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회 무영신인문학상 당선작 강이나의 '1그램의 재'

(동양일보 박장미 기자) 흙의 작가 이무영(李無影·1908~1960) 선생의 문학 혼과 작가 정신을 기리기 위해 동양일보가 제정한 19회 무영신인문학상 당선작으로 강이나(본명 강희숙·부산 남구 대연동)씨의 단편소설 ‘1그램의 재’가 선정됐다.

동양일보는 ‘무영제’ 25주년을 계기로 기성작가를 대상으로 시상하던 ‘무영문학상’을 18회로 마감하고 올해부터는 신인소설가를 발굴하는 ‘무영신인문학상’으로 전환했다.

당선작 ‘1그램의 재’는 현대를 살아가는 인간의 자연과 생명에 대한 인식과 대응방법을 형상화 한 작품이다. 이 작품은 소재나 발상이 기발하고 작품 자체의 성취도도 높았다는 평가를 받으며 당선작으로 선정됐다.

총 285편이 응모된 이번 문학상 예심은 안수길 소설가와 박희팔 소설가가 맡았고, 89편을 대상으로 실시된 본심은 유종호 문학평론가, 오탁번 시인, 이수경 소설가가 맡았다.

시상은 오는 13일 무영 선생의 고향인 음성에서 열리는 25회 무영제 행사장(충북 음성군 음성읍 석인리 오리골 이무영 생가)에서 진행되며 당선자는 500만원의 상금을 받게 된다. 박장미 기자
 

●당선작

1그램의 재 -강이나

  대문을 열고 나갔을 때 트럭 옆에 여자가 서 있었다. 운동을 하러 가는 것인가. 여자는 편안해 보이는 트레이닝복 차림이었다. 1층에 세 들어 사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눈인사 한 번 나눈 적 없는 사이였기 때문에 나는 모른 척 여자를 지나쳐 운전석 쪽으로 걸어갔다. 차 문을 열고 막 한 발을 올렸을 때였다. 뒤에서 내 셔츠를 잡아당기며 저기요, 했다.
 -소각해 주세요.
 
여자는 작지만 단호하게 말하며 내 눈앞에 뭔가를 불쑥 내밀었다. 눈앞으로 너무 바짝 들이밀어서인지 눈을 가늘게 뜨고 집중을 해도 그 물체가 무엇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 때 그 쪽에서 먼저 소리를 내며 정체를 알려왔다. 새였다. 몇 마리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한 음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동물들 처리할 때 함께 처리해주세요.

  여자가 손가락으로 트럭 뒤쪽을 가리켰다. 트럭 뒷문을 열면 사체수거함이 만들어져 있지만 겉으로 보기엔 눈여겨 볼 것도 없는 평범한 탑차였다. 이 동네에서 내 차가 사체수거용 차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사람들은 내 직업에 대해 호의적이지 않았다. 특히 여자들이 그랬다. 길을 가다가 죽은 고양이를 보면 꺄악, 소리를 지르며 누구든 얼른 치워주기를 바라지만 막상 그 죽은 동물을 수거하는 일을 업으로 하고 있다고 하면 죽은 고양이를 봤을 때보다 더 놀란 표정을 지었다. 언젠가부터 여자들 앞에서 내 직업을 숨기기 시작했다. 여자는 내 차가 사체수거용 차라는 것을 어떻게 알았을까.

  나는 여자가 무슨 말을 하는 것인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내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딴청을 피우자 여자는 겨우 귤 하나만한 몸집이라고, 다른 동물들 처리할 때 슬쩍 끼워 넣기만 하면 되는 일이라고 했다. 나는 그녀가 들고 있는 새장을 내려다보며 멀쩡히 살아있는 놈들을, 이라고 말했다. 그리고는 얼른 돌아서서 운전석으로 뛰어올랐다. 여자가 다시 잡아당기지 못하도록 서둘러 차 문을 닫고 시동을 걸었다. 여자가 차창을 두드리며 저기요, 불렀지만 나는 그대로 차를 출발시켰다. 골목을 빠져나가면서 사이드 미러를 보았다. 여자는 새장을 든 채 그대로 서 있었다.

  다음 날 여자는 어제와 똑같은 차림을 하고 트럭 옆에 서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정말 뭐 하자는 거야. 나는 작은 소리로 중얼거리며 어제처럼 그녀를 못 본 척 지나쳐 차 문을 열었다. 내가 운전석에 막 한 발을 올리려던 순간, 그녀가 재빨리 내 앞에 새장을 들이밀었다. 새장 안에는 예상과 달리 달랑 한 마리의 새가 들어있을 뿐이었다. 여자의 말처럼 새는 귤 하나정도의 작은 몸집이었고 얌전하게 봉 위에 앉아 있었다. 오늘은 울지도 않았다. 여러 음을 동시에 내던 울음소리와는 달리 생김새는 지극히 평범했다. 색깔이 화려한 것도 아니었고 부리 모양이 특이한 것도 아닌 작은 새는 그저 어디서나 흔하게 볼 수 있는 참새처럼 보였다.
  -영이에요.

