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희송 에른스트국제학교 교장

한희송(에른스트 국제학교 교장)
한희송(에른스트 국제학교 교장)

 

우리나라에서 입시제도는 대학입학제도를 의미한다. 그리고 교육개혁을 이야기할 때 입시제도의 개혁은 늘 논쟁목록에서 우선순위를 차지한다. 논자(論者)에 따라서는 입시제도에게 교육개혁을 위한 열쇠로써의 지위를 주기까지도 한다. 그 열망에 따라 우리나라의 대입제도는 지난 수십 년간 끊임없이 바뀌어 왔다. 교육개혁의 선두명제(先頭命題)로 지금도 그 위치를 고수하고 있는 우리나라의 입시제도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아직 정답을 찾지 못하고 있을까?
새 정부에서 수시입학제도의 폭을 줄이려 한다고 한다. 정시입학제도의 단점을 제거하기 위한 방편으로 오랜 연구를 통해 등장한 ‘수시’는 그동안 그 위세를 높여왔었다. 원래의 로드맵에 의하면 이미 서울대학교입시는 ‘정시’를 과거의 유산으로 치부했어야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정시를 포기하지 못한 마당에서 다시 정시를 늘리는 방향으로 선회한다니 그 옳고 그름을 떠나서 ‘수시’가 갖는 단점이 적시(摘示)되었다는 사실은 있는 모양이다. ‘정시’가 가진 문제점에서 입시개혁이 출발했는데 다시 돌아간다니 분명히 발전이 방향의 아님도 분명하다. 기존의 입시제도에 머무를 수 없는 상태에서 일단 과거로 돌아간 다음 현 정부는 어느 방향의 개혁을 선보일 것인가? 입시제도개혁의 본질은 무엇이고 어떤 형태의 개혁이 올바른 방향성을 가지는가?
사실 교육개혁과 입시제도의 직접적인 연관성은 없다. 우리가 부러워하는 교육선진국들의 입시제도는 우리나라보다 하등 나을 것이 없다. 우리나라에서 그렇게 문제가 되는 기부금입학제도도 문제로 인식되지 않는 곳이 있다. ‘정시’나 ‘수시’입학제도 역시 그렇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육개혁의 가장 근본적 절차로써 우리나라의 입시제도는 반드시 개혁되어야 한다. 그 이유는 제도자체에 교육개혁의 의미가 수반되어서가 아니다. 바로 ‘대학입학’이라고 하는 행위가 우리나라에서 갖는 중요성 때문이다. 바로 이것 때문에 어떤 제도개혁이든 앞으로도 또 다른 문제를 가진 새로운 제도를 양산하게 될 것이다. 즉 아무리 노력하고 고민해서 완벽하다 싶은 제도를 개발했다손 치더라도 문제점은 계속 노출될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그동안 있어왔던 교육개혁의 시도들과 입시제도의 개선들이 늘 새로운 문제점을 국민들에게 선사해 온 이유는 실제로 그 제도들 자체의 문제점보다 교육의 개념과 그 이행행태에 대한 국민적 의식이 본질과는 다른 곳에 있기 때문이다. 지성교육에만 치우친 결과를 교육왜곡의 주범으로 몰아세우던 시절에 우리나라는 ‘사회봉사’를 입시의 고려사항으로 편입시켰다. 그리고 사회봉사라는 항목에 점수라는 형식을 들이대어 체계화했다. 그 결과는 기득권층에게 유리한 또 하나의 과목을 만든 것으로 판명되었다. 자식은 떳떳하게 부모에게 실질적 사회봉사를 하지 않더라도 ‘점수’를 줄 수 있는 기관에 선을 대기를 원했고 부모는 자식이 보는 앞에서 그 거짓된 억지를 수행함으로써 능력을 과시하는 기회로 삼았다. 거짓 점수를 부탁할 능력이 없는 부모를 둔 학생들은 그 거짓 연극에 동참할 수 없음을 속상해 했고, 그 부모들은 자신의 무능력을 탓했다. 사회적 정의라는 표현은 그 거짓말의 향연에 동참할 능력이 없는 사람들이 기득권층을 비난하기 위한 기능어로 전락했다.
우리나라에서 자기소개서나 추천서의 의미는 하지 않은 일이나 남이 대신 해 준 일을 자기가 한 것으로 만드는 능력의 경연장을 묘사하는 글, 또는 별 것 없는 일이라도 대단함의 극치에 이른 일로 바꾸는 능력을 보여주는 창작물이다. 그 거짓에 동참하려하지 않는 사람들이 우리나라에서 사회생활에 서로 도움을 주는 관계로 다른 사람들을 사귈 자격을 가질 수 없다. 우리나라에서는 수능성적을 올리는 방법은 실질적 실력을 키우는 방법과 같은 방향성을 가지고 있지 않다. 학교수업은 보통의 일반적인 청소년들의 경향을 무시해야만 이행할 수 있는 형태만을 유지한다. 그렇게 만들어진 제도가 ‘정시’와 ‘수시’를 구분하고, 오히려 더 나은 방법을 찾으려고 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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