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수 논설위원 (중원대 교수)

이현수 논설위원 / 중원대 교수
이현수 논설위원 / 중원대 교수

 

고대 로마의 정치인이자 법률가인 키케로는 돈과 권력만을 추구한다며 유대인을 경멸했다. 역사적으로 가장 오래된 증오인 반유대주의의 기원이다. 유대인에 대한 인종차별 얘기를 꺼내 든 건 움베르토 에코의 ‘프라하의 무덤’ 주인공인 시오네 시모니니를 다시금 소환하기 위함이다. 에코의 말에 따르면, 시모니니는 “세계 문학 사상 가장 혐오스러운 주인공”이다. 밑도 끝도 없는 음모론의 화신이기 때문이다. 소설에도 실증적으로 등장하는 반유대주의의 성경, ‘시온 의정서’도 1921년, 러시아에 의한 위조문서임이 확인되었다. 하지만 반유대주의는 진실을 뒤로하고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음모론의 결과는 언제나 참혹하다. 세계 2차 대전이 그랬다.
에코는 ‘프라하의 무덤’에서 ‘쉽게 알아볼 수 있고 그래서 더 무시무시한 적이 필요한데, 그런 적은 러시아 민중들 속에 또는 그들의 집 문턱에 있어야 하고 그 대상이 유대인들’이라 말한다. 더 나아가 ‘애국주의란 천민들의 마지막 도피처’라고도 거칠게 쏘아붙인다. 그런가. 막연한 소속감은 증오에 바탕을 두는 것은 확실한듯하다. 자신들과 같지 않은 자들에 대한 배타적 증오심에 바탕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이럴 때 음모론은 창궐한다. 오늘날 한국 사회의 이념적 분열과 매우 닮았다.
에코는 ‘증오심을 시민적인 열정으로 키워 나가야 한다. 적이란 결국 민중의 벗이다. 자기가 가난하고 불행한 것은 자기 잘못이 아니라 어딘가 다른 데에 분명한 이유가 있다고 느끼려면 언제나 증오할 사람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래서인지 시모니니는 스스로 ‘나는 증오한다, 고로 존재한다.’라고 선언할 만큼 이 세상의 모든 것을 증오하고 음모를 획책하는 인물로 그려져 있다. 온갖 추악한 음모에 관여하는 그의 입을 통해 쏟아지는 유대인에 대한 편견과 증오는, 반유대주의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유럽 사회를 논쟁에 빠지게 했다. 근거 없는 음모와 증오에 대한 에코의 비판적 의도에 반하여 독자들이 자의적으로 해석할 가능성이 상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시모니니처럼 누군가를 평생 사랑하는 일보다 누군가를 평생토록 미워하는 것이 수월하기는 하다. 포유류의 특징이 그렇다. 이익보다는 손해에 민감하기 때문이다. 증오는 대게 손해에서 기인한다. 에코는 ‘프라하의 묘지’에 관한 한 인터뷰에서 “역사를 바꾼 큰 거짓들은 내가 알기로 모두 거짓임이 입증되었다. 그런데 무엇보다 놀라운 사실은 우리가 어떤 것이 거짓임을 입증해도 사람들은 그것을 계속 진실이라고 믿는다는 것이다.” 그렇게 사람들은 음모론에 한번 갇히면 좀처럼 빠져나오지 못한다. 그것이 의도된 증오에서 시작된 음모일 때는 더더욱 그렇다. 사회에서 음모론이 판을 치는 것은 권력에 대한 불신과 증오가 그 배경이라 해도 크게 틀리지 않다. 정치인들은 이를 매우 잘 활용한다.
포탈의 정치기사에 사회기사에 세균처럼 득실거리는 증오와 의심의 댓글들은 우리 사회의 시모니니다. 누군가를 미워하면 마음에 단단한 벽이 생긴다. 미움은 일상 속에서 무한 증식된다. 통합과 공존을 앞서는 민주주의의 가치는 없다. 봄날의 평안을 기원하며 적개심에 불탔던 증오의 화신 ‘시모니니’를 관조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오래된 이념적 증오가 극복되지 못하고 반복적으로 위력을 떨치는 사회라면, 공존이 설자리가 없다. 진실과 정의는 음모에 치인다. 차이를 인정해야 평화가 온다.  
에코의 ‘프라하의 무덤’이 던지는 서사성처럼 프라하에는 처연한 사연을 안고 잠든 유대인의 무덤이 많다. 오늘날 프라하의 영혼으로 상징되는 프란츠 카프카가 그렇다. 그는 유대인이었다. 그의 대표작 ‘변신’에서는 사람이 하루아침에 벌레로 변하는 비현실적 설정이 그려져 있다. ‘변신’은 억압된 소망들을 표현한다. 벌레로 변한 주인공 그레고르 잠자는 자신을 멋대로 다루는 고용주와 아버지에게 반항하며 무의식 속에서 공포의 형상을 만들어낸다. 공포는 증오로 변형되고 끝내 가족에 의해 그레고르는 제거된다. 증오는 해피엔딩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카프카는 말하고 있다. 그런데도 그레고르 잠자와 시모네 시모니니는 여전히 우리들 사이에 증오의 똬리를 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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