  십자매라고 했다. 이름은 영이. 나도 새 종류 정도는 알고 있다는 듯, 하지만 새 이름 따위에는 관심이 없다는 듯 딴청을 부리며 눈앞에 들이민 새장을 여자 쪽으로 밀어냈다.
  -소각해 주세요. 부탁이에요.
  -그냥 날려 보내면 되잖아요.
  -날려 보내면 금방 잡아먹히고 말거예요.
  -이러나저러나 죽는 건 같군요.
  나는 명쾌한 대답이 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다시 운전석 위로 발을 올렸다.
  -무책임하게 그럴 순 없어요. 잡아먹히게 둘 순 없다고요.
  나는 여자의 말에 대꾸할 말이 생각나지 않아 지금 나보고 죽여 달라는 거야 뭐야, 라고 입엣말을 하며 운전석으로 올라탔다. 잡아먹힐 것을 알면서 날려 보내는 건 너무 잔인하잖아요. 여자는 내가 차문을 닫지 못하게 가로막고 서서 작은 소리로 웅얼거렸다. 급기야 내 입에서 하, 하고 비웃는 소리가 튀어나왔다. 잡아먹히는 걸 방지하기 위해 미리 죽이겠다? 문득 아버지가 떠올랐다. 우리가 낳았으니 마지막도 우리가 책임져야지, 했던 아버지의 마지막 말이. 잊으려고 아무리 노력해도 잊히지 않는 말이었다. 나는 미간을 찡그리며 아버지에 대한 생각을 떨쳐내고는 여자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처음으로 여자의 얼굴을 똑똑히 바라보았다. 볼이 홀쭉하게 들어갈 정도로 마른 얼굴이었지만 매끈한 피부 때문인지 전체적으로 어리게 보이는 얼굴이었다. 커다란 눈을 깜빡일 때마다 긴 속눈썹이 그림자를 만들어 쓸쓸해 보이는 인상을 풍겼다. 어려보이는 얼굴과 쓸쓸한 표정이 어울려 묘한 분위기를 자아낸다는 생각을 하다가 퍼뜩 고개를 젓고는 여자가 들고 있는 새장 쪽으로 시선을 돌려버렸다. 어차피 새가 아니었다면 여자가 내게 말을 거는 일은 없었을 테니까.
  -소각해 주세요. 늘 하는 일이잖아요.
 
아니다. 내가 늘 하는 일은 살아있는 고양이나 강아지나 새를 수거해서 소각하는 일이 아니다. 이미 목숨을 다 한 것들, 하지만 누구도 그 사후를 책임져 주지 않는 것들을 수거하고 처리하는 일이야말로 내가 늘 하는 일이었다. 하지만 굳이 로드킬, 사체, 폐사, 고양이, 고라니, 소각 등의 단어가 섞인 문장을 만들어 여자에게 설명하고 싶지는 않았다. 내가 해 줄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하고 짧게 말한 뒤 차문을 잡아당겼다. 그 순간 여자가 차 안으로 몸을 들이밀었다. 그리고 새장을 내 무릎 위에 올려놓았다.
  -뭐 하는 겁니까?

  내가 버럭 소리를 질렀을 땐 이미 여자가 조수석 문을 열고 올라탄 다음이었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뭐 하는 거냐고요? 나는 조수석에 앉은 여자를 보며 한 번 더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여자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다는 듯 내 무릎 위에 올려놓았던 새장을 자기 무릎 위로 옮겨 놓을 뿐이었다. 나는 잠시 뒤 조금 누그러진 목소리로 억지 부리지 말고 내리라고 말했다. 하지만 여자는 묵묵부답이었다. 말로는 안 될 것 같았다. 나는 차에서 내려 조수석 쪽으로 가 차문을 열었다. 출근해야 합니다, 라고 최대한 정중하게 말하며 여자가 내릴 수 있도록 문 옆으로 비켜섰다.
  -소각해 주세요.
  여자는 그 말밖에 할 줄 모르는 사람 같았다. 더는 참을 수가 없어 여자의 소매를 잡아끌었다. 하지만 여자는 재빨리 안전벨트를 채우며 몸을 좌석에 깊숙이 묻었다. 이대로 실랑이를 하다가는 지각을 할 게 뻔했다. 나는 멍하니 여자를 쳐다보며 섰다가 운전석으로 돌아가 앉았다. 오늘도 수거해야 할 사체들이 많을 것이다. 몇 년 전 A시와 B시 사이에 새 길이 났다. 산을 관통하는 터널이 생기고 산 중턱에 매끈한 아스팔트가 깔리자 두 도시를 오가는 차량이 늘어났고 덩달아 로드킬도 늘어났다. 도청 민원실로 하루에도 몇 건씩 신고가 들어왔다. 차에 치인 것 같은데 고양인지 뭔지 모르겠어요. 아침에 출근하면서 죽은 걸 봤는데 퇴근할 때 또 보다니 이거 원 기분 나빠서. 빨리 빨리 좀 치워요.
  로드킬이 늘어나자 죽은 동물을 처리하는 것도 문제가 되었다. 매몰하는 것도 한계가 있었다. 조류인플루엔자 때문에 이 지역의 가금류를 거의 모두 폐사시켜 매몰한 뒤 더 이상 매몰할 땅도 마땅치가 않은 상태였다. 게다가 썩은 물이 흥건한 땅에서 어떻게 농사를 짓고 사느냐는 주민들의 한탄이 쏟아졌다. 결국 도청 환경정책과에서 이동식 소각기를 도입하기로 결정했고, 트럭을 타고 도로와 주택가, 농로를 돌면서 차에 치이거나 버려지거나 폐사한 동물사체를 수거해 매몰하던 나의 업무는 소각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흔적이 남지 않는다는 점에서 매몰법보다 소각법이 월등하게 우수했다. 100킬로그램을 소각하면 5킬로그램 정도의 재만 남기고 모두 사라졌다. 나는 거의 모든 것을 사라지게 만드는 이 시스템이 마음에 들었다. 

