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기황 논설위원 시인

 

 #요즘은 봄의 경계가 모호하다. 꽃 피는 춘삼월이 무색할 정도로 햇살이 따갑다. 산으로 들로 바깥나들이가 한창일 이맘때면 이곳저곳에서 초중고 동문체육대회도 다투어 열린다.

필자도 모처럼 초등학교 동문체육대회에 참석하게 됐는데 만나는 자리마다 지난 주 ‘4.27 판문점선언’의 뒷얘기가 끊이질 않는다. 세계적 관심사였던 남북정상회담의 여운이 워낙 강렬해서인지 이번 6.13 지방선거에 대한 관심은 한참 뒷전으로 밀리는 느낌이다.

최근 판문점 선언을 염두에 둔 듯, “우리가 전후1세대니 휴전된 지 65년이 맞네. 전쟁 없이 한 생을 마친다는 것도 큰 복인 것 같아.” 누군가 한마디 하자, '그려, 맞는 얘기여, 우리도 우리지만 자식들이 걱정이지. 전쟁 없는 나라에서 산다는 게 얼마나 다행이여“ 하며 맞장구를 친다.

지난 4개월 동안 요동쳤던 한반도 정세를 감안하면 가히 기적처럼 찾아 온 ‘한반도의 봄’이다.

아직 갈 길이 멀고 당면한 북미정상회담도 복잡하고 불확실한 난제를 내포하고 있지만 분명한 것은 길고 긴 한반도의 겨울이 끝나가고 있다는 느낌이다.



#1950년 6월 25일 전쟁발발, 1953년 7월 27일 정전협상까지 만3년에 걸친 6.25 전쟁의 폐해를 수치로는 다 표현할 수 없다. ‘평화와 번영’이라는 공동목표를 선언하기까지 65년이라는 질곡의 세월을 견뎌 온 분단의 역사가 너무 가혹하기 때문이다.

통일부와 대한적십자사의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생존 이산가족은 5만9,037명인데 90세 이상이 18.9%, 80세 이상으로 보면 61.7%다. 59세 이하는 불과 6.3%라고 하니 얼마 남지 않은 전쟁1세대들이 지난(至難)한 세월동안 얼마나 큰 이산(離散)의 고통 속에 살아왔을까 가슴이 먹먹해진다.

그러기에 지난 4월 27일 남북정상회담의 ‘판문점 선언’은 몇 번을 다시 보고 다시 들어도 가슴 뛰는 기쁜 소식이다.

155킬로미터 녹슨 철조망위로 꽃이 어우러지는 ‘한반도의 봄’을 기약해도 좋을 것이다.

12시간의 생중계로 보여 준 남북정상회담의 결과는 몇 번의 파종 끝에 이제 희망의 싹을 틔우는데 성공했다는 확신을 갖기에 충분했다.

새소리를 배경음악 삼아 도보다리위에 앉아서 다정하게 얘기하는 두 정상의 모습을 보며 과연 동토의 세월을 한 순간에 뛰어넘을 수 있는 만남은 무엇에서 비롯되는 것일까 하는 생각을 다시 하게 된다.



#졸업한 지 50년이 넘었으니 원로 석이 새삼스러울 건 없지만, 후배들이 마련해 준 텐트 안에서 동문들과 이 얘기 저 얘기 주고받는 시간이 평화롭다.

송홧가루 날리는 뒷산 뻐꾸기 울고, 옛 교정을 둘러보는 눈길마다 아득한 추억 속에 잠긴다. 푸른 잔디 위 형형색색 피어있는 풀꽃들 위로 흰나비 노랑나비가 눈앞을 아른거린다.

이제는 손바닥만 하게 느껴지는 운동장에서 공굴리기며 오재미 던져 넣기며 2인3각 이어달리기 등 추억을 소환해 보는 봄 날 한때의 자유가 감사하다.

긴 세월 전쟁 없이 살아 온 우리 전후세대들은 순국선열들에게 당연히 큰 ‘빚’을 지고 있는 셈이다. 우리 전후세대가 해야 할 일도 분명하다.

다음세대가 ‘평화와 번영’의 길로 나아가는 데 올바른 ‘빛’으로서 길잡이 역할을 해야 할 것이다.

2018년 올해는 김정은 위원장이 신년사에서 언급한 ‘사변적(혁명적)’ 해가 될 것이 분명하다. 설레는 5월, 무엇을 꿈꾸어도 좋은 계절이다.

한 핏줄, 하나의 문화를 가진 우리가 성급한 ‘통일’을 꿈꾼다 해서 죄 될 일은 아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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