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희팔 논설위원 / 소설가

박희팔 논설위원 / 소설가

(동양일보 박희팔 기자) 만제와 만득이완 두 살 터울이다. 만득이가 형이다. 그런데 형인 만득이의 출생신고가 늦어 호적상으로는 한 살 터울로 돼 있다. 그런데 또 약골인 만득이가 초등학교 3학년 때 잦은 초학(말라리아)으로 한 해를 꿇어 형과 아우는 같은 학년 같은 반이 되어 초등학교를 졸업했다. 하지만 당시에는 이러한 게 별 이변이 되지 않았다. 같은 동기동창 중엔 두세 살 차이는 흔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하여 이들은 같은 동기동창이라는 이름하에 나이관계 없이 너나들이로 통한다. 아무리 그렇더라도 시골동네에선 달랐다. 동네 안 집집의 일과 사정을 잘 아는 터이고 그래도 아직은 옛 사고방식이 남이 있던 것이어서 상하가 뚜렷하고 혈연의 관계를 무시하지 않았던 것이다. 해서, “아무리 네 형이 학교에서는 네 동기라 해도 집안에서나 동네서나 바깥세상에서나 형은 형이다. 형 대접 깍듯이 해야 하느니 알겠느냐!” 부모의 이러한 당부가 아니라도 만제는 형인 만득에게 예우를 다했다. 형의 말을 거역하거나 행여 형의 체면에 손상을 주는 행동이나 언행을 삼가 했다. 동네어른들도, “만제는 니보다 한 살 아래이고 만득인 니보다 한 살 위이니 그 형제와는 각각 니하고는 한 살 차이인 동배(同輩)다. 즉 그러한 사이를 자치동갑이라 하는데 어깨동갑이라고도 하지. 옛날부터 자치동갑(어깨동갑)끼리는 서로 나이와 신분이 같거나 비슷한 사이이니 허물없이 말을 놓거나 대하는 데 거리낌이 없었지. 하지만 니는 그래서는 안 된다. 생판 모르는 사이도 아니고 대대로 몇 십 년을 한 마을에서 한집안 같이 지내오고 있으니 만제는 동생으로 만득인 형으로 예를 다해 대하여야 한다. 알겠제!” 이러하니 너 댓 되는 동네 동배들도 만득에게 형으로서의 대우를 다했다.

그런데 초등학교 동창들은 달랐다. 읍내에 거처하거나 타동에 살거나 혹은 대처에 나가 있는 동창들은 자신들보다 두 살이나 위인 만득이 대하길 여느 친구들처럼 하대하면서 마구 대했다. “야, 농사짓느라 그런지 폭삭 얼굴이 삭었구나. 야 새끼야, 일 좀 작작 해라!” 이러는 게 보기 싫고 듣기 거북하여 만제는 형인 만득을 종용했다. “형, 이제 나도 군 제대했으니 형 대신 집 농사일은 내가 할 게. 형은 도시에 나가 사회바람 좀 쐐요!” 그리고는 대전으로 보냈다. 거기서 만득은 중소기업체에서 배관공으로 있으면서 상사인 부장을 잘 만났다. “만득이, 알고 보니 자네와 나는 한 동갑이더군 상사와 부하직원 사이를 떠나 서로 허물없이 지내자고.” “그래도 어디까지나 부장님인데 대접해 모셔야지요!” 한살 위 자치동갑이라는 사실은 쑥 빼고였다. 이렇게 위아래로 있으면서 돈독히 지냈다. 그러다 5년 만에 다시 고향으로 내려왔다. 내려올 때 부장은, “섭섭하이 더 같이 있고 싶지만 부모님과 아우님이 인제 그만 고향에 내려와 같이 살자고 원한다니 더 이상 말릴 수가 없네만 고향에 가더라도 이 나를 잊지 말고 언제 나를 한번 초대하게 그러면 내 기꺼이 달려갈 테니까.” 그러면서 얼핏 생각난 듯이 덧붙였다. “참 그러고 보니 자네 고향과 같은 지역에 군대에서 내 윗 계급인 하사가 한 분 계셨는데 제대하고선 한 번도 못 찾아뵈었구먼. 참으로 내게 잘해 주셨는데….” 이게 생각나고 잊지 못해서 만득은 이를 동생인 만제에게 들려주고 그의 초대를 상의했더니 만제는, “아유 그렇다면야 한번 모셔야지요. 형님의 은인 되시고 한번 오기를 바라셨다니 백 번 오시도록 해야지요.” 하고 흔쾌히 받아들였다.

하여 두 형제는 초대날짜를 잡고 대접할 식당도 읍내에 알아보고 집안청소도 하고 특히 만제는 같은 이웃에 마련한 형님 만득의 집도 다독이곤 부장을 기다렸다.

부장은 부장대로 마음이 들떴다. 만득을 오랜만에 만나고 자신을 초대한 것이 감사할 뿐만 아니라 이 기회에 그 동안 마음에 두었던 옛 군 시절 친형님같이 잘해주셨던 하사님을 찾아봐야겠다는 생각에 마음이 한껏 설렌 것이다. 과연 세월이 많이 흘렀으니 알아볼 수나 있을는지 모르겠다. 그런데 부장이 읍내버스주차장에서 만득을 만나 만득의 시골집에 도착했는데 마당에서 만득이가 자신의 아우라며 소개를 하는데 많이 낯이 익은 사람이다. 만제도 수인사를 하면서 낯선 사람이 아님을 직감했다. 한참을 뚫어지게 만제를 보고 있던 부장이 갑자기 만제의 손을 덥석 잡는다. “아니, 하사님 아니십니까? 저 군대시절 임 병장입니다.” “어, 임 병장, 맞어 맞어!” 서로 얼싸안고 어쩔 줄을 모른다. 이걸 보고 있는 만득이 어리둥절할 뿐이다.

실은 만제가 군 시절, 임 병장(부장)에게 상급자의 체면에 자신이 한 살 위라고 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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