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영선 동양일보 상임이사

(동양일보 유영선 기자) 우리 조상들은 시간을 계산하는 데도 여유와 낭만이 있었다.

5~20분 사이 정도는 ‘뜨거운 차 한 잔을 마실 정도의 시간’이라고 계산해서 ‘일다경(一茶頃)’이라고 했고, 30분 정도는‘ 한 끼를 먹을 정도의 시간’으로 봐서 ‘한 식경(食頃)’이라고 했다.

참 쉽고도 피부에 닿는 생활속 시간 계산법이었다.

중국에서 유래되긴 했지만, 시간을 십이지 열 두 동물의 특성을 살펴 그 동물이 주로 활동하는 시간으로 표시한 것도 재미있다. 가령 쥐가 열심히 돌아다니는 때는 자시(23-01시)로, 소가 반추를 끝내고 아침 밭갈이 준비를 시작할 때를 ‘축시(01-03시)’로, 뱀이 자고 있어 위험하지 않을 때는 ‘사시(09-11시)’로, 해가 지고 닭이 둥지에 들어갈 때는 ‘유시(17-19시)’, 어두워져 개들이 집을 지키기 시작하는 때는 ‘술시(19-21시)’등으로 시간을 표시해 매우 친자연적이었다.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쓰는 시간에는 두 가지의 의미가 있다. 하나는 순간을 의미하는 시각이고, 또 하나는 시간과 시간 또는 시각과 시각의 길이를 의미하는 시간이다.

세종대왕은 장영실이 자격루(自擊漏)라는 자동 물시계를 발명한 뒤 그 시계를 국가의 표준 시계로 채택했다. 당시 조선 왕조에는 시간을 측정하고 알려 주는 관청이 있어서 관리가 시간을 알려 주었는데, 시간을 확인하는 때를 놓치기도 하고 부정확할 때도 있어서 불편했는데 자동 시보 장치인 자격루가 제작되면서 정확한 시각을 알려줄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나라들이 서로 교류를 하기 전에는 이렇게 각 나라마다 고유의 시간을 갖고 있었다.

그러다가 1884년 국제협정에 의해 그리니치가 지구의 경도의 원점으로 채용되었고, 1935년부터는 이 선을 기준하여 세계시(국제적 시간)로 사용하고 있다.

세계 각 지방시와 표준시는 이 선을 기준으로 결정된다. 일반적으로 그리니치를 중심으로 경도가 15도 차이가 날 때마다 1시간씩 다른 표준시를 사용한다. 즉 경도가 15도 동쪽으로 옮겨지면 표준시는 1시간이 빨라지고, 서쪽으로 옮겨지면 1시간이 늦어지게 되는 것이다. 이 계산법에 의해 현재 우리나라 표준시는 그리니치 표준시보다 9시간이 빠르다.

처음 표준시를 정할 때 우리나라는 동경 120도와 동경 135도 안에 위치해 있어서 중간 지점인 동경 127.5도를 표준시로 정하거나 동경 135도로 정하거나 둘 중 하나의 선택을 해야했다. 그래서 그동안 이 표준시를 놓고 갈팡질팡했다.

조선 세종대왕 때는 해시계로 서울의 정남향을 측정해 동경 127도가 표준시로 사용되었고, 서양식 시간을 최초로 도입하던 대한제국 때 표준자오선 127.5도를 대한제국 표준시로 사용했다. 이후 경술국치 한일병합 후 일본과 같은 동경 135도로 바꾸었다가, 육이오 전쟁이 끝날무렵인 1954년엔 동경 127.5도로 환원했다가, 1961년 군사쿠데타 이후 다시 동경 135도로 표준시로 바꾸어 지금까지 사용하고 있다.

그 후 2000년, 2005년, 2008년 국회에서 한국인의 생체리듬에 맞는 표준시(동경127.5도)로 변경해야 한다는 법안을 발의했지만, 대부분의 국가가 국제표준시에서 1시간 단위의 시차를 두고 있고, 북한도 동경 135도를 쓰고 있으므로 통일 후에나 변경을 고려해야 한다는 이유로 문턱을 넘지 못했다. 그 사이 북한은 동경 135도로 쓰던 표준시를 동경127.5도로 고쳐 써서 최근 2년 동안 우리와 북한은 30분의 시간차가 발생했었다.

그런데 이번 남북정상회담이후 북한이 우리보다 30분 느린 평양시간을 우리 측과 맞추겠다고 공표했다. 그것도 속전속결로 바로 내일(5월5일)부터 시행하겠다는 것이다. 남북정상회담의 합의 결과를 신속하게 이행하겠다는 의지로 해석되지만 놀랍기만 하다.

갑작스런 시간 변경이 행정이나 생활 속에서 쉽게 적용되기 어렵겠지만, 결단을 내린 북한 측이 고맙다. 사실 같은 땅 한반도에서 서로 다른 시간을 쓰는 것이 얼마나 우스운 일인가.

이로써 우리 표준시에 대해서 더 이상 동경 127.5도와 135도를 두고 설왕설래하던 다툼은 사라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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