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이 동양일보 상무이사 겸 편집국장

 

(동양일보) 선거철만 되면 선당후사(先黨後私)라는 말을 자주 듣게 된다. 개인보다는 공동체나 집단을 먼저 생각한다는 선공후사(先公後私)를 본 딴 말로, 대(大)를 위해 소(小)를 희생한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선공후사. 얼마나 듣기 좋은 말인가. 요즘 같이 개인주의가 팽배한 사회에서 선공후사는 그런 사회를 배격하는 금과옥조(金科玉條)로 여겨져야 한다. 궁극적으로는 내 자신, 우리를 위해서라도 그렇다.

이런 선공후사가 선당후사로 ‘공’이 ‘당’으로 글자 하나만 바뀌어 선거철만 되면 귀가 따갑도록 듣게 된다. 당원들은 이 말을 쓰지 않으면 당성 부족으로 낙인 찍힐까봐 너도나도 선당후사를 내세운다.

정당은 당원의 결속력을 높이는 수단으로 선당후사를 강력하게 요구한다. 지방선거든, 국회의원 선거든 공천 불만을 잠재우는 동시에 선거 승리를 위해선 선당후사만큼 달콤한 말이 없다. 막강한 공천권을 행사하면서 탈락후보들의 발을 묶어 두고 결과에 복종하도록 하는 절대적 수단으로 이 보다 더 좋은 게 있을까 싶다.

하지만 개인의 안위보다 당을 위해 희생한다는 본 뜻은 뒤로 한 채 당의 입맛에 맞춰 자신의 정치적 입지만 견고하게 하려는 저의가 느껴지는 순간 배신감과 허탈감이 드는 건 인지상정일 것이다.

청주시장이 돼 85만 시민을 행복하게 해 주겠다고 외치고 다니던 사람이 선당후사를 내세워끝내 출마를 없던 일로 했다. 출마를 안할거면 애드벌룬은 왜 띄우고 다녔는지 그를 지지했던 사람이나, 그렇지 않은 사람들 모두 허탈하고 황당한 기분을 떨쳐버리지 못했을 것이다. 일각에선 변죽만 울리고 다닌 게 아니냐며 서슴없이 일갈한다.

그는 청주시장 후보로 늘 언론에 이름이 오르내렸다. 충북도의회 의장이라는 정치적 위상에 걸맞게 평소에도 언론지상에 심심찮게 거론돼 왔지만 선거판인 요즘엔 하루도 빠지지 않고 등장했다.

그래서 지금은 청주시민이라면 ‘김양희’라는 이름을 거의 다 알 정도가 됐다. 이시종(충북지사) 저격수니, 첫 여성의장이니 하는 수식어가 따라 다녔지만 종전에는 김양희를 안다는 것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다. 그런 면에서 보면 이번 6.13지방선거는 김양희에게 인지도를 높여준 최고의 기회이자 시혜자다.

다시 말하면 시민들 사이에서 ‘김양희가 누구야?’에서 ‘어, 그사람!’ 정도가 됐다는 얘기다. 그가 청주시장 선거에 나오든, 말든 이젠 청주 바닥에서 정치인 김양희라는 이름은 그만큼 익숙해졌고 흔해졌다고 할 수 있다.

더욱이 그는 자유한국당 청주흥덕구당원협의회 위원장이지 않은가. 앞으로 2년이 남았지만, 21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의장직 수행을 하면서 얼굴을 알린 것은 큰 후광을 누렸다고 할 수 있다. 실제 그는 시장 선거 불출마를 선언하면서 총선 출마는 부인하지 않았다.

문제는 불출마를 선언하기까지의 과정이다. 그는 청주시장 선거 출마를 공공연히 하면서도 남들 다하는 출마선언은 하지 않았다. 예비후보등록도 하지 않았음은 물론이다. 의원직을 던져 버리고 선거전에 전념하라는 주변의 조언도 듣지 않았다. 선거사무실조차 마련하지 않았다는 지적이 일자 뒤늦게 흥덕구의 한 건물 임대차계약서를 공개하며 해명에 나섰다. 총도 없이 전쟁터에 나가갰다고 호기를 부린 샘이다.

그런 그가 자신이 중앙당에 요구한 전략공천이 물 건너가자 돌연 경선불참을 선언, 경선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었다. 전략공천 요구가 승산없는 선거에서 발을 빼기 위한 명분 찾기용이라는 의심도 받았다. 그럼에도 그는 아군끼리 총질을 해대고 흙탕물 싸움을 한다면 사분오열을 피할 수 없어 ‘선당후사’ 정신으로 출마 포기를 하게 됐다고 강변했다.

출마선언도 안하고, 예비후보등록도 안하고, 전략공천이 무산되자 불출마를 선언한 것을 두고선당후사라고 할 수 있을까.

김 의장은 도의원 지역구가 청주시 2선거구(상당구 우암·중앙·탑대성·금천동 등)임에도 올 초 흥덕구당협위원장을 꿰찼다. 그를 도의원으로 만들어준 이 지역 유권자들은 양다리 걸친 김 의장으로부터 팽 당했다고 속상해 한다. 다른 지역 당협위원장이 됐으면 도의원 사퇴는 지역구 주민에 대한 최소한의 도리라는 게 이들의 생각이다. 그러면서 묻는다. 이것도 선당후사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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