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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향계/ 아시아의 끝, 유럽의 관문
풍향계/ 아시아의 끝, 유럽의 관문
  • 홍연기
  • 승인 2018.05.08 1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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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연기 논설위원 / 한국교통대 교수
홍 연 기 논설위원 / 한국교통대 교수

2012년 12월 미국 항공우주국(NASA)은 미국 지구물리학회 학술대회에서 ‘블랙마블(Black Marble)'이라는 제목으로 지구의 밤 모습을 촬영한 영상을 발표하였다. 블랙마블은 2012년 4월과 10월 두 달에 걸쳐 지구 곳곳에서의 밤을 위성을 이용하여 촬영한 사진을 편집한 영상이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블랙마블 영상에 유독 관심을 가졌던 점은 도시들의 화려한 불빛으로 가득한 남한지역과는 대조적으로 불빛이라고는 거의 찾아 볼 수 없는 칠흑 같은 어둠에 있는 북한지역의 모습이었다. 북한의 수도인 평양의 불빛이 남한의 중소도시만 못할 뿐 아니라 북한 전역에 걸쳐 불빛이 너무 없다보니 해안선조차 구분할 수 없을 정도였다. 블랙마블에서 남과 북의 밝기 차이는 분단이 가져온 남과 북의 경제, 산업, 문화의 차이를 극명하게 보여주었다.

블랙마블 영상만을 놓고 봤을 때 대한민국은 아시아 대륙과 떨어진 섬나라처럼 보인다. 북한의 어둠에 대비되는 남한의 환한 불빛이 소위 말하는 체재의 우월성을 나타낸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반대로 지금과 같이 남과 북의 인적·물적 교류가 없다면 남한과 북한의 차이가 커질수록 대한민국이 대륙의 일부가 아닌 섬나라로 전락할지 모른다는 우려도 커질 수밖에 없다. 이는 대륙으로 부터의 물리적인 이탈 뿐 아니라 대륙으로 뻗어 나가야 할 우리나라 사람들의 의식까지도 대한민국이라는 좁은 섬에 가두어 버리는 결과로 이어지게 된다. 단편적으로 우리가 흔히 사용하고 있는 해외(海外) 여행이라는 말조차 바다를 건너지 않고서는 나라 밖을 갈 수 없다는 섬나라 식 사고에서 비롯된 것이다. 남과 북이 분단되기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우리 국민들은 미주 지역을 제외한 모든 국가들을 대륙을 통해 여행할 수 있었다. 우리가 영화 ‘암살’ 이나 ‘밀정’에서 봤듯이 실제로 우리 선조들은 서울역을 통해서 대륙 곳곳으로 다닐 수 있었다.

안중근 의사는 이토 히로부미를 제거하려고 하얼빈에 갔을 때 만주횡단철도를 이용하였다. 일제 강점기 시절의 신지식인이었던 당시의 서양화가 나혜석은 1927년 서울역을 출발하여 프랑스에 도착함으로써 조선 여성 최초의 유럽 여행을 시작하였다. 베를린 올림픽에 출전했던 손기정 선수는 일본 도쿄에서 기차와 배를 갈아타고 부산에 도착한 후 경부선 열차를 통해 서울로 이동, 서울역에서 신의주역을 거쳐 만주횡단철도와 시베리아횡단철도를 통해 독일의 베를린에 도착할 수 있었다. 한국 전쟁 중 한국에 들어와 서울의 곳곳을 둘러보았던 프랑스 종군기자 막스 올리비에 라캉(Max Olivier Lacamp)이 서울역에 들렸다가 역내 사무실 한 켠에 있는 캐비넷 서랍에서 서울에서 하얼빈, 이르쿠츠크, 모스크바를 거쳐 프랑스 파리로 가는 대륙횡단 기차표를 발견하였다는 것도 그리 놀라운 일만은 아닐 것이다. 해외여행은 바다를 건너야만 다른 나라를 갈 수 있었던 일본의 생각에 불과하며 언제든지 대륙을 통해 국외로 다닐 수 있었던 우리의 생각과는 맞지 않았던 것이다.

미국 하버드대학 영문학과 교수이자 섬을 연구하는 도서학(Islandology)으로 유명한 마크 셸(Marc Shell) 교수는 국내의 한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섬이란 단순히 지리적 개념만을 의미하지 않으며 바다 뿐 만 아니라 다른 요소에 의해 완전히 차단된 곳이라면 그곳을 섬이라 할 수 있다고 하였다. 이런 의미에서 지금의 대한민국은 북쪽에 커다란 바다가 놓인 것과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우리는 섬나라가 아닌 섬나라가 된 것이다. 국가 간 인적·물적 교류가 육로를 통해 가능했음에도 불구하고 분단으로 인해 육로를 통한 대륙과의 단절이 우리 생각의 크기까지 제한하는 결과를 낳았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서울역은 더 이상 국내선 역일 수 없다. 과거에 그러하였듯 서울역은 국제선 역이어야 한다. 서울 뿐 아니라 광주에서도, 대구에서도, 청주에서도 우리는 육로를 통해 대륙으로 갈 수 있어야 한다. 지난 4월 27일 남과 북의 정상이 합의했던 판문점 선언을 통한 남-북 철도 연결은 경제적 효용성을 넘어 유라시아 대륙에 걸친 철도와 도로를 이용하여 서로 다른 언어와 문화를 가진 이들과 우리 민족의 활발한 교류를 의미하는 것이다. 육로를 통한 대륙과의 교류 속에서 우리 의식의 규모가 커질 뿐 아니라 앞으로 전개될 새로운 시대에서 대한민국은 더 이상 아시아의 변방이 아닌 세계의 주역으로 자리매김 해야 한다.

대한민국은 극동 아시아 즉, 아시아의 동쪽 끝에 자리 잡고 있다. 그런데 서울에서 출발하여 경원선을 넘어 따라가다 보면 청진을 거쳐 얼마 지나지 않아 러시아의 블라디보스톡에 이르게 된다. 우리는 늘 비행기를 타야만 유럽에 갈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지리적으로 보면 기차나 자동차를 타고 몇 시간만 가면 유럽에 도착할 수 있다. 21세기 대한민국은 이렇게 해야 한다. 한반도는 더 이상 고립된 극동 지역의 변방이 아닌 유럽으로 가는 관문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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