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건일 (양청고 교사·도곡장학회 고문)

 
김건일 <양청고 교사·도곡장학회 고문>
김건일 <양청고 교사·도곡장학회 고문>

 

1998년 가을 무렵, 평소 하고싶었던 서예를 배우기 위해 서예학원을 다닐 때의 일이다. 이곳에는 나보다 먼저 서예에 입문하시고, 초학자인 내 눈에는 발군의 경지에 이른 분이 계셨는데 바로 증평 평화한약방 도곡 연만희 원장님이었다. 그 분은 몇 년 후에 충북서예대전에서 대상을 받을 만큼 서력이 뛰어난 분이다.

도안면 시골에서 한약방을 운영하시던 선생은 IMF 시기에 결식아동들이 있다는 말을 듣고 부인과 뜻을 모아 여기저기 장학금을 내놓거나, 혹은 개인적으로 어려운 학생들을 도와오셨다. 그러던 중 좀 더 체계적으로 장학 사업을 하고 싶다며 5억원이 든 통장을 내어놓으며 나에게 함께 하기를 청하셨고, 나는 기꺼운 마음으로 참여하게 되었다. 2001년 2월 도곡 연만희 원장님의 아호를 딴 도곡장학회는 이렇게 탄생되었다.

서울대 권오승 교수님, 전북대 김기현·이종민 교수님, 박원철 변호사님 그리고 나를 포함한 다섯 명으로 이사회가 구성되고 내가 상임이사를 맡아 장학생을 추천받고 선발하게 됐다. 그렇게 운영한 지 올해로 18년이 되었다.

장학회 설립 초기에는 금리가 높았다. 당시 도곡장학회의 운영은 한 번 선발된 학생은 졸업할 때까지 계속 지급한다는 원칙을 세우고 국내외 대학·대학원생을 선발하여 학사생 매년 300만원, 석사과정 400만원, 박사과정 500만원의 장학금을 지급하였다.

2001년 장학회 설립식에서 처음 장학생으로 선발된 1기 도곡장학생들에 대한 기억은 특별하다. 그중 한 명, 베트남 국적으로 전북대 대학원에 와서 한국사를 공부하던 여옥준이란 학생이 있었다. 1999년 ‘우리가 정말 사랑했을까’라는 인기드라마 극본을 베트남어로 번역했다는 청년은 왜소한 체격이지만 눈빛은 의지로 빛났고 몸짓에는 예의가 배어 있었다.

다음해 이 학생은 서울대 법과대학원으로 적을 옮기고 매학기 장학금을 받으며 열심히 한국어를 익히고 법학 공부를 하였다. 이 학생이 과정을 마치면서 같은 베트남 국적의 서울대 대학원생 황해운이라는 여학생이 추천되어 3년 과정 동안 장학금을 받으며 학업에 전념했다. 그리고 도곡장학회는 베트남으로 돌아간 두 명의 장학생이 우리나라에 대한 좋은 기억을 가지고 베트남의 인재로 자신의 나라에서 큰 역할을 하리라고 기대했다. 그 동안 소식을 알 수 없던 두 명의 베트남 장학생과 연락이 닿아 도곡 연만희 회장님과 자리를 함께 한 것은 지난 3월 10일이었다.

모 법무법인과 업무협약을 하기 위해 내한했다는 두 베트남 젊은이는 결혼하여 부부가 되었고 예쁜 딸을 둘이나 데리고 내려왔다. 그동안 베트남 하노이에서 법무법인 제이피 베트남사무소 대표변호사가 되어 베트남에 진출한 한국의 기업들에게 법률적인 도움을 주는 신뢰하는 변호사가 된 것이다.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가슴 속에는 항상 도곡장학회에 대한 감사한 마음을 간직하고 있다면서자신도 가장 어려울 때 큰 힘이 되어준 도곡장학회의 뜻을 이어가고자 베트남에서 학생들을 뽑아 장학금을 지급하고 있단다.

이번 여옥준 변호사의 방문으로 소재가 파악된 1기 장학생 중에는 서울 소재 대학 교수가 된 분, 신부님이 되어 성직자로 활동하는 장학생도 있다. 중국에서 눈부신 활약을 하고 있는 세라젬 이규철 대표이사도 도곡장학회 출신이다. 여옥준 변호사를 포함해 도곡장학회 출신 변호사가 네 명이 되었다. 그 중 윤법렬 변호사(한국시티은행)는 자신이 가장 힘들던 시기에 도곡장학회의 도움으로 공부할 수 있었다며 2013년부터 도곡장학회 장학금 전달식에 동참하여 자신의 이름으로 별도의 장학금을 지급하고 있다. 장학생이 장학생을 낳은 셈이다.

지금은 11억원의 장학기금을 조성하고 여기서 발생하는 이자로 충북도내에서 재능우수자, 다자녀가족, 성적우수자, 서당학생, 기회균형 등 분야에서 중·고생들을 선발해 그동안 장학금으로 지급된 총액이 5억 원을 넘는다.

그동안 장학회를 운영하며 연락이 끊긴 장학생들에 대해 섭섭한 마음을 토로하면 도곡회장님은 늘 수이불망(受而不忘-받은 것을 잊지 않는다)이라는 말씀은 하지 않으시고 수이망지‘(授而忘之-주었으면 그것을 잊어라)’라는 말씀으로 나를 위로하신다. 내년 19기에는 새로운 장학생을 충원해야 한다. 내년 봄에는 또 어떤 인재를 만날지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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