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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칼럼 / 영원한 스승 전규삼
동양칼럼 / 영원한 스승 전규삼
  • 최성택
  • 승인 2018.04.18 20: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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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성택 전 제천교육장

 

요즈음 농구 펜들은 남자부 챔피언 결정전 열리는 날을 손꼽아 기다린다. 각자 좋아하는 팀이 있겠지만 그 보다는 경기가 박진감이 넘치기 때문이다.

지난 4월 12일 2017-18 남자 프로 농구 챔피언 결정전 3차전 홈경기 (잠실학생체육관)에서 1, 2차전에 패한 SK 는 연장전 끝에 원주 DB 를 꺾어 희망의 불씨를 살렸다. 이날 SK 는 한때 20점까지 뒤지며 패색이 짙었으나 3쿼터까지 한 점도 넣지 못했던 김 선형의 플레이가 살아나면서 순식간에 11 점을 넣은 활약으로 연장전까지 간 끝에 이번에도 김 선형이 종료 3초전 슛을 성공하여 2점차 승리 (101대 99) 를 할 수 있었다. 이틀 후 같은 장소에서 열린 4차전 경기에서도 김 선형의 눈부신 활약에 힘입어 87대 85로 이겨 승부는 2대2가 되었다.



이 경기에서 눈여겨 볼 것은 김 선형 선수의 출신 고등학교와 그를 가르친 지도 교사이다. 김 선형은 송도고등학교에서 학과 공부와 인성 및 기초를 중시하는 전 규삼 선생에게 농구를 배웠다. 전 규삼 선생 ( 1915∼2003) 은 송도고보 졸업 후 일본 호세이대학 (法政大)에서 경제학을 전공하면서 농구선수를 하고 졸업 후 모교에서 사회과 교사로 재직하면서 농구를 지도하다가 1966년 교사직을 사임하고 송도 중·고 농구부 코치로 전임 지도자 생활을 시작하였다. 야구와 배구가 투수와 세터 놀음이라고 한다면 농구는 배구의 세터와 같이 볼 배급과 다 득점을 해야 하는 가드의 비중이 큰 운동이다. 그가 키워낸 첫 번째 수제자는 서 상철, 유 희향 으로 드리블과 패스 등 기본기 훈련을 많이 시켰고 그 뒤를 이어 장신 포인트 가드 김 동광이 있고 이후 이 충희, 정 덕화, 정 태균, 홍 사붕, 신 기성, 김 승현, 김 선형 등 전 규삼 선생이 정성들여 키운 제자들 중에는 특급 가드가 많다. 키가 작지만 슛을 잘 하는 이 충희를 중학교 때는 슛을 비롯한 기본 훈련만 혹독하게 시키고 시합에 출전시키지 않다가 슛 폼이 완성된 뒤 고등학교 1학년 때에야 실전에 내 보냈다.그 후 고려대를 졸업하고 실업 팀에 간 뒤에는 한 게임에 64점을 넣어 ‘슛 도사’, ‘득점기계’ 란 별명을 얻게 되었다.



전규삼 선생은 농구의 기본기만이 아니라 학과 공부도 강조하여 농구를 못한다고 혼내지는 않았지만 공부를 못하면 많이 꾸짖었다. 송도고 농구부는 오전 수업은 꼭 하고 오후 2시에 운동을 시작했다. 송도고 출신들은 이런 가르침으로 창의적인 농구를 하는 선수들이 많이 배출되었다. 또 선수들을 단 한 차례도 폭언이나 체벌을 하지 않았고 학부모와의 비리 유착 등에서도 자유로 왔으니 그는 체육 지도자를 넘어 이 땅의 모든 교육자들이 그의 교육 철학을 배워야 할 점이다. 그는 “농구 선수이기 전에 먼저 사람이 되라” 고 가르쳤으며 이는 송도 중·고 의 교시(校是) 인 ‘사람이 먼저 되라’ 와도 맥을 같이 하며 매너 좋은 선수가 되는 계기가 되었다.



우리나라에 NBA가 소개되기 훨씬 전에 NBA를 눈여겨보고 앨리웁이나 훅 슛, 비하인드 백패스 등 당시로는 엄두도 못 낼 농구를 하길 바랐고 이런 그의 바람으로 송도 출신 중에는 유능한 테크니션 가드 들이 많다. 또 송도 농구의 특징은 드리블을 하지 않고 빠른 패스를 통한 농구로 신 기성 , 김 승현 등의 초고속 속공은 그에게서 배운 것이며 초고속 속공의 계보는 오늘날 김 선형에게 이어졌다.



전 규삼 선생은 개인기를 강조하면서도 실전에는 빠른 팀플레이를 하게 하여 의아해 했지만 그것이 후에 대학 선수나 프로 선수가 되어서는 송도고 시절 연마한 개인기가 드디어 꽃을 피우고 있다. 그는 뿐만 아니라 신체 밸런스를 갖추어야 한다며 기계체조와 낙법까지 가르쳤고 “우승해야 된다.”는 말을 한 적이 없다고 한다.


패색이 짙은 마지막 순간에 김 선형이 빠르게 제치고 들어가 대역전 극을 이루어 낸 것은 잘 닦여진 기초기와 “최선만 다 하라”는 전 규삼 의 가르침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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