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진

▲ 이호진 <전 청주중 교장>

지난 3월 2일, 에티오피아의 수도 아디스아바바의 한 켠에 자리한 한국전쟁 참전기념탑 광장에선 67년 전 한국전쟁에 참전했던 노병들과 충북의 에티오피아 방문단 22명이 만나는 극적인 장면들이 펼쳐졌다.
일행을 기다리며 도열해 있던 노병들을 향해 다가가는 이화선 팀장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뒤따르는 내 아내의 눈시울에도 물기가 어렸다.
결국 아내는 손수건으로 고여 있는 눈물을 찍어낸다.
가슴이 방망이질을 한다. 먹먹한 가슴의 느낌은 코로 전달되어 코끝이 찡하고, 머리와 가슴이 터질 것만 같았다. 드디어 내 차례가 왔다. 참전 용사 한 분 한 분과 포옹하며, “Thank you!”하던 나는 코가 막히고 목이 메어 말을 밖으로 내 뱉지 못한 채 한동안 가만히 있을 수밖에 없었다.
결국 나도 흐르는 눈물을 닦으며 다음 분과 포옹을 이어갔다.
이 눈물은 왜, 무엇 때문에?
그렇다. 고마움, 미안함… 아마도 그런 감정들의 뒤엉킴일 것이다.
이분들은 우리들 한 사람 한 사람에게 거수경례로 예를 표했다. 젊은 날 목숨을 걸고 한국의 전선을 누볐던 그들을 잊지 않고 매년 찾아 주는 고마움 때문이란다.
우리 방문단 일행이 에티오피아로 출발 전 동양일보 조철호 회장님으로부터 들었던 이야기가 떠오른다.
“에티오피아는 한국전쟁에 6037명의 전투병이 참전하여 용맹스럽게 싸웠고, 122명 전사, 536명이 부상 하였으나 단 한명의 포로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휴전 후 귀국한 그들에게는 공산 정권이 들어서면서 해외파병의 명예나 사회적인 신분이 박탈되고 6·25참전을 빌미로 오히려 핍박을 받아 숨어 살며 생계를 이어가기조차 어려운 삶을 17년간이나 살아왔습니다. 전후 40년 동안 그들이 지켜주었던 대한민국은 눈부신 경제발전을 이루었습니다. 그러나 대한민국 어디에도 에티오피아를, 참전용사를 생각하는 이들은 없었습니다. 이에 1996년, 한국전 참전 45주년을 기해 동양일보와 월드비전이 에티오피아 현지를 답사하고, ‘사랑의 점심나누기’ 운동을 전개하기에 이르렀고, 혈맹국 에티오피아의 은혜를 갚는 일을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2018년, 이 행사는 23년째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날 참전용사 기념공원 내 기념탑 앞에서 우리를 맞는 참전용사 14분과 헌화와 묵념, 포옹을 통한 상견례를 마치고, 몸이 불편하여 기념식에 참석하지 못한 분들을 포함하여 함께 담소의 시간을 가졌다. 대화를 나누는 동안 동행한 정희택씨(디 앤드 에이 시스템 대표)가 우리나라에 있는 전쟁기념관 내 에티오피아관의 모습을 VR로 제작한 것을 한 분 한 분에게 보여주었다. 영상을 보는 내내 감동하는 표정과 국기가 나오는 마지막 장면에서 스스로 거수경례를 하는 경건한 모습은 다시 한 번 우리를 감동시켰다.
옆자리에 참석하신 한 분께 나이를 물어보았다. 88세. 나의 아버지가 살아 계시다면 만 86세. 나는 그 분께 우리 아버지도 6·25에 참전하셨으며, 그 당시의 부상과 트라우마로 52년 전 만 34세이 젊은 나이에  초등학교 5학년인 나와 두 동생을 두고 세상을 뜨셨다고 전했다. 어머니로부터 들었던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떠올랐다. 부상을 당하고, 살기위해 시체를 끌어안고 죽은 척 버티었던 시간, 쓰레기 더미에서 먹을 것을 찾아 연명하던 순간의 이야기들이 영상처럼 스쳤다. 그러나 내 아버지는 조국 대한민국을 위한 참전의 아픔이었으나 이 분들은 낯 선 나라의 전장(戰場)을 누비고 사선(死線)을 넘어 귀국, 오늘까지 힘들게 살아왔다. 육체적 정신적 상처와 트라우마, 사회적 냉대 속에서 가족들을 위한 생활고를 겪으며, 힘들게…
나는 마음속으로 몇 번씩 뇌였다. ‘미안합니다’ ‘고맙습니다’ ‘잊지 않겠습니다’를….
당신들은 나의, 우리의 아버지입니다.
아내와 어린 아들 3형제를 두고 짧은 생을 마감해야만 했던, 오래되어 잊고 살아왔던 아버지의 삶을 다시 한 번 떠올리며, 이들을 통하여 다시 아버지를 온 몸으로 느꼈다.
10년 넘도록 월드비전에 후원금을 내고, 현직에 있을 때 ‘사랑의 점심 나누기’ 행사에 참여했지만, 별다른 의미를 두지 않고 그냥 형식적으로 참여했던 그 시간이 부끄러웠다. 아니 그 적은 금액이지만 참여 할 수 있어서 그나마 부끄러움을 조금은 덜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한국전 참전노병들과의 만남은 참으로 소중한 추억이 될 것이다. 오랜 세월 동안 에티오피아 국민들과 참전용사들을 위하여 뜻깊은 사업을 추진해 온 동양일보와 월드비전 관계자들께 깊은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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