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민영(서원대 교수)

(동양일보 정민영 기자) 숲은 생명의 근원이다. 오랫동안 시간과 공간이 켜켜이 쌓여서 이루어진 숲에는 온갖 생명체가 깃들어 조화를 이루면서 공존한다. 그뿐 아니라 숲은 맑은 공기와 깨끗한 물의 공급원이자 아름답고 쾌적한 쉼터로서 삶의 질과 행복지수를 높이는 데 크게 기여한다. 우리는 언제 어디서나 청산과 녹수라는 말을 떠올리기만 해도 머리가 맑아지고 가슴이 시원해지는 청량감을 느낀다. 숲이 인류의 삶에 베풀어 주는 혜택은 아주 다양하고 크기 때문에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숲의 근간인 치산치수(治山治水)는 성군의 덕목으로서 백성들의 삶을 윤택하게 해 왔다.

숲을 이루고 있는 녹색식물은 이산화탄소를 흡수하고 광합성작용으로 산소를 만들어 방출함으로써 생명체들이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 준다. 그리고 탄수화물을 합성하여 열량을 제공함으로써 지구상의 많은 생명체를 생존하게 한다. 생존의 문제와 더불어 뿌리 깊은 나무가 무성하게 우거진 숲은 큰비가 내려도 산사태와 홍수를 거뜬히 이겨내고 빗물을 적당량 머금고 있다가 필요한 만큼 조금씩 서서히 흘려보내 가뭄을 극복한다. 또한 숲은 우리에게 휴식과 치유의 공간이 될 뿐 아니라 인류의 삶에 필수불가결한 산림자원을 끝없이 제공해 준다.

누구든지 잠시라도 푸른 나무 그늘 아래 서 있거나 숲 속으로 난 길을 걸으면, 초록빛에 흠뻑 젖어 신선한 생동감을 맛보게 된다. 아울러 속세의 번다함을 잊고 자연과 하나가 되어 무한한 자유와 여유를 갖게 된다. 그래서 도시 생활에 지친 현대인들은 종종 푸른 숲을 바라보며 언젠가는 도시를 떠나 자연이 베풀어 주는 쾌적한 환경에서 여유롭게 피로를 풀며 마음의 안정을 찾고 싶어 한다. 때로는 숲 속에 널려 있는 약용식물들이 건강을 지켜 주고 온갖 질병을 치유해 준다는 데에 귀가 솔깃해지기도 한다. 그런 이유로 요즘 텔레비전에서 방영되는 내용 가운데 청산에 깃들어 사는 자연인의 생활을 소재로 하는 프로그램들이 인기를 끌고 있다.

언젠가 경찰청 항공대의 도움을 받아 헬기를 타고 속리산 문장대를 한 바퀴 돌아 온 적이 있다. 산림자원을 구경하기 위해 수직으로 상승 강하를 반복하면서 숲을 둘러보았다. 말 그대로 울창한 숲이었다. 이처럼 우리나라의 산은 대부분 숲이 우거져 있다. 산림녹화 정책이 주효한 결과 벌거숭이 민둥산은 옛말이 되어 버렸다. 이는 지난 반세기 동안 피나는 노력의 결과다. 나의 유년시절만 해도 우리 국토의 절반 이상이 벌거벗은 민둥산이어서 자주 수원(水源)이 고갈되어 가뭄에 시달리고 큰비에는 홍수로 농경지가 유실되어 그 해 농사를 망치는 일이 많았다. 그 시절 대부분의 가정에서는 땔감으로 나무를 사용했기 때문에 집안의 젊은이 한 사람은 매일 지게를 지고 산으로 가서 나무를 한 짐씩 해 왔다. 게다가 일제강점기를 지나면서 산림자원이 수탈되었고 이어진 한국전쟁의 포화는 우리의 금수강산을 민둥산으로 만들어 버렸다. 숲이 사라짐에 따라 공기와 토양이 황폐해지고 옥토가 척박한 땅으로 변하여 국민들의 삶이 궁핍해졌고 야생 동식물마저 서식지를 잃었다.

이와 같은 벌거숭이 민둥산을 나무가 우거진 숲으로 가꾸기 위해 우리 국민들은 무진 노력을 기울였다. 정부에서는 주택 난방 방법을 개선하여 땔감으로 인한 숲의 훼손을 막는 동시에 산림청을 신설하여 산림자원을 관리하고 지속적으로 국토녹화 사업을 벌였다. 심지어는 사방관리소라는 기관을 두어 토사의 유출을 방지했다. 그러나 벌거숭이 민둥산에다 나무를 심는 것은 고사하고 흘러내리는 흙모래를 막아내는 데 급급하여 초등학교 저학년까지 이른바 사방공사에 동원되었다. 가슴에는 늘 애림녹화 리본을 달고 다녔고, 방학 내내 산야를 뛰어다니며 풀씨를 훑어서 모아 오는 방학숙제를 해야 했다. 그뿐이 아니다. 소나무를 보호하기 위하여 고사리 같은 어린 손들은 오전 수업 후 인근 야산의 소나무 숲으로 몰려가서 나뭇가지를 꺾어 만든 젓가락으로 송충이를 잡아내야 했다. 그 시절부터 대학 입시를 준비하던 때까지 식목일이면 어김없이 책가방 대신 삽과 괭이를 들고 등교하였으니 우리 국민 모두가 달려들어 민둥산을 울창한 숲으로 가꾸어 온 셈이다.

그 결과 우리나라는 개발도상국에서 경제성장과 산림녹화를 동시에 이룬 최초의 국가로 손꼽힌다. 지금도 나무를 심고 가꾸려는 노력이 계속되고 있다. 그러한 노력과 함께 이제부터는 울창한 숲을 관리하고 보존하는 일에 관심을 두어야 한다. 살기 좋은 나라들은 대부분이 도심에까지 숲을 조성하여 맑은 공기와 쾌적한 환경을 유지하면서 국토의 난개발을 엄격히 규제한다. 이에 비해 현재 우리나라는 과도한 산업단지 조성과 도시화에 의해 야기되는 산림 훼손이나 공해로 인하여 숲의 공익적 기능이 크게 위협받고 있다. 숲은 생명의 근원이다. 국토에 나무를 심고 숲을 아름답게 만들어야 국가가 더 건강해진다. 숲 속에서 온갖 생명체들이 자연의 질서에 따라 순환하면서 공존하듯이 국토 개발과 자연의 보존은 조화와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 국가가 발전할수록 우리의 미래를 위해 나무를 잘 가꾸고 숲을 보전하는 일에 더욱 힘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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