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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향계/ 교육개혁의 관념성
풍향계/ 교육개혁의 관념성
  • 한희송
  • 승인 2018.04.16 21: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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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송 에른스트국제학교 교장
한희송(에른스트 국제학교 교장)
한희송(에른스트 국제학교 교장)

 

(동양일보 한희송 기자) 인간사회의 모든 제도는 그것이 존재하는 환경의 변화에 맞추어 그 실질적 내용과 형식적 체계를 바꾸어 가야만 옳게 유지된다. 제도는 환경과 상통할 때 본래적 존재가치를 구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변화가 진화(進化)의 방향이라는 판단은 대부분 역사가 주는 시행착오를 충분히 경험한 후에나 얻어진다. 왜 일까? 바로 모든 제도는 관념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본질과 현상적으로 인간사회에의 유용성이 판단되는 형식을 동시에 그 속성으로 가지고 있으며 이 두 가지 측면은 서로 갈등하기 때문이다.

정사각형이란 용어를 예로 들어보자. 우리는 정사각형이 인간의 경험공간에서 일어날 수 있는 사건으로 착각하기 쉽다. 그러나 각 변의 길이가 같고 변과 변 사이의 사잇각의 크기가 직각인 정사각형이란 도형을 인간이 현실에서 경험할 방법은 없다. 아무리 유능한 컴퓨터가 그렸다 하더라도 그 컴퓨터보다 더 정확한 측정기구로 재면 그 도형은 정사각형이 되지 못한다. 결국 정사각형이란 도형은 관념세계에서만 존재할 수 있다. 이 논리는 도형뿐만 아니라 모든 유리수에도 적용된다. 이것을 그대로 원용(援用)해 보면 지금과 같은 수학적 연산은 관념적으로만 이행할 수 있을 뿐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실질적으로 “1+1=2”이라는 연산은 관념에서만 가능하다. “사과를 하나 먹고 또 하나를 먹으면 모두 두 개를 먹은 것이다.” 라는 현실에서의 문제에 이 연산을 적용하기 위해서는 이 세상의 사과들은 맛과 크기 등 모든 측면에서 차이가 없다는 조건이 선행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 세상에 그런 사과들은 없다. “수학의 형식성” 공준을 통해 정사각형을 현실적으로 인정하고 사과를 더할 수 있는 현상으로 바꾸지 않으면 정사각형은 그릴 수 없고 사과는 수학적으로는 더 할 수 없는 객체에 머무른다. 이 논리는 수학에만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의 모든 존재현상에 일반적으로 적용된다.

사회를 이루는 어떤 제도가 있다면 이 제도 또한 그 현상학적 형태로 그 존재의 완성을 보여줄 수 없다. 인간의 제도는 물리적, 현상학적 개념으로 현실에 투영된다. 그러나 그 존재의 의미와 가치는 관념적이다. 이것이 하나의 제도가 가진 모순을 극복하기 위해 투여되는 물리적 시도들이 갖는 한계이다. 우리나라의 교육개혁도 같은 의미의 문제를 가질 수밖에 없다. 오히려 개념이 갖는 형이상학적 특성으로 인해 교육은 더 깊게 이 문제의 수렁에 빠진다. 제도개혁에서 많은 돈과 시간을 투자해도 종종 그 결과가 긍정적이지 못한 것은 바로 이것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도는 현상학적 경험공간에서 결과를 산출해야한다. 그러나 아무리 노력해도 관념적 측면에서의 개혁적 변화가 전제되지 않는다면 그것은 어떤 의미를 가지지 못한다. 관념적 측면마저 현상학적으로 판단할 수밖에 없는 한계를 가진 채 그 결과를 긍정적으로 가시화(可視化)하려는 일은 참으로 지난(至難)하되 성과 없는 노력만을 인간에게 요구한다. 공식을 암기하고, 연관되지 않은 사실들을 주입하는 것을 교육의 내용으로 인식한 후 점수라는 숫자로 그 성과를 평가하는 일은 순수한 현상학적 사실에 불과하다. 교육이라든가 교육개혁이란 개념의 실체는 물리적 경험론으로는 도달할 수 없는 곳에 있다. 하지만 이 관념적 문제가 해결되어야만 교육의 현상적 문제가 해결된다. 이것이 간과되어 있기 때문에 교육개혁은 우리나라에서 아직까지도 진화론적 방향을 찾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효자와 불효자의 예화(例話)에서 불효자는 효자의 행동을 보고 배워서 똑같이 실행하는데도 부친으로부터 질타를 받는다. 현상학적 관찰을 기준으로 삼으면 그들 간의 차이는 없다. 이 이야기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효도'라는 개념이 관념적 가치를 잃으면 그 물리적 표현인 행동은 어떤 의미를 가지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이를 만일 효자와 불효자 간의 행동은 같은데 이를 받아들이는 부친간의 차이가 있다고 해석하는 순간 이 우화의 의도는 왜곡된다. 우리나라에서 지금까지 교육과 그 개혁의 시도는 정치인들의 공약사항이 되어왔다. 정치는 관념세계보다 현실세계에 가깝다. 교육은 현실적 성과가 부수적으로만 따라오는 관념세계의 개념이다. 교육을 현상학적으로 해석하면 마치 불효자가 효자의 행동을 흉내 내어서 오히려 야단을 맞는 결과를 초래하듯 그 개혁을 향한 노력은 국민의 희생을 더 심한 오리무중(五里霧中)으로 이끈다. 우리나라의 교육개혁은 대입제도, 시험제도, 등을 현상적으로 접근하여 이룰 수 있는 사건이 아니다. 지금이라도 인생의 가치자체를 생각할 기회조차 잃어가는 우리 아이들을 주인공으로 놓고 교육개혁을 다시 이야기 하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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