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근형 청주시청원구 과표팀장

조근형 청주시청원구 과표팀장

좋은 아버지가 되고 싶었다. 30대 후반 늦깎이 결혼을 하고 딸이 태어나면서 밤하늘을 바라보며 결심했는데 현실의 나는 영 아닌 듯싶다. 아마도 가장 큰 원인이 술이 아닌가 한다. 술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아이들과의 대화나 여행보다는 지인들과의 술자리가 더 중요하다고 변명하면서 살아온 것이다.

‘어느 날 문득 거울을 바라보니 그 안에 아버지가 있더라’라는 글을 본 적이 있다. 요즈음 내가 자주 느끼는 감정이다. 30대에는 전혀 느낄 수 없었는데 나도 이제 돌아가신 아버지의 모습과 닮은 50대 중반의 나이가 됐다. 이제야 정말 아버지를 이해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언젠가부터 우리 사회에서 유행처럼 돌아다니던 말이 있었다.

‘할아버지의 경제력, 엄마의 정보력, 아빠의 무관심이 공부 잘하는 아이를 만든다.’

좋은 아버지가 되기 위해서 아버지는 침묵을 강요당하기도 했고, 반대로 무거운 책임감을 부여받기도 했다.

‘부성의 위기 시대’라는 말은 이제 낯선 단어가 아니다. 집에서 아버지의 자리는 점점 줄어든다. 밤낮없이 일해 자녀 뒷바라지를 하고, 부모를 모시고, 자신의 노후까지 대비해야 하는 가장의 삼중고를 진실한 마음으로 헤아려주는 사람이 없어 보인다. 가족을 위해 희생한 대가치고는 너무 쓰다는 것이 이 시대 아버지들의 고민이다.

권위주의적인 폐해가 사회적인 문제가 되면서 어느새 제자리에 있어야 할 순기능적 권위마저도 부정되고 있다. 아이들에게 친구 같은 아버지를 요구하면서 항상 곁에서 너그럽고, 좋은 게 좋다는 식으로 방관하는 아버지가 올바른 아버지상으로 오인되기도 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자녀 교육의 중심은 점점 어머니가 되고, 아버지는 조력자로서의 역할만 강조되는 것이 현실이다. 한 마디로 부성애가 모성애를 거드는 하나의 도구에 지나지 않는 취급을 받고 있다.

요즘 나는 아버지로서 아버지 노릇하기가 정말 힘들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이럴 땐 어떡해야 하는 거지?’ ‘이거 내가 이래도 되는 거야?’ ‘야단만으로 해결되는 거야?’ 아니면 ‘매를 들어야 되는 거야?’ ‘이것도 아니면 아예 모른 척하고 지나가야 되는 건가?’ 그러고는 끊임없이 ‘내가 아버지 노릇을 제대로 하고 있나?’ ‘내가 정말 아버지다운가?’하며 자책한다.

존경받는 아버지가 좋은 아버지다. 다시 짚어보는 아버지라는 존재는 기분이 좋을 때 헛기침을 하고, 겁이 날 때 너털웃음을 짓는 사람이다.

아버지란 사람은 아이가 힘들어할 때 겉으로는 “괜찮아, 괜찮아”하지만 속으로는 마음 아파하는 사람이다. 아버지의 마음은 먹칠을 한 유리로 돼 있다. 그래서 잘 깨지기도 하지만, 속은 잘 보이지 않는다. 아버지는 마음껏 울 장소가 없기에 슬프다. 아버지가 아침 식탁에서 성급하게 일어나서 나가는 직장엔 즐거운 일만 기다리고 있지는 않다. 아버지는 머리가 셋 달린 용과 싸우러 나간다. 그것은 피로와 끝없는 일과 직장 상사에게서 받는 스트레스다.

아들, 딸이 밤늦게 돌아올 때 어머니는 열 번 걱정하는 말을 하지만, 아버지는 열 번 현관을 쳐다본다. 아버지는 아이들과 마주치는 횟수가 엄마와 다르기 때문에 다른 역할이 필요하다. 세상을 아름답게 보며 아이들을 다 받아들일 수 있는 아버지, 그러면서도 상당한 유연성을 가지고 아이들을 대하는 아버지라면 좋은 아버지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결국 아버지는 자식의 모든 것을 품어 소화시키는 역할을 해야 하며 ‘답답하고 꽉 막힌 사람이다가도 금세 모든 것을 포용할 수 있는 모습으로, 한없이 무섭고 엄하지만 이내 선한 모습으로 돌아와야 할 때를 잘 알아야 하는 사람’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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