   -지금이라도 내려요.
  골목을 천천히 빠져나가면서 여자에게 말했다. 내 말투 어디쯤에는, 여기서 내리지 않으면 하루 종일 나를 따라다닐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식의 협박이 묻어있었다. 여자는 고개를 숙인 채 아무 말이 없었다. 하, 참! 말이 안 통하네. 나도 더는 봐 줄 수가 없었다. 더는 신경 쓰지 않기로 작정하고 골목을 빠져나간 뒤 시내를 빠르게 통과했다. 그리고 새 길에 차를 올려 B시 쪽으로 향했다. 새로 난 길에서는 거의 매일 로드킬이 일어났다. 한 시간 정도 달리면서 죽은 동물을 여섯 번이나 목격한 날도 있었다. 오늘도 다르지 않았다. 새 길을 따라 달린 지 몇 분도 지나지 않아 중앙선 부근에 동물사체가 널브러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앗, 여자도 사체를 본 것인지 짧게 비명을 질렀다. 여자의 비명 소리에 놀란 새가 새장 안에서 퍼덕거렸다. 나는 새장을 한 번 보고는 다시 도로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사체 주위로 검붉은 얼룩이 넓게 퍼져 있었다. 차에 심하게 부딪혔거나 여러 대의 차에 거듭 치인 사체가 분명했다.
  차를 갓길에 세운 뒤 뛰어내렸다. 삽과 포대자루를 들고 길의 좌우를 살피며 일차선 쪽으로 달려갔다. 중앙선 부근에 길게 뻗어 있는 건 고양이사체였다. 몸집이 제법 큰데다 바닥에 붙어버릴 정도로 심하게 깔린 상태여서 얼핏 봐서는 고양이인지 뭔지 알 수가 없을 정도였다. 사체를 들어올리기 위해 삽을 바짝 고쳐 쥐려던 순간, 쉭 소리를 내며 트럭 한 대가 내 몸을 바짝 스쳐 지나갔다. 몸이 앞으로 휘청했다. 들고 있던 삽까지 떨어뜨렸다. 씨발, 욕이 절로 튀어나왔다. 언제든 나도 이 고양이 같은 신세가 되어 도로에 널브러질 수 있다는 생각을 하자 머리끝이 쭈뼛거렸다. 평소 같았으면 천 씨가 좌우를 살피며 나를 비호해주었을 텐데.
  얼마 전, 천 씨는 도로에서 사체를 수거하다가 차에 치여 크게 다쳤다. 이후 몇 차례 사람이 충원되었지만 대부분 일주일 정도 일한 뒤 고통을 호소했다. 머리가 아프다, 잠을 이룰 수가 없다, 악몽에 시달려서 수면제를 먹고 잔다. 그들은 하나같이 몸이 아프다고 호소하면서 이 일에서 손을 뗐다. 죽은 것들을 찾아다니고 수거해서 소각까지 해야 하는 일을 하고 싶어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새 사람을 뽑는 것보다 천 씨가 복귀하기를 기다리는 것이 더 나을 것 같았다. 하지만 기다림도 쉬운 것은 아니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천 씨의 빈자리가 느껴졌다. 지금처럼 위협적인 상황에서는 더더욱 그랬다. 나를 칠 뻔한 트럭이 저 멀리 사라지는 것을 바라보며 천 씨가 빨리 낫기를 기원했다.
  나는 도로 양 쪽을 둘러보며 차가 오는지를 살핀 뒤 삽을 집어 들고 사체를 떴다. 바닥에 바짝 삽을 밀어 넣어 사체를 떠올린 뒤 포대자루에 넣고 도로를 건넜다. 포대자루를 사체수거함에 던져 넣으려다 말고 다시 포대자루를 열고 사체를 살폈다. 아직 숨이 붙어있는 것은 아닐까. 살아있는 놈을 소각기에 넣고 작동시키는 실수는 하고 싶지 않았다. 다시 봐도 고양이는 형체도 없이 일그러지고 망가져 있었다. 역시 아니겠지. 숨이 붙어있을 리 없었다. 나는 마른 침을 한 번 삼킨 뒤 포대자루를 수거함에 던져 넣었다.
  오늘 하루 수거한 고양이만도 열 마리가 넘었다. 고라니와 새도 있었다. 새 길이 나면서 터전을 잃은 동물들이 길을 횡단하다 사고를 당하는 경우가 많았다. 고라니는 그렇다 치더라도 새가 차에 치이는 것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날개를 바닥에 펼친 채 죽어있는 새를 보면 차에 치인 게 아니라 공중의 무엇인가에 부딪쳐 떨어진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새를 들어 올려 수거함에 넣다 말고 언제나처럼 다시 한 번 새를 살폈다.
  -뭐 하는 거예요?  언제 차에서 내린 것인지 여자가 내 곁으로 다가오며 물었다. 나는, 살아있는 놈을 소각할 수는 없으니까요, 하고 분명한 목소리로 말했다. 여자의 귀에 정확하게 들릴 수 있도록. 살아있는 새를 소각할 생각은 그만두고 지금이라도 저 새장을 들고 집으로 돌아가 주기를 바라면서. 하지만 여자의 생각은 다른 것 같았다.
  -날려 보냈다가는 어딘가에서 저런 비참한 모습으로 죽임을 당할 게 뻔해요.
  여자는 끔찍하다는 듯 새가 든 포대자루를 보며 몸을 떨었다.  
  -왜 죽을 거라고 생각하죠?
  -날지를 못해요. 한쪽 날개가 없어요.
  나는 새장 안을 들여다보았다. 새는 한쪽 날개를 퍼덕이며 새장 안을 총총총 뛰어다니고 있었다. 가볍고 재바른 발놀림이었다. 날지는 못해도 뛰는 것은 자신 있다는 듯.
  -7년이나 함께 살았어요. 가족이나 마찬가지인데 죽을 걸 뻔히 알면서 날려 보낼 순 없어요. 내가 끝까지 책임을 져야죠.
  왜 여자는 내게 새를 맡아달라고 하지 않고 소각해 달라고 하는 것일까. 하긴 맡아달라고 해도 나는 맡아 기를 생각이 조금도 없었다. 나보다 먼저 죽을 가능성이 있는 것은 아무것도 기르고 싶지 않았다. 나는 고개를 돌려 여자를 바라보았다. 새장 지붕에 턱을 대고 앉은 여자는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표정이었다. 여자의 얼굴 위로 아버지가 겹쳐졌다. 살아도 사는 게 아닌 삶일 거야. 우리가 낳았으니 마지막도 우리가 책임져야 한다며 형의 손을 잡고 바다로 뛰어들던 아버지. 왜 저들은 죽음이 삶보다 안전할 것이라고 확신하는 것일까.

