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기황 논설위원, 시인

 첫 번째 힌트는 ‘붉은 색’, 온도는 36.5℃, 그리고 마지막 힌트는 ‘부족하면 생명을 잃는 것’ 무엇일까. 정답은 ‘혈액’이다. 스무고개 전에 힌트만으로도 금방 알아차릴 수 있는 문제다.

혈액은 생명과 동의어다. 이 소중한 생명 나눔의 행위를 ‘헌혈’이라고 한다.

헌혈의 1차 목표는 말할 것도 없이 긴박하고 절실한 ‘수혈’의 현장에서 죽어가는 생명을 구하는 일이다.

혈액(피)을 이용한 치료방법은 고대 이집트시대로 거슬러 올라가지만, 사람의 혈액을 혈관 내에 직접 주입한 최초의 수혈은 영국의 산부인과의사 제임스 브룬델(James Blundell)에 의해서다. 1818년 12월, 죽어가는 위암환자에게 혈액 약 400cc를 주입하는데 성공했다는 기록이 있다. 그 후 오스트리아 병리학자 카를 란트슈타이너(Karl Landsteiner)가 ABO혈액형을 분류함으로써 서로 다른 항원과 항체끼리 섞일 때 발생하는 부작용을 개선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고 그 공적으로 1930년 노벨상을 수상했다.



평생 ‘수혈’을 체험하지 않고 사는 것만 해도 얼마나 큰 축복일까.

바꾸어 말하면 헌혈이 왜, 그리고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에 대한 반증이다.

첫째: 헌혈은 수혈이 필요한 환자의 생명을 구하는 유일한 수단이다. 혈액은 아직 인공적으로 만들어 낼 수도 없고, 그것을 대체할 물질도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둘째: 혈액을 장기보관 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사실도 지속적인 헌혈이 필요한 이유다.

혈액의 최장보관기간이 농축 적혈구는 35일, 혈소판은 5일이기 때문에 5일분의 적정보유량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꾸준한 헌혈이 불가피하다.

헌혈의 필요성에 비해 헌혈에 대한 오해와 편견으로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는 경우가 많다. 가장 안타까운 것은 한번 ‘헌혈부적합’ 판정을 받았다고 헌혈과 담을 쌓고 지내게 되는 경우다. 필자가 그랬다. 40대 초반, 시내 중심가에서 이동헌혈차량을 만난 적이 있다. 필자와 같은 혈액형의 혈액을 급히 구한다는 안내문을 보고 잠시의 망설임 끝에 헌혈차량에 올라갔는데 사전검사결과 ‘헌혈불가’ 판정을 받았다. 당시 자세한 설명도 듣지 못한 채 ‘내 사전에 헌혈은 이제 끝’이라고 단정하고 있다가 60이 넘은 나이에 우연히 단체헌혈에 참여할 기회가 있었다.

젊은 친구들이 줄줄이 헌혈 부적합판정을 받는 가운데, 헌혈은 아예 ‘해당사항 없음’으로 제쳐놓고 있던 필자에게 ‘헌혈-전혀 문제없음’의 합격판정이 주어져 극적으로 ‘전혈’을 하는 기쁨을 맛보게 되었다.

헌혈을 할 수 있는 나이는 만16세부터 만69세까지다.

전혈과 성분헌혈로 구분할 수 있으며, 쓰임새도 다양하고 절차도 간단치 않지만 헌혈은 참으로 따뜻하고 가치 있는 사랑의 실천이며 ‘참 나눔’이다.

헌혈을 하게 되면 주는 것보다 받는 기쁨이 훨씬 큰 선물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헌혈이 주는 첫 번째 선물은 건강관리를 위해 자발적으로 절제된 생활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액션배우가 배역에 필요한 몸을 만들 듯 헌혈예약일이 다가올수록 최고의 건강상태를 유지하려고 노력하게 된다.

당일은 물론 전날 음주를 해서도 안 되고, 헌혈 전에 기름진 음식도 가급적 피해야 한다.

일반적으로 전혈의 경우 2개월에 한 번, 성분헌혈의 경우 보름 만에 헌혈을 할 수 있다.

만 69세까지 내게 몇 번의 헌혈이 더 허락될 것인가. 헌혈 대에 누워 지난 삶을 반추해보는 시간이 행복하다.

가장 귀중한 것(생명)을 나누고자 하는 마음가짐이 먼저 평화와 위로를 전해주기 때문이다.

덤으로 주어지는 ‘헌혈유공장’이 그동안 받은 어떤 감사패나 공로패보다 값지게 느껴진다..

헌혈은 그 자체가 아름다운 ‘선물’임을 다시 한 번 강조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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