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년만에 첫 여성수장된 임근자 충북조달청장

임근자 충북지방조달청장

 (동양일보 이정규 기자) 진천의 시골동네에 경사가 났다.

우체국집 둘째딸이 그 힘들다는 국가공무원이 되더니 얼마전 충북지방조달청장으로 금의환향한 것이다.

고향에 선물을 안겨준 장본인은 지난 6일자로 35대 충북지방조달청장으로 부임한 임근자(58·사진)씨다.

임 청장의 취임은 충북지방조달청이 1955년 8월 외자청 청주지방외자사무소로 시작된 이래 63년만에 첫 여성청장이라는, 새 역사의 기록이기도 하다.

임 청장은 진천 삼수초등학교와 진천여중·고를 나온 진천 토박이다.

가족과 친척 대부분이 공무원인 공무원 집안이다.

오늘이 있기까지 그를 만든 이는 아버지다.

올해 여든여섯인 아버지 임덕식씨는 체신청 시절 우체국에 입사했다.

대통령상을 비롯해 집안 가득 표창장이 수북이 쌓일 정도로 능력이 출중했고 교육 방식은 독특했다.

어디서 구해왔는지 모를 칠판을 집으로 가져와 자녀들을 앉혀놓고 직접 공부를 가르친 것이다.

아버지는 우체국에서 들고 온 신문을 펼쳐 한문도 가르쳤다.

짜증내는 형제도 있었지만, 그는 순수하게 받아들이고 공부에 전념했다.

그 덕분인지 전교 1등을 수차례 거머쥐었고 한문은 중학교 가기전 천자문을 모두 뗐다.

학창시절 그의 꿈은 방송국 아나운서였다.

그러나 실패를 한번 맛본 후에는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

그때 아버지가 추천했던 직업이 공무원이었다.

당시에는 여성이 공직에 발을 들여놓는다는 것이 흔치 않은 일이었지만, 아버지는 적극적으로 권유했다.

아버지 교육 덕분에 공부는 제법했던 그는 1979년 공무원 시험에 당당히 합격(행정 9급)했다.

여성으로서 집안 일과 직장 생활을 동시에 책임져야 했던 그였지만, 틈틈이 학업에 매진했다.

방송통신대 행정학과를 졸업하고 고려대 대학원(행정학 석사), 배재대 행정학 박사 학위까지 취득했다.

감사담당관실에 근무하던 시절에는 일본어를 마스터해 일본 (한국)대사관에서 근무하기도 했다.

그가 직장 생활과 공부를 병행할 수 있도록 도와준 사람은 시어머니다.

항상 그를 격려하고 일을 도와준 시어머니를 생각하면 고마움뿐이다.

지금도 시어머니는 며느리의 구두를 닦아주고 있다고 한다.

말단으로 시작해 지방 경제기관장에 오르기까지 직장생활이 녹록지는 않았다.

남성과 똑같이 업무를 수행해야 하는 여성으로서 남모를 아픔도 있었고 더 잘해야한다는 압박감을 안고 살았다.

하지만 되돌아보면 험난했던 그 길이 현재 영광의 전초전으로 느껴진다.

우수제품구매과장으로 재직하던 때에는 영세기업이 좀더 힘을 낼 수 있도록 도와주고, 행여나 정보 부족으로 조달시책을 몰라 불이익을 당하는 것을 볼 때면 함께 아파하기도 했다.

그의 곁에는 묵묵히 응원해준 남편이 있다.

KT를 퇴직한 남편은 언제나 그의 편이었고 그의 선택을 존중해주고 밀어준 사람이다.

대전에서 세종으로 이사와 살고 있는 부부는 어렴풋이 퇴직 후의 삶도 그려본다.

40년간 근무 경험으로 조달 노하우를 알려주는 컨설팅, 대학 강단에서 후학을 양성하는 일, 어르신들을 돌보는 사회복지 등 하고 싶은 일이 벌써 머릿속에 꽉 차있다.

충북청장으로 오면서 그는 약간의 부담감도 없지 않지만, ‘지역경제발전에 도움을 주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경기가 좀처럼 살아나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지역 기업들이 힘을 낼 수 있도록 돕고 싶다.

임 청장은 “살아온 날들이 꿈같지만, 이제부터 할 일이 더 남아있음을 보게 된다”며 “고향으로 다시 돌아온만큼 지역 경제를 살리는 일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중소기업들이 시책을 잘 몰라 피해를 입는 일이 없도록 조달 업무를 소개하고 홍보하는데 주력하겠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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