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은선 (청주시흥덕구 세무과)

최은선 (청주시흥덕구 세무과)

 나의 어린 시절을 떠올려보면 미친 듯이 놀았던 기억이 대부분이다. 그나마 할 일을 스스로 알아서 하는 편이었던 나는 학교에 갔다 오면 일단 많지 않은 숙제를 먼저 말끔히 해놓고 무조건 밖으로 나갔다. 친구들과 약속이랄 것도 따로 없다. 어차피 동네 한 바퀴만 돌다 보면 나와 같은 생각으로 나온 친구들이 삼삼오오 모여들게 마련이다.

공기놀이도 재밌지만 주로 고무줄놀이를 했다. 그런데 고무줄놀이에 더 재미를 붙인 것은 오히려 남자아이들이었다. 여자아이들이 고무줄놀이를 시작하면 어떻게 아는지, 꼭 짓궂은 남자 아이들이 따라붙게 마련이다. 남자아이들의 최고의 놀이는 어쩌면 ‘여자아이들의 고무줄 끊기 놀이’였는지도 모른다.

우리들의 놀이는 엄마들의 “얘들아, 저녁 먹어라”는 소리가 하나 둘 들려올 때쯤 끝이 난다. 그때는 ‘왕따’가 무슨 뜻인지도 몰랐을 뿐더러 그런 용어가 존재하지도 않았다. 언행이 좀 어눌해도, 내성적이어서 먼저 다가가지 못해도, 친구들이 서로서로 불러주고 챙겨줘 팀에 넣어주곤 했었다.

어렸을 때 맘껏 뛰놀았던 덕분인지 성인이 된 나는 사회에서 어느 정도의 적응력과 어느 정도의 사회성을 보유하고 하루하루 제 몫을 하고 있다. 중·고등학생 시절, ‘이제는 공부해야 할 때’라고 생각이 들자 어느덧 자리에 붙어 앉아있을 줄도 알았고, 사교육 없이도 어려운 수학 문제의 원리를 파악하기 위해 머리를 쓸 줄도 제법 알게 됐다. 대학에 들어가 처음 보는 시험에서도 ‘∼에 대해 논하시오’라는 문제에 금세 적응할 수 있었다.

어린 시절 잘 노는 것은 잘 먹는 것 이상으로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몸을 쓰는 놀이를 통해 체력을 키울 수 있을 뿐 아니라 스트레스가 분출돼 정신 건강에도 좋다. 게임을 통해 이기고자 최선을 다하는 승부욕과 적극성을 키울 수 있는 반면 게임에 지기도 하면서 패배할 때 받아들이는 방법도 배울 수 있다. 규칙을 지킬 줄 아는 질서의식도 배우고 다른 아이들과 함께 할 때 통솔력과 리더십이 향상될 뿐 아니라 이기기 위한 전술을 구사하면서 지능도 향상된다. 함께 어우러져 부대끼며 놀면서 사회성이 향상되는 것은 물론이다. 결국 놀 때 실컷 논 경험이 있어야 몰입해서 공부해야 하는 시기에 공부할 수 있는 힘이 생기게 마련인데 우리의 아이들은 그렇지 못하다.

지금 아이들에게 놀이란 핸드폰 게임 혹은 SNS 활동을 의미하는 것일는지도 모른다. 아이들에게 노는 시간을 허락하지 않는 불안한 현대사회는 계속된 지식 주입만을 어려서부터 강요하고 있다. 놀이의 필요성을 강력 주장하는 일부 교육학자들로 인해 결국 놀이가 학교의 수업 시간으로 편성되기에 이르렀다.

스스로 익히지 못하는 아이들로 인해 학습능력이 떨어지는 것을 우려하는 부모들은, 계속 가르치는 것을 늘여나가고 있다. 가르치고 주입하는 시간을 늘림으로써 효율은 떨어지긴 하나 그나마 아예 안 하는 것보다는 효과가 나타나므로 놀이 시간을 더더욱 줄이고 가르치는 수업, 즉 사교육을 계속 늘이고 있다.

아이들이 스스로 익히지 못하는 이유는 놀아보지 못했기 때문이 아닐까 나는 생각한다. 놀이를 통해 갖춰야 하는 ‘힘’을 갖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스스로 익히지 못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이들을 놀이터로 돌려보내지 못하고 더욱더 사교육으로 내몰게 되는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

이제는 놀이도 학교에서 학습해야 하는 시기가 돼 버렸다. ‘힘’을 가진 내 아이를 위해, 이제는 내 아이를 ‘놀이터’로 보내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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