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수 논설위원 / 중원대 교양학부 교수

이현수 논설위원 / 중원대 교양학부 교수

 살다 보면 타인과의 관계에서 오는 행복은 일상에서 휘발된다. 그러나 고통은 오래도록 각인된다. 추억으로 미화되어 소환되는 대게의 행복들은 가뭇하지만 균열된 관계의 고통은 오래도록 뇌에 저장되기 때문이다. 무리 속에서의 행복한 순간엔 대부분의 사람들은 고통을 떠올리지 않지만, 파생된 관계, 단절의 순간엔 타인의 진정성 앞에서조차 증오와 의심으로 삶은 무디어진다. 그러나 모든 이들은 그 고통의 시간을 삶의 결결마다 위로를 간절하게 기다리며 살아간다. 그러나 타인들과의 파편화된 관계의 기억은 내 탓이 아닌 남의 탓이라는 배타심 쪽으로 한발 더 기울어져 있다. 그렇게 예외 없이 인간관계의 시린 기억은 결국에는 관계의 경계심으로 모질게 사회화되어간다. 세상살이에서 인간관계가 가장 지난한 이유이다.

인간이 맺는 관계의 수가 뇌 신피질 크기에 의해 어쩔 수 없이 결정된다는 로빈 던바의 ‘던바의 법칙’은 인간관계의 허황된 욕망과 기대를 내려두게 한다. 개인이 맺을 수 있는 사회적 관계의 최대치가 150명임을 주장하는 ‘던바의 수’는 인류학의 저명한 이론이다. 부단한 일상 속에 관계에 천착하고 관계에 가슴 먹먹하던 날들을 지금에서야 돌이켜 생각해보면 ‘던바의 법칙’은 참으로 실존적이며 오묘하다. 인간관계는 끊임없는 시작과 이별을 반복한다. 관계의 의미조차 모르면서 내게만 좋은 관계들을 그리도 갈망한다. 오늘날 지리멸렬한 꼰대로 나이 먹어가면서도, 표백제로 때를 뺀 새하얀 감성의 관계를 여전히 동경하는 것도 사람이 희망임을 믿어 의심치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린 그 믿음에 늘 회의적이다.

‘던바의 수’에서 언급한 인간관계의 최대치 수는 왜 하필 150명인지, 왜 생각보다 많지 않은지, 로빈 던바는 영장류 집단의 규모와 대뇌 신피질의 상대적 크기 사이에 밀접한 상관관계가 있다고 말한다. 신피질은 주로 의식적 사고를 담당한다. 인간의 신피질 크기로 미뤄 보면 150명이라는 숫자가 입증된다는 것이다. 그럴 수도 있겠다. 삶을 지배하는 것은 현실이 아니라 뇌의 기억이다. 뇌의 가용치이다. 현실에 눈 감을 수는 있지만, 뇌의 기억으로부터 달아날 수는 없다. 통증으로 새겨진 뇌의 주홍글씨는 좀처럼 지워지지 않는다. 아픈 기억은 희망보다 언제나 힘이 드세다. 그러나 인간의 뇌는 기계적 통증으로 관계의 불협화음을 기억하지만 가슴이 지닌 창의성과 무한대의 공감능력은 관계의 종속변수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던바의 수’는 여러 분야에서 경험적으로 입증된다. 대면하는 방식으로 일하는 회사 조직은 150명 이하가 적당하고, 군대의 조직, 학자 공동체, 신석기시대의 마을 규모 등에서도 던바의 수는 계속 실존적으로 등장한다. 이화여대 최재천 교수는 온라인 게임 ‘리니지’를 하는 이들이 맺는 ‘혈맹’의 구성원 수조차도 얼추 150명 정도라고 했다. 참으로 기묘하다. 그러고 보니 자주 통화하는 지인들의 수도 그 규모를 넘지 않는듯하다. 그런데도 한때나마 정형화된 페이스 북 친구 수에 그토록 천착하다니.

타인의 고통을 직시해야 소통할 수 있음은 말할 나위가 없다. 공감하는 자만이 타인의 고통스런 현실을 위로할 수 있다. 뒤늦게 알아챘지만 그간 누린 나의 소소한 행복은 ‘연대의 힘’에 기초했다. 인간관계의 결핍은 매우 이중적이다. 포기를 부르거나 개척을 낳는다. 혼자가 편하다 싶어 관계에 무력해지면 위로받지 못한 채 고사된다. 주어진 운명이 이럴 리 없다 싶으면 더불어 함께 살길을 궁리한다. 물론 던바의 수를 고려하면 그 숫자는 그리 많지 않으리라.

봄꽃이 내려앉는 사월의 말미에 찾아든 생각 하나, 세상살이에 치여 고단해 하고 있는 이들을 작정하고 하나 둘, 만나보기로 했다. 만인에게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구름 같은 욕심보다 단 한 명의 상처받고 외로운 이에게 혼자가 아니라는 연민의 말을 건네자고 말이다. 무리 진 의례적 모임보다 혼자 있을 벗에게 고즈넉이 다가서자고 말이다.

비루한 일상만 주렁주렁 매달려 삶을 쇠락시키는 나이가 됐어도, 삼라만상에 주의를 기울이자. 정의가 유실되는 오류의 복판에서도, 통속적 관계를 넘어 진심으로 관계하고 있다는 진정성을 잃지 말자. 그리하면 인생 말미에 ‘던바의 수’를 훌쩍 넘어설 것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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