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두표 충북도 행정국장

 
이두표 <충북도 행정국장>
이두표 <충북도 행정국장>

 

며칠 전 시내 서점에서 책 구경하다가 ‘소중한 선물-군고구마 한 개’라는 글을 읽게 되었다. 제목을 보는 순간 내 머리는 1969년 초등학교 4학년 때로 숨 가쁘게 달려갔다. 우연치고 이런 우연이 있을 수 있단 말인가?

나는 목령산이 등허리를 웅크리고 느릿느릿 걸어와 미호벌판과 만나기 위해 자세를 최대한 낮춘 끄트머리에 자리한 작은 농촌마을에서 나고 자랐다.

학교까지는 논두렁을 지나고, 개울을 건너고, 야트막한 산잔등을 넘으며 3개의 마을을 지나 십리를 걸어야 했다. 이런 환경 탓으로 내 관심은 온통 자연 뿐이었다. 목령산 어느 골짜기에서 알 칡이 나오는지, 팔결 모래펄 어디쯤에 모래무치가 숨어 있는지, 겨울밤 어느 처마에 참새가 잠들어 있는지 등등….

그러던 내게 세상이 뒤집어지는 변화가 왔다. 초등학교 4학년 때 S선생님을 만나면서다. 우연히 학교 글짓기 반에 들어가게 되었고, 선생님으로부터 생각을 글로 표현하는 방법을 배우게 되었다. 그 세계는 여태껏 경험해 본 적이 없는 신비함으로 가득 차 있었다. 황홀감에 휩싸여 더듬이를 곧추 세우고 새로운 세계를 더듬는데 열중했다.

학교 도서실에서 매일 매일 책을 빌렸다. 선생님께선 그런 내가 귀찮다고 웃으시면서 내게 책을 맘껏 읽어보라고 도서실 열쇠를 주셨다. 도서실 문을 처음 열었을 때의 놀람과 벅참이란!

교실 반 칸 정도인 도서실엔 책이 빼곡하게 들어차 있었다. 틈만 나면 거기서 살았고, 어두워지면 집으로 책을 싸들고 갔다. 파브르의 곤충기를 읽고 또 읽었다. 염상섭의 표본실의 청개구리를 읽고는 개구리 해부 장면이 꿈에 무섭게 자꾸 나타나기도 했다. 신화, 위인전, 시, 소설 등등 게걸스럽게 읽어댔다.

글쓰기 재미에 푹 빠져 들었고 1년쯤 지나자 각종 백일장, 경진대회에서 상을 받으며 우쭐댔다. 그런 나를 선생님은 무척이나 귀여워하셨다. 어떤 날은 도시락 같이 먹자고 나를 부르기도 하셨다. 선생님 도시락은 하얀 쌀밥이었고, 반찬은 장아찌나 콩조림이 아니었다. 그 때 소시지를 처음 먹어 봤다. 달걀프라이를 처음 먹어 봤다.

나도 선생님께 뭔가를 드리고 싶었다. 용돈이란 말도 몰랐던 내게 재산이라곤 딱지, 구슬이 전부였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내가 세상에서 제일 맛있어하는 고구마였다. 고구마는 겨우내 우리 집 식량이었고 내 군것질의 전부였다. 날고구마는 날고구마대로, 찐고구마는 찐고구마대로, 군고구마는 군고구마대로 맛이 있어 먹어도 먹어도 질리지 않았다. 지금도 나는 돈 버는 목적 중에 하나가 고구마 사먹기 위해서라고 얘기할 정도로 고구마를 좋아한다. 그 당시 내가 선생님께 드릴 수 있는 가장 좋은 선물이 고구마였다.

겨울날 아침, 고구마 한 개를 정성스럽게 구어 윗옷 주머니에 넣고 선생님이 계신 학교까지 십리 길을 쉬지 않고 달려갔다. 따뜻할 때 드리려고…. “선생님, 이 거…” 부끄러워 말도 끝맺지 못한 채, 고구마를 불쑥 내밀고는 교무실을 도망쳐 나왔다. 세월이 흘러 내 나이 이젠 60이 다됐다. 선생님을 중학생 때 뵙고, 지금까지 뵌 적이 없다.

글은 이렇게 끝나고 있었다. “나는 오늘도 수십 년 전 내게 군고구마 한 개를 불쑥 내밀던 소년의 빨갛게 얼어붙은 고사리 손과 천사 같은 눈동자를 찾고 있다. 추운 겨울에 십리 길을 달려온 소년의 주머니 속에서 이리저리 부딪쳐, 껍질이 벗겨지고 모래가 여기 저기 박힌, 그러나 약간의 온기가 남아 있는 그 고구마의 맛을 잊지 못하고 있다.”

아하!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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