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희팔 논설위원 / 소설가

박희팔 논설위원 / 소설가

(동양일보 박희팔 기자) 큰물 가에서 대낚질만하고 세월을 보낸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여태까지이니 그의 나이 스물일곱이다. 군대는 영장이 나오지 않아 가지 않았다. 신체검사를 받고 4을종합격이라고 복창을 했는데도 얼마 뒤에 알아보니 징집면제로 되어있는 거였다. 그래도 어디 취직하는 데는 아무런 지장이 없다고 한다. 하지만 왜소하고 약골인데다 게을러터지고 눈만 높아 웬만한 데는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이러하니 누구 하나 어디 천거해 주는 사람도 없고 올바른 사고방식의 젊은이들도 들어가 일할 자리도 못 찾고 있으니 그는 그대로 공중에 떠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또래 애들은 전부 일거리 찾아 이리저리 모두 나갔는데 저놈 혼자만 저러고 있으니 참 남의 일 같지 않아.” “지아비 없는 지 에미는 장장이 쫓아다니며 푸성귀 팔아 저 고등학교꺼정 마쳐줬으면 제 밥벌이라도 해야 하잖여.” “누가 아니래 제 여동생들이 둘이나 있는데 집안기둥이란 놈이 저렇게 남이 비웃는 것도 모르고 한가하기만 한 채로 어리석은 짓만 하고 있으니 저걸 어쨔 그래!” “나이가 어리기나 햐 스물일곱이나 처먹두룩 아직도 배냇이는 다 갈지도 못하고 머리는 다박머린 채로 있으니 한심햐 한심햐!”

그러한 판에 그의 낚시동료가 하나 더 늘었다. “많이 잡힙니까.” 낚싯대 드리우는 어깨너머로 점잖은 소리가 들린다. 그는 쳐다보지도 않고 시큰둥이 대답한다. “그냥 그러네요.” 그러자 그 낯선 이는 그의 옆에 와 앉는다. “이 동네 분이신가요?” 흘끔 옆을 보니 그 사람의 손에도 낚싯대가 들려 있다. “예, 근데 처음 보는 분이셔.” “예, 저 기와집 바깥양반이 제 외숙 되는 분입니다. 내가 애기 때 한번 왔다는데 기억에 없으니 처음과 마찬가지지요.” “어디 사시는데요?” “서울에 있습니다. 일주일 휴가를 한가하게 낚시질이나 하고 가려고요. 댁두 요즘 휴간가요. 보아하니 나보다 훨씬 젊어 보이는데?” “아뇨 그냥 할 일이 없어서 취미삼아 그냥….” 그날부터 둘은 낚시 벗으로 나란히 앉아 시간을 낚았다. 그러자니 이 이야기 저 이야기, 세상사는 이야기, 신상에 관한 이야기가 오갔다. 그리곤 그 서울사람이 떠나는 날, “그간 젊은이 땜에 잘 쉬었네요. 그나저나 젊은이가 논다니 안 됐수. 그래서 하는 말인데 실은 내가 서울서 조그만 유통회사를 하고 있소. 어때요 나하고 같이 올라가지 않겠수. 뭐 힘든 일은 못하겠구 그냥저냥 살 수 있게는 해줄게요.” 이런 소식을 듣고 동네사람들이 젤로 쌍수 들고 환영이다. “아이구 참 그 양반 좋은 일 하시네. 그나저나 저 놈 저거 가서 잘이나 있을라나 모르겄네.” “그러게나 말여. 여하튼 저 하기 나름이지 우쨌든 잘된 일이야.”

이래서 그는 서울로 올라갔는데 집에 있는 그의 엄마는 더 뼛골이 빠진다. 평소 우쭐거리는 그의 성격에 불을 붙이는 것이다. “엄니, 서울사람들하고 어울릴랴믄 새 양복이 필요해. 방은 거기서 마려해 주었지만 텔레비두 놔야하구 내가 어떻게 빨래를 해 세탁기두 있어야 하구 침대두 있어야 해. 그까지껏 일이년이믄 다 뽑을 수 있어. 그러니 엄니가 마련 좀 해줘!” 그러니 어머니 된 도리로서 마다 할 수 없어 울며 겨자 먹기로 있는 것 없는 것 끌어다 뒤 대기에 바빴다. 헌데 이 놈은 한 달에 한 번, 그리고 2주일에 한번, 그리고는 아예 일주일에 한 번씩 내려와서는 동리사람들에게 서울생활을 뻥튀기하는 것이다. 자기 없으면 회사가 안 돌아간다. 사장도 자기 말이라면 꿈뻑하고 직원들도 절절맨다. 그뿐 아니다. 시골에선 듣도 보도 못한 화려한 서울의 풍경을 으스대며 이야기하면서 마치 자기가 그런 속에서 그런 생활을 한다는 조였다. 하지만 서울생활 3년이 되도록 집안에 들여놓는 생활비는 한 푼도 없었다. 그 사이 두 여동생들이 제 각각 짝지어 나갔을 뿐이고 서른이 되어서야 색시 하나를 데리고 와 제 엄니에게 맡기곤 여전히 희 번득거리며 시골집을 드나들었다. 그러더니 어느 날 시르죽은 몰골로 힘없이 집으로 들어왔다. 그게 그 회사에서 잘린 거라고 동리 기와집양반이 귀띔을 해주는 것이다. 그러니 자식이고 남편인 걸 어떡하는가? 그의 아내는 시어머니와 함께 시골장을 누비더니 마침내 그의 어머니는 그렇게 생을 마치고 그도 나날이 술로 날을 보내더니 50줄에 들어서면서 생을 마감했다. 그리고 남은 두 모자가 하루는 마주 앉았다. “이제 너도 고등학교에 들어갔으니 일러둔다. 난 네 아버지의 그 꼴 난 잔풀내기 행세에 넘어갔지만 넌 절대로 그리해서는 안 된다.” “잔풀내기요?” “그래, 하찮은 출세로 거들먹거리는 사람을 이르는 말이다.” “예, 알았어요.” 아들은 힘껏 입을 오므려 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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