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희팔 논설위원 / 소설가

(박희팔 논설위원 / 소설가)

면면촌촌(面面村村)이 그러니까 면이나 촌마다 다시 말해 모든 동네마다 술을 썩 많이 마시는 사람이 있다. 이런 사람들을 상대로 술 많이 마시기를 겨루는 대회가 있었다. 곧 경음대회(競飮大會)다.

“경식이 할아버지 말여 그 어른이 한창 때는 장터에서 벌이는 경음대회에 나섰었다며?” “그랬었댜. 일등을 했는지 어땠는진 몰라두 여하튼 술을 멍청히 드셨었나벼.” “오죽해야 그 장남인 경식이 아버진 술은 입에도 아예 대지도 않았다지 않는가. 자기 아버지에 질려서 말여.” “그렇게 하기도 힘들었을 텐데, 그로 보면 하여튼 경식이 아버지도 대단한 사람여.”

경식이 아버지가 달래 그랬는가. 경식이 할머니가, 영감이 환갑도 못 지나고 생을 떠난 이유가 그 놈의 술 때문이라고, 그 고주망태기에 질렸다고 어린 자식을 붙들고 또 다 큰 자식에 매달리며, 너는 제발덕신 이 에미 질레 죽는 꼴 보지 않으려면 술은 절대 입에 대지 말라고 하소연을 했기 때문이다. 그도 그렇지만 그 자신도 자라면서 자기 아버지의 그 술주정이며 추태부리는 것에 하도 넌더리가 났던 것이다.

“하지만 그 경식이 아버지도 환갑 겨우 지나고 돌아가셨잖여?” “그랬지. 그로 보면 술 안 마신다고 오래 사는 것두 아닌가벼.” “그래서 자네두 약주 좀 나우 하는가부지?” “나야 뭐 얼마 하는가 병아리 오줌만큼도 못하는 걸.” “이 사람아, 닭이 오줌 누는 걸 보았는가. 내는 한 번도 못 보았는디. 하물며 병아리 오줌 만큼이라니?” “그렁께 술은 한잔도 못한다는 거 아닌가. 예끼, 이 사람아 그걸 누가 믿어 세상이 다 아는 걸.” “그나저나 경식이 말여. 이 자리에 없어서 말인데 그 사람 술깨나 하잖여.” “그렇지. 첨엔 제 아버지 땜에 비밀에 붙여두고 일체 안 먹는 척 했다만 제 아버지 돌아가곤 공공연히 마시잖여.” “그 부조 어디 가겠어. 어거지로 한 대를 건너뛰었을 뿐이지.” “아녀 질래 그질로 끊어버린 집도 있다구.” “근데 경식인 꼭 막술만 고집하지 소주나 다른 독한 술은 안 한다구.” “맞어 그로 보면 그 나름대로 무슨 이유가 있는가벼.” “있지, 건 나만 알지. 나하구 단 둘이 그 막술이라는 걸 마시면서 이유를 들려준 적이 있으니께.”

여기서 ‘막술’이란 ‘막걸리’를 말한다. 맑은술(청주·淸酒)을 내리지 않고 고대로 걸러낸 술이라고 해서 ‘막걸리’지만 경식인 ‘막 걸러낸 술’이라고 해서 ‘막술’을 고집했다. 그러면서, “농사일에 출출하면 배도 채우고, 알코올성분이 적어 허튼 수작 부리도록 취하지 않아 일하기 좋은 기분으로 되니 뿌리칠 수 있는가. 그간 할아버지께 질려서 삼가 한 아버지 땜에 막술에 대한 욕구를 사리었지만 인제 아버님 안 계신 마당에 좀 죄송스럽기는 하다만 농군 처지에 어찌 하겠는가 다 이해하시겠지” 했던 것이다.

“어, 그래서 그랬구먼. 하긴 주정하도록 은 안 마셔. 막술이 ‘마지막 한 잔의 술’이라고 하는 또 다른 뜻도 있어서, 술자리막판에 아무리 한 잔만 더 하라구 해두 막무가내루 사양하거든 그게 ‘마지막 잔의 술에 취한다.’구 하는 속설을 곧이곧대로 믿고 있어서 그런 거 아녀?” “맞어 그래서일 게야. 근데 말여 ‘막술’이라는게 원래는 ‘마지막 한 숟갈 밥’이라는 거 아녀?”

맞다. ‘마지막으로 떠먹는 밥의 한 숟갈’이라는 뜻이다. 반대말은 ‘첫술’이고, ‘첫술에 배부르랴.’는 건, ‘첫 숟갈의 밥에 배가 부르겠냐?’로, ‘무슨 일이든지 처음부터 단 번에 만족할 수 없다’는 말이다. 따라서 ‘막술에 목이 멘다.’는 건, ‘마지막의 밥 한 숟갈에 목이 메어 체한다.’ 뜻으로, ‘순조롭던 일이 마지막에 탈이 난다.’는 걸 이르는 말이지 ‘마지막 한 잔의 술에 인사불성으로 취한다거나 마지막 한 잔의 술이 불상사를 불러온다.’란 뜻은 아니다. 하지만 경식인 원 뜻이야 어떠하든 술에 결부된 말을 믿는 것이다. 그건 경식이가 얼마나 술에 애착이 있는가를 알 수 있을뿐더러 할아버지의 주사에 질리고 이에 대한 할머니의 간곡한 부탁의 말씀도 이행한 선친의 뜻도 따라야 한다는 깊은 의도도 깔려 있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우리 같은 농사꾼들에게는 막술인 막걸리가 제일여.” “그래서 여북하면 농주(農酒) 아닌가. 경식이처럼 마지막 한 잔만 안 걸치면 탈이 없제.” “그러 하지만 어디 그게 그런가. 술이 술을 권하면 취기가 오를 대로 오르고 그러면 또…”

막술 이야기판으로 저녁밥 먹을 때가 됐는데도 끝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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