  매일 아침마다 아버지는 동전으로 점을 치면서 하루를 시작했다. 아직 없는 것을 위하여 지금 있는 것을 버리는 사람이었다, 아버지는. 일생 한방을 건지기 위해서 허공에 그물을 던지듯 동전을 던졌다. 이 손으로 하루치 운명을 조각하는 거란다. 실제로 아버지는 무언가를 조각하는 예술가처럼 진지한 표정으로 동전을 던졌다. 하지만 아버지의 말이 내 귀에는 이 손으로 하루치 운명을 조작하는 거란다, 로 들렸다. 동전을 던져 숫자 면이 나오면 길게 막대를 그리고 그 옆에 3이라는 숫자를 써 넣었고 반대 면이 나오면 짧은 막대를 두 개 그린 뒤 그 옆에 2라는 숫자를 써 넣었다. 그렇게 여섯 번 동전을 던져 점괘를 알아낸 다음에야 아버지의 하루는 시작되었다. 그날 아침, 아버지의 점괘는 어땠을까.
  그 날 아침도 여느 날과 다름없었다. 아버지는 진지한 얼굴로 동전 점을 쳤다. 다른 것이 있었다면 동전으로 점을 친 뒤 형과 나를 불러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는 것 정도였다. 아침을 먹은 뒤 우리는 함께 집을 나섰다.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했지만 형과 나는 뜻밖의 외출에 신이 나서 벙글거렸다. 아버지는 형의 손을 잡고 있었고 어머니는 내 손을 잡고 있었다. 추운 날씨였지만 어머니의 손은 땀으로 축축했다. 우리 없이 이 어린 것들이 어떻게 살아가겠어? 살아 있어봐야 빚쟁이들한테 시달릴 게 뻔해. 죽음보다 못한 삶이 될 거야. 끝까지 우리가 책임을 져야지.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말했다. 어머니는 그런 아버지 앞에서 고개를 숙인 채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나는 그날 보았던 검푸른 바다를 지금까지도 뚜렷하게 기억하고 있다. 멀리 내다보이는 칼로 자른 듯한 수평선, 바위 아래로 넘실대는 파도, 파도가 부서지면서 만들어내는 하얀 거품들. 겨울바람이 차가웠지만 나는 처음 보는 바다에 매료되어 추운 것도 잊은 채 넋을 놓고 바라보았다. 눈 깜짝할 사이에 벌어진 일이었다. 내가 바다를 보고 있는 사이 아버지가 형의 손을 잡고 바위에서 뛰어내렸다. 내가 아버지를, 형을 불렀을 때는 이미 바다가 그들을 삼킨 뒤였다. 어머니가 내 손을 잡아끌었다. 이번에는 우리 차례야, 라고 말하는 듯한 어머니의 손. 나는 두려움에 온 몸을 떨면서 잡고 있던 어머니의 손을 뿌리쳤다. 어머니가 내 이름을 부르며 달려왔지만 나는 필사적으로 달아났다. 하지만 아무리 앞서 달아나도 그 날의 기억은 또 다시 돌아와 내 앞에 서 있었다. 바다에 빠졌지만 극적으로 목숨을 건진 형은 그 나이에서 성장을 멈춰버렸다. 어머니는 그 때처럼 꾹 다문 입을 잘 열지 않았다. 간혹 소주를 몇 잔 마신 날에는 내가 죄인이다, 어미는 어미도 아니다, 라는 말을 하며 형의 손을 잡고 울먹였다. 아버지의 장례를 치른 뒤부터 어머니는 단 한순간도 편하게 쉬지 않았다. 식당에서 하루 종일 일하고 들어온 뒤에도 밤이 새도록 부업을 했다. 어머니는 앉은뱅이책상 앞에 앉아 볼트에 너트를 끼우고 인형 눈을 달고 양말의 짝을 맞추고 봉투를 붙이면서 머리가 하얘지고 주름이 생기고 허리가 굽어갔다. 그대로 화석이 되어갔다.
  -이제 그런 일 안해도 되잖아요.
  내가 버는 돈으로 생활이 가능해졌는데도 어머니는 일을 그만두지 않았다.
  -이거라도 해야 내가 산다.
  -편하게 살아도 돼요.
  -이게 편하다.
  어머니는 일손을 멈추지 않은 채 담담하게 말했다. 언젠가 어머니에게 물었다. 후회돼요? 그래, 후회된다. 뭐가 제일 후회돼요? 살다보면 살아진다는 것을 아버지한테 설명할 수 없었던 내 멍청함이 제일 후회된다. 나는 그런 어머니 앞에서 더는 아무것도 물어볼 수가 없었다. 나이가 들어 더 이상 식당 일을 할 수 없게 된 뒤로 어머니는 외출도 삼간 채 하루 종일 앉은뱅이책상 앞에 앉아 부업을 했다. 살아가는 것을 남에게 들키고 싶지 않은 사람처럼. 어딘가에서 남편이 보고 있을까봐 숨어서 살아가는 간부(姦婦)처럼. 사는 것이 마치 불륜인 것처럼. 그런 어머니 곁에서 형 역시 나이가 들어갔다. 어머니는 평생 형과 한방을 썼다. 내가 형과 같은 방을 쓰겠다고 했지만 어머니는 고개를 내저었다. 아직 엄마 손이 필요할 나이가 아니냐? 형이 스물을 넘기고 서른을 넘겨도 어머니는 똑같은 말을 했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형은 아버지를 닮아갔다. 아버지처럼 동전을 던지며 2 혹은 3이라고 외치는 형을 아버지로 착각해 나도 모르게 아버지,라고 부른 적도 있었다. 형은 많은 것들을 머리에서 지워버렸지만 아버지에 대한 기억만은 그대로 가지고 있는 듯했다. 태울 수만 있다면 형의 머리를 소각기에 넣고 작동시키고 싶었다. 1그램의 재도 남기지 않는 강력한 소각기에 넣고 활활 태워버리고 싶었다.

