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명숙 청주시청원구지역경제팀장

황명숙 청주시청원구지역경제팀장

노란 개나리색이 잦아든 자리를 초록이 물들이고, 화사한 무심천 벚꽃이 비바람에 흩날린 거리를 달콤한 보랏빛 라일락이 코끝을 간질간질하던 4월 어느 날, 슬픔과 엄숙함으로 가득할 것 같은 장례식장 어귀에서 마주한 분홍빛 벚꽃이 하늘에 계신 엄마가 걷는 꽃길을 궁금케 한다.

엄마는 전쟁으로 인한 피난길에 가족들과 잡은 손을 놓치고, 혈혈단신 남으로, 남으로 내려와 지금의 내 고향 청주시 남일면 쌍수리에 둥지를 틀고 눈 씻고는 찾아볼 수 없는 효자에, 법이 필요 없을 듯한 아버지를 만난다. 그 인생의 만남은 엄마에게 억척스러운 삶을 안겨준다. 맨땅에 헤딩이라고, 입에 풀칠하기도 버거울 텐데도 밭뙈기를 하나하나 늘려가는 재미, 농지원부를 만들어가는 재미에 무거운 삶의 무게가 버겁다는 사실도 잊은 채 살림을 일구고 육 남매를 키우며 그 고단한 삶의 여백을 작은 여유로 채우기 시작할 무렵, 엄마는 홀연히 일흔다섯 해를 갈무리하고 하늘 길을 걸으셨다.

먹고살기 힘든 그 시절, “여자가 무신 고등학교, 그것도 대학교를 다닌다고?”하는 동네 사람들의 비아냥거림도 엄마의 귀에는 들리지 않았나 보다. 올해 환갑인 큰언니와 그 아래 둘째 언니가 고등교육을 마치고 필자 또한 지역 대학교를 졸업하고 여기 이 자리 청주시 공무원으로 서 있는 것을 보면 말이다.

초등학교도 졸업하지 못한 배움의 갈증은 한글을 독학으로 깨쳤다. 지금도 땀의 대가인 열무, 옥수수, 겨울 냉이를 머리에 이고, 육거리시장까지 가는 무거운 걸음을 당당히 버스 노선표를 보며 기사에게 묻지도 않고 당당히 버스 계단을 오르던 엄마의 모습이 선하다. 엄마의 거침없음을 동네에서는 여장부라 일컬었지만 뒤돌아 흐느끼고, 길가에 산에 핀 꽃을 보고 걸음을 멈추며 색깔을, 향을, 느낄 줄 아는 소녀였다. 다섯째로 엄마의 곁에 오래 머물렀던 딸 이였기에 깊이 알고 있다. 땔감을 묶어 머리에 이고 산을 내려오면서도 봄이면 진달래와 싸리꽃, 아카시아꽃을 꺾어 주전자에 꽂았고, 가을이면 노랗고 흰 국화 화분에 물을 주던 엄마. 키도 몸매도 얼굴과 눈 크기도 엄마 판박이라는 말에 약간 화를 내지만, 당당함과 부드러운 감성을 물려주심에 감사드린다.

지금 한반도에는 화해와 평화의 바람이 분다. 1983년 ‘누가 이 사람을 아시나요?’의 타이틀로 시작한 이산가족 찾기 바람. 이 바람은 당찬 여성 농부 마음을 마구 뒤흔들고 아픔만을 남긴다. 손을 놓쳤던 가족을 찾기 위해 뜬 눈으로 밤을 지새우며 한 명, 한 명의 사연과 사진을 보고, 또 직접 피켓을 들고 TV에도 출연해 애타게 찾았지만 결국 그 흔적을 찾지 못함에 여름부터 불던 바람이 겨울 북풍으로 바뀌고 봄바람이 불어도 엄마는 쉽게 그 마음을 추스르지 못했다.

하춘화, 이미자, 김세레나의 노래를 좋아했던 ‘흥부자’ 엄마에게 가끔 콘서트 티켓 두 장을 드리면, 엄마는 홀로 계신 시어머님과 손을 잡고 즐기곤 하셨다. 흥을 다룰 줄 아셨던 엄마에게 ‘가끔’이 아니라 ‘종종’ 해드리지 못한 것이 지금도 아쉽다.

척박하고 힘든 엄마의 하늘 아래 삶은 우리 육 남매의 꽃길이 됐고, 엄마의 흥은 셋째 딸이 물려받아, 삶의 무게로 힘들 때마다 비장의 카드로 꺼내들며 씩씩하고 행복하게 살고 있다.

엄마, 부디 그곳에서는 아름다운 꽃길만 걸으세요.

5월의 어느 날, 보고픈 엄마의 하늘 꽃길이 궁금한 막내가 이산가족 찾기 바람에 실어 띄워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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