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플 크기의 피자가 익어가는 드럼통. 숯불로 구워낸 피자는 빈대떡과 인절미 맛이 뒤섞인 가성비 높은 간식이다.

(동양일보 박장미 기자) 쿠바노들 주식에 버금가는 피자는 와플 크기다. 몇몇 고급 호텔을 뺀다면 똑같은 팬으로 구워내는 탓이다. 두께 1㎝쯤 되게 도우를 넣고 케첩에다 피자 조금 흩뿌린 뒤 팬에 올리고, 숯불 담긴 드럼통 위 칸에 넣어 구워내면 인절미와 빈대떡 중간 맛이 난다. 피자가 별 맛 있겠냐고 무시하면 요리사에게 뺨 맞을 지도 모른다. 이름난 가게 앞에는 언제나 손님이 길게 늘어서 있다. 그걸로 봐서 만드는 사람 손에 따라 맛은 제각각인 모양이다. 크기나 생김새는 별다를 게 없지만 값은 천차만별이다. 아바나만 해도 번화가냐 변두리냐에 따라 수십 배 차이가 난다. 처음 쿠바에 발 들였을 때 30페소라고 적힌 걸 보고 외국인용 화폐로 값을 치른 적이 있다. 뒤에 그 사실을 안 지인이 기가 찬다는 듯 나를 쳐다봤다. 서른 배나 비싼 피자를 어찌 사 먹느냐고, 미친 거 아니냐고….

속지 않으려고 무진 애를 쓰는 데도 잠깐 방심하면 바가지를 쓰곤 한다. 대도시를 벗어나면 속을 일 없겠지 하며 별빛 군무 어지러운 까마구에이에 도착했다. 기차역 반대편 까미용 터미널은 흡사 폐차장 분위기다. 트럭을 버스로 리모델링한 차가 빼곡하게 주차된 탓이다. 동화의 세계로 가기 위해 숲 속 동굴에 다가가는 아이처럼 주차해 둔 트럭 틈으로 스며든다. 짐작대로 근처를 서성거리는 젊은이들 몇 명이 서서 까미용 행선지를 일러준다. 휴양지는 젖혀두고 한적한 내륙지방 가는데 걸리는 시간과 요금을 물어보고, 굴린 동전으로 점을 쳐서 한 시간 반 쯤 걸리는 빌라또를 택한다. 바가지 쓸까 싶어 요금을 물었더니 10페소라고 해서 안심한다.

잘 골라 탄 덕분인지 까미용은 십분 조금 넘어 출발했고, 털털거리는 짐칸을 빼곡하게 메운 손님들은 늘 그랬던 것처럼 시골길의 흔들림에도 꿋꿋하다. 창가에 앉은 나랑 달리 한 계단 위에 앉은 초등학생이 졸기 시작한다. 발이 바닥에 닿지 않는 아이는 옆으로 앞으로 고꾸라졌다가 정신이 들면 몸을 바로 세우곤 한다. 곤두박질칠까봐 조마조마해서 아이 팔을 힘껏 움켜쥐고 까미용 흔들림에 신경을 곤두세운다. 유심히 살폈더니 머리 부스럼이나 꾀죄죄한 옷차림이 내 어릴 적 모습이랑 엇비슷하다. 그런 뒤부터 손아귀에 힘을 더 준다.

한적한 시골길을 흘끔거리는 동안 한 시간 반쯤 달린 까미용이 멈춘다. 여기가 빌라또라고 옆에 앉은 여학생이 일러준다. 빼곡히 들어찬 승객을 밀치고 내리려는 순간 까미용이 울컥거리고, 엔진 회전수를 높인다. 그 순간 연습한 듯 모든 승객들이 입 맞춰 고함을 지른다. ‘여기 내릴 사람 있어요!’ 튀거나 높낮이 다르지 않게 내뱉는 말은 같은 악보로 오랫동안 연습한 것 같다. 계단을 내려딛는 내 걸음이 피아노 건반을 두드리는 것처럼 바뀐다. 오래 다져진 황톳길에 내려서서 둘러보니 길 건너편에 마차가 보인다. 시골에도 까미용 도착 시간이 정해져 있는지 손님 태워가려고 대기하고 있었던 거다. 먼저 탄 사람과 울퉁불퉁한 길을 흔들리며 달려간다. 급한 거라곤 없어 보이는 데도 채찍을 버릇처럼 휘두르는 마부, 마차 급발진 탓에 몇 번이나 굴러 떨어질 뻔했다.