  로드킬 당한 새를 수거함에 던져 넣은 뒤 이동식 소각기가 있는 곳으로 차를 몰았다. 내가 수거함에서 동물사체를 꺼내는 동안 여자는 차에 가만히 앉아 있었다. 여자의 얼굴이 사이드 미러에 비쳤다. 여자는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지금이라도 소각을 원한다면 동물 사체에 슬쩍 끼워 넣으면 될 것이다. 하지만 여자는 내 앞에 새장을 들이밀지도, 소각해 달라는 말도 하지 않은 채 차에 가만히 앉아 있었다.
  소각은 두 번에 걸쳐 이루어졌다. 1차 챔버에서 650도의 열에서 태운 뒤 2차 챔버에서는 900도 이상의 고열로 완전 연소시켰다. 수거한 동물을 소각기로 옮기는 것도 힘든 일이었지만 무엇보다 참을 수 없는 것은 냄새였다. 이동식 소각기를 시범 설명할 당시 냄새에 대한 경고는 없었다. 하지만 머리카락이 타는 듯한 누린 냄새는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익숙해지지 않았다. 나는 동물이 소각되는 동안 줄담배 없이는 견딜 수가 없었다. 평소에는 피우지 않았지만 소각기를 작동시킬 때는 어김없이 담배의 힘을 빌 수밖에 없었다. 소각기를 작동시킨 뒤 조금 떨어진 곳에 퍼질러 앉아 담배를 피워 물었다.
  -냄새가 지독하네요.
  내 곁으로 다가온 여자가 말했다. 여자는 새장을 들고 있었다. 나는 턱으로 새장을 가리키며 어떻게 할 작정이냐고 물었다. 여자는 물끄러미 새장을 내려다볼 뿐 별 말이 없었다. 나는 새장 쪽으로 담배 연기를 길게 내뿜었다. 새가 퍼덕거리며 짹짹거렸다.  
  -새 때문에 살 수가 없다고 하더군요. 어느 날 갑자기 말이에요. 시끄러워서 살 수가 없다고요. 나한테 새를 버리라고 하는데, 그럴 수는 없었어요. 그럴 수는 없는 일이잖아요. 새를 안 버리면 자기가 나가겠다고 하더니 결국 짐을 싸서 집을 나갔어요. 
  여자가 중얼거렸다. 나에게 하는 말인지 혼잣말인지 알 수가 없어 나는 가만히 듣고만 있었다. 아침마다 내 앞을 가로막으며 새를 죽여 달라고 말한 건 모두 그 남자 때문이었나 보았다. 그런데 여자는 정말 믿는 것일까. 새가 없어지면 남자가 다시 돌아올 것이라는 것을. 사랑이 식어버린 한 남자가 떠나고 남은 여자는 ‘새의 처리’와 같은 조건만 충족되면 남자가 다시 돌아올 것이라고 믿는 익숙한 서사, 그 작위적인 이야기를 정말로 믿고 있는 것일까.
  -처음에는 두 마리였어요. 한 마리가 죽으면 남은 한 마리도 따라 죽는다고 하더군요. 외로워서 혼자서는 못 살아간다고. 그런데 얘는 저 혼자서 4년 넘게 살고 있어요. 한 마리가 죽었을 때 따라 죽었으면 차라리 좋았을 걸 그랬어요.
  여자가 새를 어루만지듯 새장을 매만지며 말했다. 나는 공중으로 길게 연기를 내뿜은 뒤 담배를 껐다. 소각이 다 끝날 때까지 여자는 새장을 껴안은 채 내 곁에 앉아 있었다. 주문처럼 반복하던 소각해 주세요, 라는 말은 끝내 하지 않은 채. 여자가 정말로 원한 것은 새를 소각하는 것이 아닐지도 몰랐다. 소각은 날이 어두워진 뒤에야 끝이 났다. 일이 끝난 뒤 천 씨가 입원해 있는 병원으로 향했다. 집에 가기 전에 잠깐 들를 곳이 있는데, 라고 말을 꺼냈을 때 여자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좋을 대로 하세요.

