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미

 

지난 4일 오전 10시 갑작스러운 호출을 받고 무심천 환경 정비를 위해 나갔다. 비 오기 직전의 쌀쌀한 날씨에 ‘무슨 환경 정비인가’라고 투덜거리면서 한 손에는 쓰레기봉투, 다른 손엔 집개를 들고 무심천으로 갔다.

고개를 들고 본 광경은 믿을 수가 없었다. 전날 불법 노점상 단속할 때만 해도 만개한 벚꽃을 즐기러 나온 시민들로 북새통을 이루던 무심천 롤러스케이트장이 이런 쓰레기장으로 변해 있을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나뿐만 아니라 함께 있던 직원 모두가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40여 명의 구청 직원들은 팔을 걷어붙이고 쓰레기를 치웠다. 다들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갑자기 나온 터라 정장을 입기도 하고 구두를 신고 나오기도 했지만 묵묵하게 쓰레기봉투를 채우고 있었다. 저절로 나오는 한숨과 함께 나도 바람에 날리는 걸리적거리는 머리를 질끈 묶고 쓰레기를 주웠다.

많은 생각이 들었다. 몇 시간을 주워야 끝이 날까? 도대체 누가 이렇게 버리고 간 걸까? 무심천 롤러스케이트장이 이렇게 된 건 행정기관의 잘못인가? 아니면 시민들의 잘못인가? 촛불집회 당시 세계 언론의 찬사를 받던 성숙한 시민의식은 어디로 간 걸까?

쓰레기 더미를 보며 지나가던 시민들은 “시민의식은 서울에만 있나 보다”라는 말을 남겼다. 하루아침에 아름다운 벚꽃 명소는 잊히고 시민의식을 질타 받고 있는 현실이 안타까웠다.

이대로라면 올해 벚꽃에 대한 기억은 롤러스케이트장에 뒹구는 닭 뼈와 맥주병으로 대체될 것 같았다. 쓰레기봉투가 무거워져 허리를 펴고 내가 온 길을 뒤돌아 봤다. 다 같이 힘을 합쳐 치우니 신기하게 롤러스케이트장은 깨끗해져 있었다. 직원들의 협동심에 감탄하고 있을 때 옆에서는 더욱 놀라운 광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벚꽃 구경을 나온 어린이집 아이들이 쓰레기를 하나씩 주워 봉투에 넣고 가는 것이었다.

다행이었다. 탄식하며 그냥 지나간 어른들만 있는 게 아니라 쓰레기를 줍는 아이들이 있다는 사실이 무척 다행이었다. 선생님이 시켜서 하나씩 주워봤을 수도 있지만 분명 배운 것은 있을 것이다. 오히려 이 모습을 보고 어른들이 배워야 하는 거 아닌가 싶다. 아이들 덕분에 쓰레기 줍는 내내 격하게 고조돼 있던 내 마음이 진정됐다. 앞으로도 결코 잊을 수 없는 장면이었다.

내년 벚꽃 개화기에는 좀 더 성숙한 시민의식과 함께 행정기관의 철저한 준비도 필요할 것 같다.

사람이 몰리는 행사기간에는 더 많은 쓰레기통을 설치하고 일반 쓰레기와 종이류, 병·캔류를 분리수거할 수 있는 쓰레기통까지 넉넉하게 마련해야 한다.

자원봉사자를 선발해 시민의 분리수거를 돕고, 거리에 버려진 쓰레기를 함께 줍는다면 올해보다 한결 깔끔해진 거리를 거닐며 벚꽃을 구경할 수 있을 것이다.

내년 아름다운 벚꽃을 기다리고 기대하며.

동양일보TV

저작권자 © 동양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