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희정 전 충남지사의 수행비서 성폭행 의혹 사건은 너무 충격적이다. 유력한 차기 대선 주자로 꼽혀온 안 전 지사가 하룻밤 새 '성폭력범'으로 몰락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충남도 공무원들과 도민들의 심경은 참담하고 허탈하기 이를 데 없다.

안 전 지사는 6·13지방선거를 앞두고 여러 갈래의 정치적 선택지가 놓여 있었다. 지방선거와 동시에 치러지는 재·보궐선거에 출마하거나 8월에 열리는 더불어민주당 전당대회에 나서 당권에 도전하는 길, 아니면 일단 몸을 낮춘 뒤 내년 4월 재·보선을 노리는 방법 등이 안 전 지사의 카드로 보였다. 하지만 모든 게 물거품이 됐다. 충격적인 사건은 안 전 지사에 대한 배신감과 함께 허탈감을 불러 왔다. 민주당의 한 당직자는 “정치 역정에 부침이 심했던 안 전 지사가 이제 좀 뜨나 했는데 한순간 나락에 빠지고 말았다”고 말했다.

대학 시절 민주화운동에 투신했던 안 전 지사는 1989년 김덕룡 통일민주당 의원의 보좌진으로 정계에 입문했다. 이듬해 1월 3당 합당을 거부하며 이른바 꼬마 민주당에 남았다. 이후 그는 노무현 전 대통령과 인연을 맺으면서 의원 보좌관, 대선후보 경선캠프 행정지원팀장, 대통령후보 정무팀장 등 '노무현 사람'으로 지내며 참여정부 출범에 기여했다. 노 전 대통령의 당선인 시절에도 비서실 정무팀장으로 일하면서 당시 이광재 당선인 기획팀장과 함께 '좌희정·우광재'로 불릴 정도로 핵심실세로 부각되기도 했다. 그러나 대선자금 수사로 구속되면서 참여정부 내내 아무런 공직을 맡지 못했고, 18대 총선 공천에서도 심사대상에서 배제되는 아픔을 겪었다. 안 전 지사는 2008년 7월 통합민주당 최고위원으로 정치 활동을 재개했고, 2010년 지방선거에서 야권 첫 충남지사가 된 뒤 2014년 재선에 성공했다. 

분권 철학이 담긴 도정으로 도농복합지역 충남을 이끌었다. 충남지사로 재직하며 전국 시·도지사 중 도정 지지율 1위를 가장 많이 차지했다. 정당정치 소신도 가치지향적 정치인 안희정을 상징하는 단면이다. 지난해 19대 대선 더불어민주당 경선 당시 공약집을 당 이름으로 준비했다. 경선에서 문재인 후보에 패배한 뒤 충남지사로 귀환했다. 충남지사 3선, 재·보궐선거 불출마를 선언하며 임기 완수를 약속했다. 

가치지향의 정치인, 신뢰와 의리의 정치인 안희정은 ‘인권 파수꾼’을 자처했다. 안 전 지사는 충남도의회가 인권조례 폐지안을 올리자 “인권은 협의 대상이 아니다”라고 주장하며 재의를 요청했다. 지난 5일 “미투운동을 통해 인권 실현이라는 민주주의 마지막 과제에 동참해 달라”고 했다. 하지만 그날 밤 안 전 지사는 성폭력 가해자 의혹에 휩싸이며 정치적 나락으로 추락했다. 그는 저서 ‘안희정의 함께, 혁명’에서 “정치는 공적 삶의 영역이다. 공적 소신에 집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안 전 지사는 여비서와 자신이 만든 연구소 여직원을 성폭행했다는 의혹 속에 민주주의와 정의를 외쳐 온 30년 공적 소신을 스스로 무너뜨렸다. 

그리고 8일 오후 3시. 국민과의 마지막 약속마저 저버린 안 전 지사는 더 이상 젊고, 반듯한 차세대 정치 지도자가 아니었다. 어느 네티즌의 말처럼 “아내와 가족, 충남도민을 배신하고 노무현 대통령을 두 번 죽인” 그저 성폭행 피의자로 전락한 씁쓸한 내리막길의 정치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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