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성택 전 제천교육장

사람이 살면서 ‘만남’은 참으로 소중한 것이다. 어떤 만남이냐에 따라 삶이 달라진다.
 

최성택 전 제천교육장
최성택 전 제천교육장

 

#1. 1970년대 근무하던 중학교에서 여러 날 결석을 한 학생의 부모와 상담한 적이 있다. 가냘픈 몸매에 질병을 앓은 것 같고 심신이 피로해 보이는 70대 정도로 보이는 할아버지였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아들이 등교 중에 불량배들의 위협에 따라갔더니 아무 것도 안하고 여기저기 데리고 놀러 다니면서 식사 때가 되면 맛있는 음식도 사 주고 잘 대해 주었다. 그러더니 1주일쯤 지난 어느 날 산비탈에 앉아서 눈을 감고 자기 주머니에 전혀 느끼지 못하게 손을 넣어 보라고 하여 손을 넣으니 눈을 뜨면서 전혀 느끼지 못하게 하라고 갑자기 험한 말과 얼굴로 겁을 주더란다. 그런 일을 반복하여 숙달이 되자 시내버스를 타고 소매치기를 시켰다. 소매치기해서 생긴 돈으로 술, 담배 등 탈선의 생활을 했단다. 그런 생활을 하느라 학교를 오지 못했고 아버지는 숨바꼭질 하듯 아들을 찾아다니느라 마음고생을 했다. 뿐만 아니라 다른 아들 역시 불량한 애들과 어울려 카바레를 드나드는 등 탈선하다가 학교를 그만 두게 되었단다.’ 그래서 아버지는 50대 초반인데 자식들 걱정에 그렇게 늙었단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사람이 누구를 만나느냐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며 만나는 짧은 순간이 일생을 좌우한다.” 고 했다. 아버지는 만남의 중요성을 여러번 강조 했다.



#2. 서울 파고다 공원 뒤 판자 집에 살던 한 가족 3명이 6.25가 발발하자 피난길에 나섰다. 그런데 집에서 나와서 몇 미터도 못가서 아버지는 날아오는 총탄에 맞아 돌아가셨다. 어머니와 아들은 어렵게 한강을 건너 수원을 지나 오산까지 왔는데 인민군을 향한 미 공군 폭격에 어머니마저 숨지셨다. 졸지에 고아가 된 6살짜리 아들은 너무 어려서 자신이 고아가 된 줄도 모르고 사람들을 따라서 목적지도 없이 가다가 다다른 곳이 온양이었다. 온양에 들어서자마자 또다시 폭격으로 날아온 기왓장에 맞아 쓰러져 정신을 잃었다. 기왓장에 묻힌 아이를 사람들이 꺼내보니 오른 팔이 상했다. 그래서 종래 그 팔을 잘라야만 했다. 고아로, 거지로 떠돌며 목숨만 연명하다가 서울로 다시 돌아왔으나 서울역 주변 불량소년들에게 잡혀가서 밥과 돈을 얻어다가 왕초에게 바쳤고 드디어는 도둑질도 시켰다. 밥이나 돈을 조금 가져오면 죽지 않을 정도로 때렸다. 어느 날 도둑질 하다가 남대문 경찰서에 잡혀가서 전 형사에게 조사를 받는데 너무 어린 아이라 불쌍하게 본 전형사의 도움으로 충남 홍성의 고아원에 보내졌지만 거기서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원장의 착취가 심해 대전으로 도망쳤다. 그러나 대전역에 내리자 여기서도 불량소년들에게 잡혔는데 밥을 구걸해 오고 도둑질을 강요당했다. 이런 생활을 되풀이 하는 중 한쪽 팔에 쇠갈쿠리를 한 R. A. Torry 라는 미국 목사를 만나 세계 기독교 봉사회 대전 의수족 센터에서 의수를 하게 되었다. 토리 목사는 미국으로 가고 후임으로 온 두 팔이 다 의수인 존 스텐스마가 소년을 대전의 한 중학교에 입학시켜 주어 졸업을 할 수 있었고 그 후 경남 거창고등학교에 가서 공부를 하게 되었다. 거기서 훌륭한 선생님 전 영창 교장을 만났고 그 뒤 전 교장은 일생의 길잡이가 되어 주었다. 고등학교에서 우등생은 못 되었어도 모범생으로 3학년 때는 학생회장도 되었다. 졸업할 무렵 대학 입학원서를 써야 하는데 호적 초본이 필요했다. 그러나 호적이 없는 이 학생은 마침 같은 반 친구 아버지인 호적계 직원의 도움으로 법적 수속을 밟아 김 형식 이라는 이름으로 호적을 갖게 되었다. 김 형식은 서울 중앙대학교 사회사업과를 졸업하고 풀브라이트 장학생 시험에 합격하여 영국 맨체스터 대학교 대학원을 마치고 호주 모나쉬 대학교에서 사회 정책학 박사학위를 획득하고 귀국하여 중앙대학교에서 교수로 봉직한 후 지금은 은퇴했다. 삵 괭이를 피하자 호랑이를 만나듯 고난이 연속되는 천애 고아 김 형식에게 한쪽 팔이 의수인 미국인 R. A. 토리목사와 두 팔이 다 의수인 존 스텐스마 그리고 그에게 불굴의 투지를 심어준 전 영창 교장과의 만남은 나락에 빠질 수밖에 없는 한 소년에게 구세주 같은 ‘소중한 만남’ 이었다.



‘복지’ 라는 말이 언제부터인가 행복한 사회를 만드는 키워드로 떠오르고 있는데 복지가 구호에 그치지 않고 김 형식 교수의 경우와 같이 절체절명에 처한 사람에게 희망의 씨앗이 될 수 있는 ‘만남’ 이 진정한 복지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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