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이 동양일보 상무이사 겸 편집국장

(김영이 동양일보 상무이사 겸 편집국장)

‘여자가 좋으면 로맨스, 별로면 미투냐’

사회 전반에 미투 폭로가 이어지자 생겨난 불편한 반응중 하나다. 하지만 서지현 검사의 폭로로 시작된 미투는 남녀관계를 재정립시키는 기폭제가 되고 있음은 누구도 부인하지 못한다.

오히려 변화가 너무 급하게 진행돼 어떤 남성들은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답답함을 토로할 정도다. 미투의 경계가 어디까지인지도 헷갈린다는 볼멘소리도 나온다.

미투는 분명 남성 중심 사회에서 살고 있는 남성들에게 여성의 존재, 아니 존엄을 일깨워 주고 있다. 전에는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던 말도 다시한번 생각하게 하고 인간으로서 여성을 존중하고 평등한 관계로 만드는 고민에 빠져들게 하고 있다. 바로 그런 고민이 미투의 파워다. 조심하게 만든다는 것 만으로도 성과다. 이런 미투가 확산될수록 여성과 인류애를 공유해야만 하는 사회적 분위기는 더 짙어만 갈 것이다.

하지만 미투가 한꺼번에 분출되면서 부작용도 없지 않다. 심지어 수십년 전의 일이 새삼 들춰져 이슈화되다 보니 또 뭐가 터질지 불안해 하는 사람들도 많다.

장막 뒤에 숨어 과거에 입은 피해를 폭로한다면 양성 평등의 효과를 가져 올 수 있겠지만 한편으론 양성 불신의 원인이 된다. 오죽하면 남녀가 사귈때 스킨십하기 전에 무슨 서약이라도 받아야 하고, 아니면 사인 받고 공증이라도 받아야 되느냐고 비꼬는 말이 나올까.

얼마 전 청주시 모 기관에서 직원 20여명이 저녁자리를 함께 했다고 한다. 가벼운 발걸음으로 식당으로 자리를 옮긴 것까지는 좋았는데 식탁에 둘러앉은 모습에 모두들 쓴웃음을 지었다고 한다. 누가 뭐라 하지 않았는데도 패를 갈라 놓은 듯 남성 직원과 여성 직원이 따로 앉아 있었기 때문이다.

한 직원은 “우리 사회에 미친 미투의 영향이 어떤 지를 한 눈에 보여준 상황”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허탈한 심정을 지울 수 없었다고 한다. 꼭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하는 자괴감도 들었다. 이성이 가까이 있음으로써 빚어질지도 모를 잠재적 일탈행위를 아예 싹부터 잘라버리자는 의미에서 ‘남녀 부동석’은 더욱 확산될 것이다.

이렇다보니 적극적으로 저항하는 이도 있다. 회식이나 사적인 영역에서 여성을 배제하려는 펜스룰(Pence rule)이 고개를 들고 있다. 여성이 끼면 언행이 불편하니까 아예 여성을 빼고 보자는 식의 또 다른 차별이 생겨나고 있는 것이다.

요즘은 노래방 가는 사람들이 예전보다 많이 줄어든 추세이긴 하나 1차에서 술 한잔 걸치고 기분 좋게 2차 노래방으로 가선 정작 도우미를 부르지 않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고 한다. 술 취한 상태애서 도우미에게 손놀림이라도 잘못했다간 망신당할 것 같으니 아예 도우미 없이 노래만 실컷 부르고 나온다는 것이다.

미투 운동은 남성에게서 당한 성추행 또는 성폭력을 용기있게 밝힘으로써 재발을 막기 위한 매우 바람직한 운동이다. 여성을 성노리개로 여겨온 남성들에게 여성은 자신과 동등한 인격체라는 사실을 인식시켜주고 관계 맺기의 대전환을 통해 균형을 맞춰 보자는 뜻에서 공감을 얻고 있다. 따라서 미투는 그 자체의 의미가 흠집 나서도 안되고 악용돼서는 더더욱 안된다.

우리는 요즘 자신을 숨긴 채 폭로한 미투가 사회적으로나, 가해자로 지목된 특정인에게 어떤 충격과 피해를 주고 있는지 목격하고 있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특정 후보를 향해 터져 나온 이런 미투는 혹시 어떤 목적이 있는 게 아니냐는 의구심을 들게 하기에 충분하다.

우건도 충주시장 예비후보(더불어민주당)는 지난 19일에도 기자회견을 열어 자신을 향한 미투를 정면 반박했다. 이미 경찰에 수사의뢰를 한 그는 할복이라도 해야 자신을 믿겠냐며 펄쩍뛰고 있다. 안희정, 조민기, 이윤택 등 저명인사들과 비교할 수는 없지만 충주시장 유력후보인 점을 감안하면 입에 오르 내린다는 것 자체가 큰 충격이다.

지금까지 그를 향한 미투는 겉으로 드러난 게 없다. 다만 본인도 밝혔고, 경찰 수사에서 확인된 충북도청 직원이라는 신분만 알려졌을 뿐 공개된 게 아무것도 없다. 그러니 미투 뒤에 모 정치인이 있다는 등 정치적 음모설마저 나돌아 흉흉하다. 이러는 사이 성추행범으로 내몰린 우건도의 정치생명은 점점 위태로워지고 있다.

미투는 존중돼야 한다. 또 정직하고 당당해야 한다. 미투 속에 불순물이 끼어선 안된다. 경찰은 하루속히 진상을 밝혀야 하고 미투 폭로자는 가면을 벗어야 한다. 미투의 진정성과 확장성을 위해서다.

동양일보TV

저작권자 © 동양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