  병실 문을 열자 왈칵 웃음소리가 쏟아졌다. 
  -로드킬 당할 뻔한 거지.
  웃음소리와 함께 천 씨의 커다란 목소리가 들렸다. 내가 입원실에 들어서자 환자들이 일제히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창가 침대에 있는 천 씨에게 다가가면서 그들을 일별했다. 더러는 눈에 익은 사람이었고 더러는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병문안을 올 때마다 새로운 얼굴 한둘 정도는 꼭 있었다. 그들은 잠시 나를 보는가 싶더니 이내 천 씨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재밌는 이야기가 한창이었던 것처럼 입원실 안의 분위기는 사뭇 들떠 있었다.
  -왔어?
  -만날 그 이야기에요? 질리지도 않아요?
  -아픈 사람이 아픈 얘기 말고 무슨 할 이야기가 있겠어? 여기 사람들 전부 아픈 것 밖에 할 이야기 없어. 아픈 거, 다친 거, 그리고 아직 죽지 않은 거.
  한쪽 팔을 잃는 큰 사고였는데도 천 씨는 다른 팔을 들어 보이며 내내 웃었다. 팔 하나야, 잃은 건. 아직 팔 하나는 남았잖아. 나는 늘 운이 좋은 편이었어. 팔 하나 잃은 것을 마치 자전거 바퀴 하나에 펑크가 난 정도로 말했다. 두 바퀴 다 펑크가 나지 않아서 얼마나 다행이냐고. 살아오는 내내 운이 좋았던 적도, 다행이라고 여겼던 적도 없었던 내게 천 씨는 전혀 다른 세계에 사는 사람 같았다.
  -혼자서 힘들어서 어째?
  내내 웃고 있던 천 씨가 굳은 얼굴로 말했다. 죽다 살아난 사람이 지금 누구 걱정을 하는 것인지. 나는 별 말 없이 천 씨를 보고 섰다가 들어올 때처럼 슬그머니 돌아서서 병실을 나섰다. 언제나처럼 천 씨가 병실을 나서는 나를 따라 나왔다. 담배나 한 대 필까 하고, 라고 말했지만 실은 나를 배웅하러 나선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요즘에도 꿈 때문에 잠을 못 자?
  병원 로비를 나서며 천 씨가 물었다. 팔 하나를 잃은 것보다 나의 불면증이야말로 더 큰 병이라는 듯 걱정스러운 말투였다. 꿈이요? 어제도 꿈을 꿨다. 바다 위를 날아가던 새 한 마리가 날개를 접고 바다 속으로 떨어졌다. 새는 다이빙 선수가 머리부터 낙하하는 것처럼 갑자기 날개를 접고는 부리를 아래로 향한 채 빠른 속도로 떨어졌다. 마치 보이지 않는 장애물에 부딪힌 것 같은 갑작스러운 낙하였다. 새가 물속으로 빨려 들어가듯 사라진 뒤 어디선가 거대한 새떼가 나타났다. 그리고 마치 누군가 호각을 불어 출발을 알리기라도 한 것처럼 일제히 날개를 접고 바다로 떨어졌다. 까맣게 하늘을 뒤덮었던 새들이 우수수 낙엽처럼 떨어져 내리는 순간, 나는 몸을 뒤척이며 눈을 떴다. 꿈에서 깬 뒤에도 새 무리의 잔상이 눈앞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한참을 뒤척이다가 다시 자기 위해 눈을 감았다. 눈을 감자, 내 눈앞에서 새들이 무리지어 바다로 뛰어들었다. 나는 머리를 흔들며 눈을 떴다. 다시 잠을 청해 봐야 소용없을 것 같았다. 나는 뜬 눈으로 아침까지 누워 있다가 집을 나섰다.
  -새네.
  천 씨가 손가락으로 어딘가를 가리키며 말했다. 간밤에 꿨던 꿈을 떠올리고 있던 나는 퍼뜩 정신을 차리고 천 씨가 가리키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새장을 든 여자가 서 있었다. 내가 천 씨의 병실에 간다고 했을 때 여자는 차에서 기다리겠다고 했다. 여자를 너무 오래 기다리게 한 것일까. 나는 여자를 향해 손을 들었다가 슬그머니 내렸다. 대신 빠른 걸음으로 여자에게 다가갔다.
  -십자매군.
  내 뒤를 따라온 천 씨가 새장 안을 들여다보며 말했다. 나는 여자와 새에 대해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곰곰이 생각했지만 딱히 생각나는 것이 없었다. 여자가 새를 소각해달라고 하는데 어쩌면 좋겠느냐고 의논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십자매는 한 마리만 키우면 외로워서 안 되는데. 처음에는 두 마리였어요. 아, 혼자 남은 거군. 녀석, 그동안 외로웠겠네. 한쪽 날개가 없어서 날지를 못해요. 음, 나하고 처지가 같네. 그래도 두 다리는 멀쩡하잖아, 이 녀석도 나도. 천 씨는 새와 자신의 두 다리를 가리키며 씨익, 웃었다. 문장이 끝날 때마다 찍는 마침표처럼 천 씨는 말끝마다 웃음표를 찍었다. 그 덕분에 천 씨의 문장은 모두 희극적이었다. 아무리 슬픈 이야기라도 웃음표가 찍히는 순간 명랑한 이야기로 바뀌었다. 여자도 천 씨의 웃음표에 금방 물든 것 같았다. 천 씨가 말을 마칠 때마다 여자는 곧잘 웃음을 터트리곤 했다. 천 씨에게 새와 여자에 대한 설명은 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여자에게도 천 씨에 대한 설명은 필요 없을 것 같았다. 두 사람은 새장을 가운데 놓고 오래 알고 지내던 사람처럼 말을 이어갔다. 그 풍경은 따뜻하고 편안했다. 뭔가 하나씩 잃어버린 자들이 모여 서로의 상처에 후후, 입김을 불어주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나는 슬쩍 그들 곁으로 다가섰다. 얼어붙은 손을 녹이려고 난로 가에 바짝 다가서는 사람처럼 그들 옆에 바짝 붙어 섰다.
  -영이에요.
  내가 지금 뭐라고 한 것인가. 오늘 아침만 하더라도 이름 따위 관심 없다고 딴청을 피웠는데 능청스럽게 이 새에 대해 잘 알고 있는 것처럼 굴다니. 내가 새 이름을 불렀을 때 나보다 더 놀란 것은 여자였다. 새장을 보고 있던 여자가 불쑥 얼굴을 들어 나를 바라보았다. 눈을 동그랗게 뜨고 한동안 나를 보고 있던 여자의 입가에 작은 미소가 번졌다. 환했다. 그 사소한 미소가 나를 들뜨게 만들었다. 나도 모르게 얼굴이 달아올랐다. 나는 급히 고개를 숙였지만 한번 달아오른 얼굴은 좀처럼 식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가는 내내 여자와 나는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불시에 뛰기 시작한 가슴은 쉽게 진정되지 않았고 나는 여자 쪽을 제대로 볼 수가 없었다. 집 앞에 트럭을 대고 여자가 새장을 들고 내릴 때까지 나는 운전석에 앉아 앞만 바라보았다. 그날 밤 나는 바다로 추락하는 새무리에 대한 꿈을 꾸지 않았다. 꿈을 꾸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무슨 꿈을 꿨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어딘가를 헤매는 꿈같기도 했고 어딘가 목적지를 향해 열심히 달려가는 꿈같기도 했다. 아침에 일어났을 때 먼 길을 갔다 온 것처럼 다리가 아팠고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그리고 제일 먼저 여자가 떠올랐다. 여자의 웃는 모습을 다시 보고 싶었다. 누군가의 생이 환하게 빛나는 찰나를 함께 하고픈 열망 같은 것이었다.

