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기황 논설위원 / 시인

오늘이 ‘세계 물의 날’이다.

1992년 제47차 유엔총회에서 지구촌의 물 부족 현상을 알리고 수자원의 보호를 위해 제정한 날이다. 햇수로 27년이 됐는데도 ‘물의 날’이 있는 지조차 희미하고 ‘물’에 대한 사정은 갈수록 나빠지고 있다. 세계에서 물 부족으로 목숨을 잃는 어린이가 하루 5000명 이상이나 된다는 보고서도 있다. 우리나라도 ‘국제인구행동단체(PAI)’의 분류에 의하면 1990년에 이미 ‘물 부족(water-stressed)’국가로 분류되었고, 2025년에는 ‘물 기근(water-scarcity)’국가가 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지난 세계포럼의 주제만 봐도 심각한 물 부족과 수질오염방지 그리고 어떻게 물을 관리할 것인가에 대한 위기감이 묻어나고 있다. ‘나누는 물, 나누는 기회-2009년’, ‘물 살리기-2010년’, ‘도시를 위한 물-2011년’, ‘물과 식량안보’가 주제였다. 물은 흙과 함께 생명의 근원이 되는 소중한 물질이다. 세상의 모든 생물은 물 없이는 생존할 수 없으며 우리가 숨 쉬는 공기 중에도 다량의 물이 함유되어 있다. 지구 표면의 70%가 물로 덮여 있으며 인체의 60-80%도 물로 구성 되어있다.

물은 사람의 몸속에서 세포를 구성하고 산소와 영양소를 운반하며 신진대사를 원활하게 해주고 체온을 유지해 주는 등 모든 생명현상에 관여하며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

성경 ‘창세기’에서는 창조주인 하느님께서 첫날에 빛을, 둘째 날에는 ‘궁창아래의 물과 궁창위의 물’로 갈라지게 하여 하늘과 바다를 만들었다고 전하고 있다. 낮에 태양으로부터 열을 흡수했다가 밤에 지구의 전체적인 기온을 적당하게 조절하는 기능도 물이 담당하는 역할이다.

사람이 살 수 있는 기본환경을 순차적으로 만들었음을 알려주는 대목이다.

물은 ‘H2O’라는 화학적·물리적 분자식을 가지고 있지만 영성적 관점에서 보면 ‘상선약수(上善若水)’와 같은 또 다른 생명력을 내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물’이 가지고 있는 속성 중에 첫째가는 미덕은 아무래도 ‘겸손’일 듯싶다. 인간이 경쟁적으로 세우는 지상의 많은 것들은 높이와 부피를 가지고 다투지만 물은 부족한 곳을 채우고 모난 곳을 어루만지며 낮은 곳으로 흐르는 겸손의 미덕을 보여준다.

어떤 상대방도 받아들일 수 있는 ‘포용력’과 어떤 그릇에도 담길 줄 아는 ‘여유’도 물이 가지고 있는 덕목이요, 좁은 곳은 몸을 좁히고 넓은 곳은 품을 넓히며 막히면 돌아서 갈 줄 아는 ‘지혜’도 낙수(落水)가 바위를 뚫는 ‘인내심’도 물이 선험적으로 일러주는 귀중한 메시지다. 오랜 시련과 기다림의 끝에 만나게 되는 바다는 ‘희망’이요, 부패를 방지하고 불의와 오염을 정화시키는 바닷물은 다시 회복할 수 있는 ‘부활’의 상징이다. 물은 육체와 영혼에 골고루 작용하는 ‘생명력’의 원천이다.

최근 ‘포토라인’에 서는 유명인사들을 보면서 물에 대한 속담을 떠올리게 된다. 국민을 ‘물‘로 보고 저지른 수많은 정치행태들이 심판대에 오르고 있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 ’고인 물은 썩는다’는 물의 속성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저지른 옳지 못한 관행들, 양심과 정의가 무너진 오염된 행위가 ’물을 흐리게‘ 하고 우리에게서 즐거움과 희망을 앗아가고 있다.

물이 가지고 있는 또 하나의 근원적인 특징은 ‘씻는다’는 것이다. 물로 씻는 대표적인 예식이 ‘세례(洗禮)’다. 세례는 다시 태어남이다.

악습으로부터, 과거로부터, 절망으로부터, 죄로부터 새로워지는 것이다.

‘치유’는 상처를 씻는 것에서 비롯된다. ‘씻는다.’는 행위는 회개를 전제로 한다.

절망과 분노로 찌든 병든 사회가 진정으로 뉘우치고 치유함으로써 얻게 되는 활력 넘치는 세상이 ‘세계 물의 날’이 주는 또 다른 생명의 메시지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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