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희송 에른스트국제학교 교장

(동양일보) 시대의 변화정도와 그 속도로 볼 때 기실(其實) 교육개혁은 그 주장에 있어서 긴장의 정도가 그리 심각하지 않다. 그 이유는 바로 교육을 둘러싼 사회 환경의 변화속도가 범상치 않기 때문이다.

디지털시대는 이제 하나의 시대로 범주화할 수 없는 정도가 되었다. 기술과 지식의 개념적 통합은 지식이 지식을 낳던 형질변경의 시대에서 디지털이 다른 디지털을 창조하는 유전자 변형의 시대로 세상을 인도했다. 디지털혁명으로 불리던 제3차 산업혁명의 시대를 불과 몇 십 년 만에 뒤로 하고 빅 데이터(big data), 로보틱스(robotics), 사물 인터넷 등의 생소한 신조어들로 그려진 온전히 다른 종(種)으로 진화한 새로운 디지털 시대가 4차 산업혁명이란 독자성으로 21세기 진화론의 충분조건을 만족시키고 있다.

3차 산업혁명시대의 인공지능은 인간지능에 복종하는 수준의 대접을 받는 것에 그쳤지만 4차 산업혁명시대의 인공지능은 인간지능과 경쟁하는 단계를 거쳐 커즈와일(Ray Kurzweil)의 예상에 의하면 앞으로 달랑 17년 후인 2045년에 급기야 인간지능보다 우월한 지위를 차지한다. 지금까지 우리는 컴퓨터의 이용방법을 기능적으로만 익히면 되는 시대에서 살아 왔다. 컴퓨터와의 대화는 프로그래머들의 영역에 한정되었었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컴퓨터의 세상을 읽는 방법을 모르면 생활자체에 많은 제한이 따르는 세상에 이미 들어섰다. 그것이 4차 산업혁명의 한 측면이다.

컴퓨터의 문제인식방식과 문제해결방법은 인간과 같지 않다. 사람이 원을 그린다면 먼저 원점을 잡고 거기에서 반지름을 정한 뒤 이를 원점을 중심으로 회전시키지만 로봇은 그런 과정을 모른다. 무게중심이 원의 원점에 완전히 집중되도록 설계된 로봇이라면 원을 그리기보다 오히려 원을 그려야 할 종이를 찢는 일에 더 적합성을 가질 것이다. 이제 미래사회에서 사회성을 유지하려면 인간은 로봇의 인식과정과 문제해결논리를 배워야한다.

코드(code)는 어떤 단어를 다른 방식으로 표현하는 것을 이르는 말이었다. 예를 들어서 난수표(亂數表)에서 숫자의 조합은 어떤 글자를 의미한다. 여기에서 ‘a’가 ‘4’라는 숫자와 대응하면 a는 4로 코딩(coding) 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컴퓨터도 4를 인간처럼 인식하지 못한다. 자신의 인식방법인 디지털이란 이진법의 조합으로 코딩을 해야 컴퓨터는 이 숫자를 인식 할 수 있다. 디지털로 코딩된 4는 코딩의 반대인 디코딩(decoding)을 통해 다시 우리 앞에 4로 나타내 진다. 따라서 사실 거의 모든 컴퓨터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는 코딩과 디코딩을 실행하는 기계다.

이러 연유로 컴퓨터와 대화하려면 무릇 코딩을 할 줄 알아야 한다. 절대적으로 컴퓨터시대일 수밖에 없는 제4차 산업혁명 이후를 살아야 할 지금의 아이들에게 코딩교육은 필연일 것이다. 따라서 교육환경변화에 의지해서 교육개혁을 논한다면 우리는 아무 노력 없이도 교육부의 교육과정의 변경만으로도 교육개혁을 이룰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교육개혁을 논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지금까지 교육환경의 변화는 근본적이고도 내면적인 변화를 동반하지 못했다. 예를 들어 학습내용을 이해해야 한다는 구호는 공식을 암기한 후 문제를 풀어야 한다는 전제에 아무런 변화를 주지 못했다. 왜 풀어야 하는지 왜 공식이 그런지에 집착하는 학생은 오히려 시험범위에서 벗어나는 비현실적 인격으로 평가되었다. 학습진도의 무흠결성(無欠缺性)이란 전제아래에서 그에 관한 시험에서 얼마의 점수를 확보하느냐에 일차원적 선형함수를 적용하여 학생들의 성과를 도출해 내었다. 컴퓨터의 문제인식과 해결과정이 인간의 논리력 향상에 얼마의 도움을 줄 수 있는가의 문제는 코딩교육의무화의 논쟁단계에서부터 도외시되고 있다. 우리나라의 교육에 재빨리 적응하는 지역들에서는 이미 코딩 사교육시장이 과열현상을 빚고 있다는 소식이다. 시험점수의 확보가 인생의 절대적 구성요소라는 철칙을 그대로 두고 코딩이라는 과목을 하나 더 추가하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 시험과목의 변화와 평가방법의 변동으로 교육개혁에 도전하고자 했던 지난 시절의 시도들이 무용지물로 전락한 이유를 이해하고 변화의 시기에 그 본질적 측면을 이용하여 이를 진정한 교육개혁의 기회로 삼는 것이 어떠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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