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이 동양일보 상무이사 겸 편집국장

(동양일보 김영이 기자) 남북정상회담 이후 국민들의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판문점 선언이 우리 땅에서 완전한 비핵화와 종전선언을 통해 평화로 이어질 것이라는 기대가 국민들을 설레게 한 것이다.

회담 과정에서 보여준 양 정상의 파격적 행보도 그렇다. 북한의 최고지도자로서 분단 처음으로 군사분계선을 넘어 남측 땅을 밟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문재인 대통령 손을 잡고 북측으로 갔다가 다시 남측으로 함께 넘어오는 장면은 국민들의 가슴을 뭉클하게 했다.

이어 두 정상이 의장대를 사열하고 시나리오에도 없는 양측 대표단들과 즉석 기념촬영을 하는 모습, 북한군 수뇌부가 문 대통령에게 거수 경례하는 모습 등은 의외의 사건임에 틀림없다.

이처럼 남북정상이 한반도 비핵화 합의를 골자로 한 역사적인 판문점 공동선언이 세계 만반에 울려 퍼졌는데도 유독 ×씹은 얼굴로 재를 뿌리는 사람이 있으니, 바로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다.

그는 3차 남북정상회담의 의미를 평가절하하는 것도 모자라 말의 성찬이니. 위장평화쇼니, 외눈박이 외교라느니, 주사파 합의니 하며 차마 입에 담지 못할 막말을 퍼붓고 있다. 그에게서 막말을 듣는 게 생소한 것은 아니지만, 이번엔 해도 너무 심했다. 아니 땡깡이라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기분 내키는 대로 내뱉고 있다.

판문점 선언이 지방선거에 미칠 영향을 우려한 정치적 제스처로 보이긴 하지만, 그렇게 한다고 해서 국민 마음 깊숙이 자리한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우생순)’을 물릴 수는 없다. 핵폐기는 한마디도 꺼내지 못하고 김정은이 불러 준대로 받아 적었다는 말도 어깃장이다.

북미정상회담의 디딤돌인 남북정상회담에서 핵폐기 종지부를 찍는다면 북미회담은 열 필요가 없다. 비핵화와 종전, 평화협정 선언은 남북의 몫이고 최종적인 핵폐기는 트럼프와 김정은에 맡겨야 한다. 그래야 사상 첫 얼굴을 맞대는 양 정상, 특히 트럼프의 체면을 살릴 수 있지 않은가. 조금만 머리를 굴려도 다 아는 이런 수순을 홍 대표와 그 주변 몇몇만 모르고 고춧가루를 뿌려대고 있으니 처량하다는 생각마저 든다.

보수는 늘 미국과 궤를 같이하고 있다고 하지 않던가. 그래서 그들은 촛불집회에 맞서 태극기 집회를 열때 성조기를 빼놓지 않고 들고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까지 나서 남북정상회담 성과를 환영하는데 이들은 위장평화쇼라고 딴지를 걸고 있으니 그게 자기부정이 아니고 무엇인가.

이런 구태적 냉전 사고방식이 역풍을 몰고 오자 당혹감을 감추지 못한 당원들이 홍 대표와 선 긋기에 나섰다. 지방선거에 출마한 남경필 경기지사, 김태호 경남지사 후보, 유정복 인천시장, 친박 핵심인 김태흠 의원 등은 한 목소리로 홍 대표와 당 지도부들이 정신을 못차리고 있다며 질타했다. 이런 식으로 가다간 지방선거 결과가 뻔할 거라는 위기감에서 오죽하면 후보들이 입조심 좀 하라고 하겠나.

정치권에서는 홍 대표가 위장평화쇼라고 먹칠을 하는 것에 대해 (한반도에 평화가 오는 것이) 배가 아파서 그런가 보다며 ‘위장에 평화가 오는 쇼’부터 보는 게 좋겠다고 비꼬고 있다.

심지어 하태경 바른미래당의원은 이렇게까지 말했다.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선 북한에서는 핵폐기를 해야 하고 남한에서는 홍 폐기 해야 한다”고. 그러면서 일본에서 해방되는 걸 두려워하는 게 친일파 밖에 없듯이 전쟁에서 평화로 한반도 역사가 변하는 데 이를 싫어할 사람이 누구겠나. 반평화 세력, 홍으로 대표되는 ‘이’라고 힐난했다.

외교통일분야는 여야가 따로 없다. 서로 싸우다가도 국익을 위해선 머리를 맞대야 하는 게 정치인이다. 잘한 것은 잘했다고 해야지 무조건 잘못했다고 하는 것도 예의가 아니다.

늦지 않았다. 홍 대표는 한반도 평화의 적이라는 꼬리표를 떼기 위해서라도 국민정서를 바로 읽길 바란다. 북핵폐기와 남북교류협력을 위한 정부의 노력에 대해 협조할 것은 협조하고, 미흡한 부분이 있다면 집권경험을 가진 야당으로서 합리적이고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일부에서는 그동안의 북한 행태를 보면 샴페인만 터뜨릴게 아니라는 우려의 시각도 보낸다. 옳은 말이다. 그렇지만 미국까지 나서 전쟁없는 한반도를 위해 노력하고 있는데 국민의 힘을 한곳으로 모아 협조하지는 못할망정 이간질 하는 행위는 더 이상 있어선 안된다.

‘자유한국당 종신 대표’를 맡아야 한다는 국민들의 냉소 섞인 요구를 그는 어떻게 받아들일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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