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기원 신성대학교 사회복지과 교수

신기원 신성대학교 사회복지과 교수
신기원 신성대학교 사회복지과 교수

 

얼마 전 시립도서관에서 겪었던 일이다. 열람실에서 책을 보다가 컴퓨터를 쓸 일이 있어서 시청실로 갔다. 컴퓨터작업을 한참 하고 있는데 입구 근처에서 웬 남성이 여직원과 실랑이 하는 소리가 들렸다. 중년의 남성은 시청각실을 퇴근시간에 맞춰 오후 6시까지 열어야지 왜 1시간 일찍 닫느냐고 하였고 중년의 여직원은 일요일에는 규정상 오후 5시까지만 운영한다고 하였다. 그러자 남성은 이용자들에게 물어보자며 시청각실에 있는 사람들에게 양해를 구한 후 오후 6시까지 운영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었다. 그러자 몇 몇 사람들이 찬성한다고 하였다. 남성은 용기를 얻어 여직원에게 “봐라. 6시까지 운영하는 것에 찬성하지 않느냐”며 당장이라도 수용할 것을 요구하였다. 그런데 내 옆자리 젊은 여자가 손을 들며 “저도 6시까지 운영하는데 찬성하지만 5시까지 운영하는 데는 다 사정이 있을 테니까 이런 의견을 관장님께 전달해서 다음 번 부터 실시했으면 좋겠다”고 하였다. 6시까지 연장할 것을 주장했던 남성도 일보 후퇴하여 당장 오늘부터 시행하자는 것은 아니었다며 도서관에 이런 의견을 전달해서 반영해달라고 하며 사람들에게 소란을 피워 죄송하다고 하였다.

집으로 돌아오며 그 남자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사실 나는 그 남자를 귀찮은 존재로 여겼었다. 시청각실에는 컴퓨터를 2시간만 사용하도록 되어 있었고 오후 5시까지 운영한다고 공지가 되어 있었다. 나 역시 아쉬운 점이 있었지만 규정이 그렇게 되어있으니 따르자고 마음먹었다. 그런데 그 남자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 남자에 대해 꼴통이 나타났구나 라는 심한 생각도 했었다. 규정이 있으면 따라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는 규정이 있으면 대체로 따르는 편이다. 규정이 나에게 불편해도 악법도 법이라는 생각에 지키려고 노력한다. 정 불편하면 절차에 따라서 그것을 개정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사회현상에 대해 비판적이고 진보적인 성향을 띤 것 같지만 실제 행동하는 것을 보고 냉정하게 따져보면 보수적인 면이 강하다. 교직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이 이런 면에 영향을 주기도 했을 것이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보면 그 남자의 행동을 잘못됐다고 얘기할 수 없다. 그는 규정이란 절대적인 것이 아니고 시민의 편의를 위해서는 변경도 가능하다는 것을 주장하였기 때문이다.

이와 비교할 수는 없지만 4년 전 세월호 침몰사건을 보며 큰 충격을 받았다. 특히 가만히 있으라는 선내방송을 듣고 가만히 있었기 때문에 수장당할 수밖에 없었던 수백 명의 학생들을 생각하면 지금도 불쌍한 생각이 든다. 그 당시 그 말을 따르자고 했던 선생님들을 생각하면 말할 수 없는 애처로움이 느껴진다. 만약 내가 그 배에 탔던 선생님이라면 어떻게 했을까. 나의 성향으로 볼 때 나 역시 학생들에게 선내방송에 따르라고 했을 것이다. 그래서 학생들과 함께 저 하늘의 별이 되었을 것이다. 승객의 입장에서 선내방송은 믿고 따를 수밖에 없는 권위를 갖는 것인데 어떻게 그 말을 의심하고 따르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런 이유 때문인지 당시 살아남은 학생들은 선생님 말을 안 듣고 말썽 피우던 학생들이었다는 유언비어가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살아남은 학생들에 대한 모독이다. 살아남은 학생들은 죄책감을 가져서도 안된다. 배가 다 침몰되지도 않았는데 저 혼자만 살겠다고 탈출에만 몰두했던 선장을 비롯한 관계자들이 죄책감을 가져야지 살아남은 선생님이나 학생들이 죄의식을 가질 필요가 없다.

세월호사건을 보면서 선내방송이 갖는 권위와 무관하게 사실 확인을 한 후 결정을 내려야 한다는 교훈을 얻었다. 이것은 권위에 대한 도전이나 반발이 아니라 살아남기 위한 최소한의 몸부림이다. 사회적 신뢰가 부족한 우리의 현실을 고려하면 이는 각 개개인이 취할 당연한 조치이다. 합리적인 행동이지만 안타까운 행동이다. 또한 도서관사건(?)을 겪으며 생활에 불편을 초래하는 규정에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이의를 제기하고 대화와 타협을 통해서 풀어가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 우리사회도 이제 그럴만한 능력을 갖춰가고 있는 것 같다. 규정과 현실 사이에 사실 확인과 문제제기 그리고 협의에 의한 해결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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