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기원 논설위원 / 신성대 교수

백세시대에 반환점을 돌아서 달리다 보니 ‘인생 뭐 있나, 건강하고 즐겁게 사는 것이 다지’라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이것은 자포자기한 사람의 넋두리가 아니다. 산전수전을 겪으며 무엇인가 깨우친 사람의 독백이다. 인생에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가만히 생각해 보자. 수많은 사람들이 아침저녁으로 동네 어귀를 걷거나 뛰고 스포츠센터로 가서 운동기구를 만지거나 수영을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서점에 나오는 자기개발서 중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법이나 갈등을 관리하는 이유도 결국은 즐거운 인생을 만들기 위해서이다.

살아오면서 남자들은 돈, 권력, 명예를 최고의 가치로 여긴다. 특히 물질만능주의가 판치는 한국사회에서 돈은 권력을 살수도 있고 명예도 만들 수 있기 때문에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돈 돈 돈’한다. 돈을 많이 번 사람들이 정치자금을 제공해서 비례대표 국회의원이라도 하려고 하는 것이나 대학에 기부금을 내고 명예박사학위라도 따려고 하는 것을 보면 인간의 내면에 깔린 이런 심리를 엿볼 수 있다. 이런 점에서 한국은 돈으로 안되는 것이 없는 세상이다.

어느 경제지에서 정의한 한국의 부자조건을 보면 대략 재산이 100억 대는 넘어야 하고 현금으로 1억 이상 소유하고 있어야 하며 한 달에 1000만원 이상 써야 한다. 살면서 부자가 되겠다는 생각을 한 적도 없지만 앞으로도 부자가 되기는 어려울 것 같다. 하지만 이런 류의 부자들을 만나 어떻게 부자가 됐는지 물어보고 그들의 하루하루를 관찰해보고 싶다. 그동안 인생에서 돈이 다는 아니지만 필수불가결한 것이라고 보고 배운 것을 그들의 삶을 통해서 검증해보고 싶기 때문이다. 뻔한 결론이 나오겠지만 의외의 결론을 발견할 수도 있을 것이다.

권력 또한 추구해볼만한 가치이다. 한국사회에서 권력만큼 특혜를 누리기 좋은 조건도 없다. 권력을 갖게 되면 다른 사람에 비해 특별한 대우도 받고 부러움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세속적인 얘기지만 공부를 잘해서 명문대학에 들어가려고 하거나 고시를 합격하려는 이유도 결국은 권력을 잡아서 남다른 생활을 하기 위해서이다. 그동안 풍조를 보면 한국사회에서 권력을 잡으면 돈도 잡을 수 있고 명예도 누릴 확률이 높다. 또한 권위주의가 팽배하던 시절에는 가치가 미분화되어서인지 아니면 권력은 일반국민들이 감히 넘볼 수 없는 것이라는 생각 때문인지 권력의 벽은 높고 견고하기만 했다. 하지만 살아있는 권력도 파면을 당해서 청와대에서 쫓겨나고 그 옆에서 대통령을 보좌하던 높으신 사람들이 줄줄이 교도소로 끌려가는 시대가 도래하면서 권력은 국민의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절대 권력을 추구하려들면 언제든 탄핵될 수 있기 때문이다.

명예만큼 오늘날 가치가 하락한 것도 없다. 자본주의사회에서 명예는 보잘 것 없게 보인다. 유형의 무엇인가가 강조되고 중요한 시대에 무형의 무엇인가는 공허하기까지 하다. 눈에 보이는 것, 손에 쥐어지는 것, 물질적인 것이 더 각광을 받는데 명예는 그 반대편에 존재한다. 따라서 그것을 지켜나간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왠만한 각오와 인내심을 발휘하지 않으면 안된다. 명예는 돈을 벌게 하거나 권력을 주지 않는다. 오히려 돈이나 권력이 명예까지 탐닉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오늘날 ‘명예를 추구하겠다’ 또는 ‘명예를 지키겠다’고 주장하는 사람을 보기 힘들다.

청춘시절 남자들은 치기어린 마음으로 돈이나 권력 또는 명예를 얻겠다고 장담했지만 반백이 된 현재를 관찰해보면 부자가 될 만큼 돈을 벌지도 못했고 으스댈만한 권력을 가진 것도 아니며 쥐꼬리만 한 명예도 얻지 못한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이러다보니 자연스럽게 돈은 세끼 밥 먹을 수 있으면 족하고 권불십년 화무십일홍이라는 상념에 젖게 된다. 또한 명예란 스스로 갖추면 되지 굳이 남의 눈치 볼 필요가 없다는 판단도 하게 된다.

이런 점에서 결국 건강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흔한 말로 건강을 잃으면 돈이나 권력 또는 명예를 가질 수 없다. 이왕지사 후회하지 말고 즐겁고 건강하게 살면 행복한 인생이 된다는 것을 인생반환점을 돌아서 깨닫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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