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희팔 논설위원 / 소설가

 천년만년 이리 재고 저리 재기만 하지 얼른 실행에 옮기지를 못한다. 남편이란 작대기가 그렇다. 그래 하도 답답해서 마누라가 하루는 강짜를 부렸다. '당신 도대체 어찌된 사람이오. 그냥 보고만 있으려니께 영 답답해서 지레 죽겠소. 한다든지 안 한다든지 속히 좀 결단을 내려야지 무슨 일이든 부지하세월이니 하는 소리요.' '부지하세월은 무슨 이제 보름밖에 안 됐는데, 너무 그리 서두르지 마오.' '아니 서두르다니, 그 쪽에선 안 줄려고 찜찜해하는 걸 사정사정 빌어 붙여서 겨우 얻어놨더니만 뭐요 보름밖에? 보름이 적은 날짜요. 보자보자 하니까, 얻어온 장 한 번 더 뜬다더니 참, 딴전 부르기는!' '건 또 무슨 소리요. 우리 마누라 별 소릴 다 아네.' '잘못을 따져서 꾸짖으려고 하는 참에 도리어 더 좋지 않은 말을 늘어 논다는 말이요 왜 내가 못할 말 했수?' '그게 그 말이구먼. 하지만 무슨 일이든 심사숙고 해야지 섣부르게 처리하면 안 되제.' '그 놈의 심사숙고 심사숙고는, 에이 복장 터져.'

마누라가 400여 평 밭에 비닐하우수를 지어 농작물 수확 좀 올려보고자 이웃마을 지인에게 부탁해서 활대(비닐하우스 재료)를 40여 개 얻어놓고 남편에게 지어달라고 했더니, 이 남편 말따나 보름이 지났는데도 손을 안 대고 망설이고만 있는 것이다. 활대만 있지 말뚝이며 인발파이프, 장수 양 끈, 연결핀, 조리개, 검정밴드 끈. 결속선, 녹색필름, 점적호스, 내압편사호스. 수동개폐기, 피스, 새들 고정 구, T고정 구, 대각 고정 구, 라인밸브, 라인밸브 지주대, 사철(패드스프링) 등 대략 이 활대에 수반하는 재료들이 들어가고, 인건비를 줄이고자 마누라와 둘이 짓는다 해도 과연 이 돈과 품을 들여 지금보다 얼마나 소득이 오를지 이게 의문이고 문제점인 것이다. 해서 농자재 판매소에 가서 은근히 가격을 알아보기도 하고 동네사람들에게 슬쩍 효과 정도를 물어보기도 하고 나름대로 머릿속에서 이 궁리 저 궁리 해 보느라 지금까지이다. 그러니 이러한 그의 속내를 모를 리 없는 동네사람들이다.

'그 사람 비닐하우스는 내년에나 가야 지을 걸.' '내년에도 지을까 말까지.' '영영 물 건너갈 지도 몰라.' '무슨 일이든 잠깐이면 끝낼 걸 질질 끄는 성질이라 할 수 없제.'

조롱조로 빗대어 하는 소리다. 그래도 동네아낙들은 이 남정네의 마누라 편에서 다독인다.

'보라장기, 보라장기 해서 그게 무슨 말인가 했더니, '오래 들여다보기만 하고 빨리 두지 않는 장기'를 말한다며?' '그렇댜 글쎄, 손으로 턱을 괴고 앉아 이 궁리 저 궁리만 하면서 도대체 두질 않고 있으니 아무리 부쳐 가운데 토막이라도 신경질이 나제. 그래서 그와는 다시는 장기를 두지 않는다잖여.' '그러니 그런 사람하고 같이 사는 그 아낙은 속이 얼마나 터지겄어.' '여북하면 다른 일에도 다 그러니 보라장기라 별명을 붙였지. 하여튼 그 안에서도 참 딱햐.' '크지도 작지도 않고 딱 알맞은 게 시상에 워딨어 우연만하면 그냥 넘어가기도 하련만 이건 마누라 생각은 눈곱만큼도 안 해주니 워트케 한 이불 속에서 살아 그래.' '그래도 한 가지, 마누라 강짜에도 화 한 번 안 내고 태평한 말로 넘긴다니 그나마 다행이지 그래서 그 아낙이 끈이 붙어 있나벼. 나 같으면 벌써 갈라서도 갈라섰지.'

그러한데 동네사람들이 그런 그를 딱 잘라 무시 못 하는 일이 하나 있다. 한 3,4년 전의 일이다. 한창 오리축사가 재미를 볼 때다. 그의 논 너마지기와 양 쪽으로 붙어 있는 닷 마지기, 너마지기의 논임자들이 같이 오리축사를 짓자고 했다. 그러면 논농사보다 훨씬 이익이 보장될 것이라며 졸라댔다. '왜 그 좋은 걸 구태여 나를 끌어들이려고 들 그러는가?' '자네 논이 가운데 박혀있으니 같이 하지 않으면 별 효과가 없어 그러네. 같이 셋집이 어울러 지으면 비용도 절감되고 허가 받기도 용이해 축사 모양도 좋고 말이지. 어때 좋은 생각 아닌가?' '글쎄 그도 좋다만 좀 더 생각해 보세!' 그리고도 응답이 없어 다시 졸랐다. '어때 생각 좀 해보았는가?' '그거 축사를 짓자면 1,2백이 드는 것도 아니고 억대 이상이야 할 텐데 그 비용도 문제야.' '거 염려 말게 우리가 다 대출 알선해 주고 앞장설 테니까. 요새 오리축사 붐 아닌가!' '글쎄 더 생각 좀 해 보구.' 그러면서 그 후로도 좀 더 생각해 보자는 게 어언 1년여가 다 돼가고 있었다. 그런데 그 1년 되던 해 오리파동이 불어 닥쳤다. 그놈의 AI 확산 때문이었다. 하여 오리들이 살처분 되고 오리축사들이 사양길에 들어 문을 닫는 일이 일어났다. 그리하여 '하마터면 큰 손해 볼 번했네. 이게 다 보라장기 덕분일세.'하며 천만다행으로 여겼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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