십분 쯤 달린 뒤 공동묘지가 보이고, 묘지 건너편엔 바나나 잎으로 지붕을 인 집 몇 채도 있다. 마부가 손을 흔들어 인사하고, 농삿일하던 사람들이 허리를 펴서 화답하는 모습이 한 폭 풍경화 못잖다. 바닥의 황토색이나 새파란 하늘은 도화지 바탕색 되기에 모자라지 않다. 민가가 몇 안 되면서 학교에다 약국이며 병원까지 갖춘 데다 허름한 술집까지 보인다. 그 앞에 두어 평 크기의 피자가게를 본 건 천만다행이다. 배가 고파오는데 여긴 식당이 없다는 얘길 마부로부터 들은 탓이다.

피자 가게 앞, 마차를 세워 달래서 갓길에 내려선다. 줄 서서 기다리는 농부 어깨 너머로 메뉴판을 살피니 피자 5페소라는 팻말 하나만 꽂혀 있다. 음료수 몇 가지가 보이지만 그건 돈을 받지 않는 모양이다. 둘러본 주방, 온통 자연 재료로 만든 기구들만 놓여 있다. 가게에서 몇 안 되는 화학제품인 케첩통이며 설거지 그릇과 피자 접시가 외계인 같다. 안에서 포근한 나무 냄새가 번져 나는 게 그 때문이다. 사탕수수 즙 짜는 기계가 자리 잡고 있는 구석자리, 구아라뽀 기계는 한 동안 쓰지 않은 듯 먼지가 쌓여있고 모터를 돌리는 전선도 끊어진 채다. 칸막이 건너 화덕을 열었다 닫았다 하며 부지런히 피자를 만드는 남자,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말 한 마디 없다. 눕힌 드럼통을 칸 질러 아래쪽엔 숯을 넣고 위쪽엔 피자 팬 여러 개를 얹어 뒀다. 언제 주문한 건지 피자 몇 개를 꺼내 막 달려온 손님에게 건네고 돈을 받은 뒤 부리나케 칸막이 뒤로 숨는 남자의 팔뚝, 시커먼 털 사이로 깊은 상처가 정체를 드러낸다. 무슨 일 하다가 저렇게 다쳤을까. 아무리 둘러봐도 구아라뽀 기계 말고는 깊은 상처 낼만한 게 없다.

잘 생긴 남자 얘길 듣고 싶어 몸이 근질거린다. 가방을 열어 인삼차 봉지 몇 개를 꺼낸 뒤 뒷문으로 돌아 들어간다. 피자 반죽하는 테이블에 어색한 미소와 함께 올려둔 봉지, 따뜻한 물에 타서 마시면 마음의 상처가 깨끗이 나을 지도 모른다는 제스처다. 그때서야 일손 놓고 땀을 닦는 남자 표정이 환하게 변한다. 그 순간을 놓칠까봐 다가서서 어쩌다 팔을 다치게 되었는지 물어본다. 예상했던 것처럼 구아라뽀 기계가 범인이다. 안전장치 제대로 되지 않은 기계를 돌리다가 소매가 딸려 들어가서 자칫하면 팔이 잘릴 뻔했다며 사슴 눈빛으로 쳐다보는 남자, 아직도 고통이 잊히지 않는 듯 표정을 일그러뜨린다. 그가 건네준 피자의 따스함이 오래도록 손에 전해지고, 빈대떡 식감에 쫄깃함이 더해져 인절미를 씹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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