉽지 않은 것 같다. 차라리 아랫물부터 맑아져봐야겠다. 마침 서산대사(西山大師·1519~1604)는 “눈 덮인 들길 걸어갈 때 행여 아무렇게나 걷지 말라. 오늘 남긴 내 발자국이 마침내 뒷사람의 길이 되리니”라고 하지 않았던가! (踏雪野中去 不須湖亂行 今日我行跡 遂作後人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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