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연기 한국교통대 교수

홍연기 한국교통대 교수

목민심서(牧民心書)는 조선 후기의 실학자 다산 정약용이 귀양살이를 하던 1818년에 탈고한 책으로 공직자가 나라와 국민을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제시하고 있다. 지금으로부터 200년 전에 저술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목심심서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여전히 시사하는 점이 크다.

목민심서 제7편 예전 6조 중 교육의 진흥 즉, 흥학(興學)에서는 학교 교육이 단지 경전에 의존한 독서에 그쳐서는 안 된다고 하였다. 다산은 예전의 학교에서는 예(禮)를 익히고 악(樂)을 익혔음에도 불구하고 조선 후기에 이르러서는 학교 교육이 단지 책에만 머물고 있어 예와 악이 사라지고 있음을 한탄하였다. 아마도 활자화된 교육에만 몰입한 나머지 사람으로서 갖추어야 할 품성이 무너지고 있음을 경계한 것이라 하겠다. 한편 이와는 다소 상반된 생각을 당시의 과거시험을 준비하는 공부를 통해 밝히기도 하였다. 다산은 과거 공부가 사람의 마음씨를 파괴하는 것이지만 과거제도가 바뀌지 않는 한 그 공부를 권하지 않을 수 없다고 하였다. 심지어 목민심서에서는 과거시험에서 출제되는 시제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하기도 하였다. 과거시험 준비에 따른 학습내용과 이를 평가하기 위한 제도에 대한 다산의 문제의식이 200년이 지난 지금에도 여전히 유효한 것을 보면 교육을 통한 인재 양성은 예나 지금이나 어려운 과제임은 틀림없을 것이다.

지난 2일 교육부 관계자는 대입제도 포럼 등을 통해 학생과 학부모, 학교 현장 의견을 수렴한 결과 정시모집 비중을 늘려 달라는 요구가 많았다며 정시 비율이 10~20%대에 불과한 일부 대학에 정시 모집 인원 확대 필요성을 전달했다고 밝혔다. 또한 교육부는 수험생들의 부담을 경감시키기 위해 수시전형에서의 수능 최저학력 기준 폐지를 정시모집 비중 확대와 함께 제시한 바 있다. 이에 서울 지역 일부 대학을 중심으로 내년도 입시부터 정시 모집 인원을 확대하기로 결정하였다. 그러나 여전히 많은 대학은 이 같은 교육부의 갑작스런 요청에 난감에 하는 상황이다. 교육부는 최근 수시 모집 비율 확대로 정시 모집 비율이 급격히 줄어 정시를 준비하는 학생들의 피해를 우려하고 있지만 보다 근본적으로는 일명 깜깜이 전형으로 일컬어지는 수시 모집에 대한 사회적 불신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수능 최저기준 미달로 인한 수시 미충원 인원이 정시로 이월되었던 점을 고려하면 이번 수능 최저학력 기준 폐지는 오히려 정시모집 인원의 축소로 이어질 뿐 아니라 학종에 대한 불공정성 논란이 오히려 심화될 것을 우려하고 있다.

지난 10년 이상 지속되어 왔던 교육부의 수시전형 확대로 대표되는 대입 정책 기조가 흔들리고 있는 것은 일부에서 벌어지고 있는 학종에 대한 공정성 및 신뢰성 훼손과 이에 따른 국민적 공분 때문이다. 대학 입시 뿐 아니라 사기업이나 공기업에서의 채용과정에 대해서조차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기 어려운 사회적인 분위기 또한 이번 대입 정책 변경에 대한 요인이 되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교육부의 대학 입시 정책 변화가 입시 공정성 확보에는 실효성이 있을지 모르나 사회에서 필요로 하는 인재를 양성한다는 교육 본연의 목적과 부합하는지에 대해서는 논쟁의 여지가 있다. 정확히 200년 전 학교 교육이 단지 활자화된 지식 즉, 독서에만 그쳐서는 안 된다는 다산의 지적은 다시 새겨볼 필요가 있다. 또한 과거 제도가 개선되지 않는 한 과거 공부가 마음씨를 파괴함에 도 불구하고 과거 공부를 권할 수밖에 없다는 다산의 탄식도 지금의 현실과 크게 다를 바는 없을 것이다.

교육 내용은 교육 제도, 그 중에서도 평가 제도와 밀접한 관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학종으로 대표되는 수시 전형에 대한 작금의 논란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제도 도입의 취지를 살려 제도를 운영하는 과정에서의 공정성과 신뢰성을 확보하는데 보다 많은 노력을 집중해야 할 것이다. 학종이 금수저 전형으로 변질되고 있다는 지적을 근본적으로 해소하는 방법은 일선 고등학교에 대한 지원 확대를 통해 학생들의 경제적 수준과 상관없이 그들에게 양질의 교과 및 비교과 활동을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 공정성을 내세워 대학 입시가 과거의 사지 선다형 시험 위주로 회귀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금번 정시 모집 확대에 대한 논란이 대입 제도의 공정성 확보 뿐 아니라 사회가 원하는 인재를 양성하기 위한 고교 교육의 질적 향상으로 이어지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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