  대문을 열고 나갔을 때 여자는 보이지 않았다. 나는 트럭 주위를 이리저리 살피며 서성거리다 대문 안을 기웃거렸다. 여자의 방 창문에 짙은 색 커튼이 쳐져 있는 것이 보였다. 나는 한참동안 여자의 방 쪽을 보고 섰다가 트럭 쪽으로 걸어갔다. ‘새의 처리’에 대한 마음이 바뀌었다면 이제 내 앞에 나타날 일은 없을 것이다. 어차피 모든 게 새 때문이었으니까. 나는 골목을 다 빠져나갈 때까지 몇 번이나 사이드 미러를 보았지만 끝내 여자는 나타나지 않았다.
  하루 종일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날이었다. 바이러스에 감염돼 폐사한 닭 수백 마리를 수거하여 소각하는 일은 해도 해도 끝이 없었다. 아침 일찍부터 시작된 일은 저녁 늦게야 끝이 났고 트럭에 탔을 때는 녹초가 될 정도였다. 시동을 걸고 운전대를 잡았을 때 여자가 떠올랐다. 여자가 앉았던 조수석 쪽을 바라보았다. 새장을 안고 있던 여자의 모습이 손에 잡힐 듯 떠올랐다. 여자가 보고 싶었다. 여자를 다시 웃게 만들고 싶었다. 짹짹거리던 영이의 지저귐조차 그리웠다. 그러다가 문득 화들짝 놀라 몸을 바로 세웠다. 겨우 한 번 본 여자를, 겨우 하루 본 여자를 이토록 그리워하다니. 게다가 여자에게는 새를 소각하게까지 만드는 남자가 있지 않은가. 불끈, 일면식도 없는 어떤 남자에 대한 미움이 솟아올랐다. 운전대를 쥐고 있던 손이 부르르 떨렸다. 집으로 가려던 마음을 바꿔 병원으로 향했다. 이대로 집에 들어가면 한 잠도 이룰 수 없을 것 같았다. 여자의 방에 불이 켜져 있으면 켜져 있는 대로 꺼져 있으면 꺼져 있는 대로 그 앞에서 내내 서성일 게 분명했다. 혼자서 힘들어서 어째, 라고 물어주는 천 씨의 목소리라도 듣고 나면 마음이 진정될지도 모른다. 나는 액셀러레이터를 꾹 밟았다.
  병원 마당으로 들어서서 주차장으로 막 진입하려던 때였다. 여자였다. 병원 외부에 설치된 조명과 차 헤드라이트를 받으며 서 있는 두 사람은 분명 천 씨와 여자였다. 두 사람은 어제처럼 가운데 영이를 두고 마주보며 서 있었다. 천 씨의 말에 여자는 자주 웃음을 터뜨렸고 천 씨의 빈소매가 바람에 나풀거리는 것이 보였다. 사이좋은 부녀지간처럼 보였다. 여기까지 들릴 리 만무했지만 영이가 지저귀는 소리도 들리는 것 같았다. 영이가 보고 싶을 것 같다고 하더군요. 어젯밤 트럭에서 내리며 했던 여자의 말이 떠올랐다. 천 씨는 내내 영이를 바라보며 짹짹, 짹짹, 소리를 냈었다. 영이의 언어로 대화를 하려는 것처럼 몇 번이고 짹짹거렸다. 천 씨가 새를 좋아했던가. 그러고 보니 천 씨는 모든 동물을 다 좋아했다. 살아있는 것이든 죽은 것이든 모두 귀하게 다루었다. 여자는 그런 천 씨에게 영이를 보여주려고 온 것인가 보았다. 영이를 보며 웃는 천 씨의 얼굴에 깊은 주름이 잡혔다. 오랫동안 이발을 하지 못해 아무렇게나 자란 천 씨의 흰 머리가 조명을 받아 유난히 새하얗게 보였다.
  -로드킬 당할 뻔한 거지.
  차에서 내려 천천히 그들 곁으로 다가가자 천 씨의 큰 목소리가 들렸다. 죽다 살아난 얘기를 능청스럽게 하고 있는 천 씨 곁에서 여자가 활짝 웃고 있었다. 영이도 천 씨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 것처럼 새장 안에서 한쪽 날개를 퍼덕거리며 짹짹거렸다.
  -왔나?
  천 씨가 나를 보며 손을 들어보였다. 여자가 고개를 돌려 나를 보았다. 전생의 일 같았다. 어제 보고 겨우 하루가 지났을 뿐인데 여자를 향한 그리움은 몇 겁을 거친 것처럼 커져 있었고 막상 여자를 보자 왈칵 눈물이 날 정도로 반가웠다. 나는 천천히 여자 곁으로 다가섰다. 여자의 숨결이 느껴졌다. 그제야 안도감이 느껴졌다.
  -여긴 어떻게…?
  -퇴원하면 영이를 내가 맡기로 했어. 내가 키우고 싶다고 억지를 좀 부렸지.
  여자 대신 천 씨가 말했다.
  -그 때까지는 이렇게 병원에 데리고 와서 보여주기로 했고 말이야.
  -새를 맡기면….
  새를 누군가에게 맡기고 나면 떠날 거냐고 물어보고 싶었지만 차마 말이 나오지 않았다. 새만 처리하고 나면 그 남자를 찾아 갈 것이냐고, 새를 처리했으니 이제 그 남자에게 다시 돌아오라고 할 것이냐고 물어야 하는데. 하지만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여자가 무슨 대답을 할지 두려워서 아무것도 물을 수가 없었다. 여자의 미소를 보지 못하게 될까봐, 꿈에서조차 나를 뛰게 만들었던 여자를 이대로 잃어버리게 될까봐, 기억을 소각하기 위해 발버둥 쳤던 일상으로 돌아가게 될까봐 무서웠다. 마음 한 귀퉁이가 무너져 내리는 것 같았다.
  -나, 퇴원하려면 아직 한참 남았어.
  천 씨가 나를 보며 말했다. 마치 내 마음을 다 읽었다는 듯이 아직 한참이나 남았다는 말을 몇 번이나 되뇌며 강조했다. 그리고 그 때까지 영이를 데리고 와 달라는 부탁도 잊지 않았다. 그럴게요. 나는 천 씨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여자를 조수석에 태우고 매일 병원으로 오는 상상을 하자 무너졌던 마음의 한 귀퉁이가 다시금 부풀어 올랐다. 짹짹, 짹짹, 영이가 울었다. 천 씨가 새장 가까이 얼굴을 들이대고 새소리를 흉내 냈다. 영이의 언어.
  나는 천 씨와 영이의 대화를 듣고 있다가 문득 여자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녀의 이야기가 듣고 싶었다.■

약력
△1972년 경상남도 고성 출생.
△동아대 독어독문학과 졸.
△프리랜서 라디오 방송작가.

