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이 동양일보 상무이사 겸 편집국장

(김영이 동양일보 상무이사 겸 편집국장) 며칠 전 우리 언론은 한 외신기자의 쓴소리를 들어야만 했다. 자신의 기사를 공정하게 번역해 달라고 한국 언론을 향해 일침을 가한 것이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길래 외국 기자가 직접 나서 이런 말을 했을까. 사연은 이렇다.

영국 BBC방송의 로라 비커(Laura Bicker) 한국 특파원은 지난 9일 남북관계와 대미관계를 다룬 ‘21세기의 정치도박(The political game of the 21st century)‘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내보냈다. 그는 지난 1월 문재인 대통령 신년 기자회견때 “워싱턴(트럼프)과 서울은 언론을 대하는 것이 달랐다”며 자유로운 기자회견 방식을 호평한 인물이다.

“South Korean Leader Moon jae-in is either a diplomatic genius or a communist set on destroying his country 

and US president Donald Trumph is either a master of brinkmanship or a pawn in a more devious game-depending on who you speak to. “

“누구와 대화하느냐에 따라 문재인 대통령은 외교 천재라고 하거나 나라를 파괴하려는 공산주의자중 하나이며,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벼랑 끝 전략의 달인이거나 사기성 게임의 졸개 정도로 평가된다.” 글에는 공산주의자(Communist)라는 표현이 등장하기는 한다.

그런데 국내 유력 보수언론 몇몇은 문 대통령에 대해 ‘천재’와 ‘나라를 파괴하는 공산주의자’로 오역했다. BBC는 문 대통령을 공산주의자로 단정하지 않았다. ‘누구와 이야기를 하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평가’를 말한 것이다. 전체 문장을 해석하지 않고 가장 중요한 부분을 생략한 탓이다. 다시말해 맨 마지막 구절(depending on who you speat to: 누구와 대화를 하느냐에 따라)을 빼지 않고 번역했다면 한국 언론이, 그것도 유력언론이 이런 국제적 망신을 당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BBC가 문 대통령과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임의로 평가한 게 아니라 극과 극으로 나뉘는 세간의 평가를 인용한 것 뿐이다.

‘언론고시’를 통과한 그들의 인적 수준으로 볼 때 이 정도의 영어 기사를 엉터리로 해석했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 고의가 아니면 생산될 수 없는 번역임에 틀림없다.

비커 특파원은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오역한 언론을 이렇게 일갈했다.

“Dear Korean press, please translate my articles fairy. my piece on the political gamble of talk a with 

North Korea does not President Moon is a ‘communist’ as some have reported. It quotes a right wing 

historian saying that. As well as another saying he is a genius. Thanks.(한국 언론은 제발 내 기사를 공정하게 번역해 주세요. 내가 작성한 기사에서 일부 한국언론이 보도한 것처럼 ‘문 대통령을 공산주의자’로 말하지 않았습니다, 나는 한국의 보수 혹은 진보 역사학자의 말을 인용한 겁니다. 감사합니다”)

비커 특파원이 보수나 진보 역사학자를 만나 취재할 때 누구와 이야기 하느냐에 따라 문 대통령에 대한 평가가 천양지차라는 사실을 확인해 준 것이다. BBC KOREA도 페이스북에 비커 기자의 설명을 담은 동영상을 올렸다.

오역 사건은 또 있다. 이들 신문과 이 신문의 계열TV는 지난달 뉴욕타임스 기사를 인용하면서 원문과 다르게 ‘문재인 대통령의 평창올림픽 재계 홀대론’이라고 했다. 뉴욕타임스는 재계의 돈이 정치와 함께 올림픽 정신을 타락시키고 있는 공범이라고 비판했는데 기업인들이 올림픽에서 홀대받고 있다고 둔갑시킨 것이다.

언론이 대통령을 비판하는 것은 자유다. 그러나 사실에 기초한 비판이어야 한다. 이번 오역사건을 그 흔한 외신 오보의 하나로 치부하기에는 너무나 참담하다. 세계적인 유력 언론인 BBC나 뉴욕타임스에 난 기사를 인용하는 것은 달콤한 유혹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이들의 신뢰성을 미끼로 자신들의 입맛에 맞춰 기사를 짜깁기한다면 그 저의를 의심받기에 충분하다.

한반도 평화를 원치 않는 세력이 있다면 민족적 불행이자 비극이다. 평창올림픽을 치르면서 우리는 한반도에 평화 대신 전쟁을 원하는 세력이 있다는 것을 목격했다. 누구든지 한반도 평화를 갖고 장난쳐서는 안된다. 이번 오역 사태가 의도적 오역이 아니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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