●당선소감
당선통보를 들으면 어떤 기분일까, 당선통보를 들으면 제일 먼저 무엇을 할까, 참 많이 생각했습니다. 들뜬 기분으로 제가 아는 거의 모든 사람들에게 전화를 걸어 기쁨을 나누지 않을까, 막연히 생각했지요. 하지만 막상 당선됐다는 전화를 받았을 때 제일 먼저 한 것은 컴퓨터를 켜고 제가 쓴 소설을 찾아 읽는 것이었습니다.

이 글이 당선됐구나. 초고를 쓴 뒤 수없이 고치고 고치면서 거의 외울 정도가 됐지만 그래도 다시 읽으니 또 새로운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응모할 때까지 보이지 않았던 오타를 찾아냈습니다. 어색한 문장도 눈에 들어왔습니다. 여전히 부족한 점이 많은 글입니다. 그래도 이제 시작이니 더 나아질 것입니다. 이대로 머물지 않고 ‘읽을 만한 소설’을 쓰는 작가가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수상소감을 쓰는 지금도 생각합니다. 멋진 수상소감을 쓰고 싶다, 어디 좋은 말 없나, 특별한 수상 소감을 쓰고 싶은데, 하고요. 아마 소설을 쓸 때도 그랬을 것입니다. 멋지게 쓰고 싶다, 어디 좋은 표현 없나, 눈에 확 띄는 뭔가를 써야지, 하고 말이지요. 그런 마음을 내려놓는 것으로부터 비로소 좋은 소설이 시작되는 것이라고 가르쳐주신 박상우 선생님께 어떻게 감사의 마음을 전해야 할런지요? 어떤 말로도 다 표현되지 못할 마음이라는 것, 아시리라 생각합니다. 진심어린 충고로 합평해 주신 문우님들께도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소설을 쓸 때도 쓰지 못할 때도 같은 꿈을 꾸는 문우님들의 존재는 그 자체로 큰 힘이 됐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스쳐지나갑니다. 모두에게 마음을 전합니다.

좋은 소설 혹은 소설을 쓰는 자세에 대해 생각해봅니다. 제가 매일 매일 쓰고 있는 글들의 대부분은 버려질 글들임을 잘 압니다. 아직 소설의 모습을 갖추지 못한, 삶의 의미를 제대로 담아내지 못한, 영글지 못한, 미숙한 글들이 대부분이니까요. 그러니 매일 소설을 쓰는 일은 실은 매일 파지를 만들어내는 일이라는 것 역시 잘 압니다. 하지만 그 파지를 만들어내는 일을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오늘보다는 내일 조금 더 좋아질 것을 믿으며 열심히 생각하고 묵묵히 쓰겠습니다. 오랫동안 기다린 소식을 듣게 해 주신 심사위원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심사평

총 응모작 285편 중 예심을 통과한 89편을 대상으로 본심이 진행됐다. 심사위원 3명이 나눠 3주 동안 모든 작품을 꼼꼼하게 읽고 검토했다. 응모작 대부분이 상당한 문장력과 공들인 문학적 형상화의 과정을 보여줬다. 기발한 소재와 상상으로 반짝이는 작품도 여러 편이었다. 다만 많은 응모작이 후반부로 접어들면서 이야기를 밀고 나가는 힘이 약화되는 것은 아쉬웠다. 결말 부분에서 화해의 장면이나 삶에 대한 어떤 성찰을 제시하려고 서두르다보니 이야기의 개연성이 떨어지고 인과관계가 어긋나게 된 경우가 아닌가 싶다. 

각각 뽑은 10편을 놓고 함께 심도 있게 살폈다. 이들 작품의 제목은 다음과 같다(가나다 순). ‘견과류를 비웃다’, ‘금가락지’, ‘넬라 판타지아’, ‘떼 까마귀’, ‘신재연’, ‘알바트로스’, ‘유성’, ‘1그램의 재’, ‘초대’, ‘톱밥’.
내용이 어느 정도의 현실감과 설득력을 확보하고 있는지, 또 문장의 윤택함이나 구성의 정교함 정도가 어떠한지 등을 논의했다. 엇비슷한 정도의 장점과 단점을 갖고 있어 선뜻 선택하기가 쉽지 않았다.

최종적으로 심사위원이 선택한 신재동의 ‘금가락지’와 강이나의 ‘1그램의 재’가 최종심에 오르게 됐다. ‘금가락지’는 정통 서사의 기법에 충실하면서 작가가 지녀야 할 시대 인식의 모색에도 투철한 면이 있다. 그러나 흔히 짐작할만한 서사 구조의 편리함을 택한 것이 아닌가 하는 걱정도 들었다. ‘1그램의 재’는 현대를 살아가는 인간의 자연과 생명에 대한 인식방법 혹은 대응방법의 세밀한 과정을 형상화하고 있다. 그러나 작가가 제시하는 상황이 다소 작위적으로 설정되어 갑갑하다는 느낌이었다.

두 작품 중 한편을 고른다는 것은 이런 경우 늘 그렇듯이 쉬 작심이 되지 않았다. ‘금가락지’의 부인할 길 없는 호소력이나 ‘1그램의 재’의 야심적인 소재 발상이나 버리기 아까운 강점이었다. 그러나 작품 자체의 성취도와 함께 우리 문학계에 새 얼굴 등장이 갖는 의미가 고려돼야 한다는 관점에서 ‘1그램의 재’를 선정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수상자께는 큰 축하를, 다른 응모자들께는 격려를 보낸다. 본심에서 논의된 나머지 9편과 편수 제한 때문에 본심에 오르지 못했던 일부 응모작도 나름의 강점을 가진 작품들이었다. 
정진을 빈다.

 

 

동양일보TV

저작권자 © 동양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