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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득진 작가와 떠나는 쿠바여행(44) 헤밍웨이에게 바친 칵테일
김득진 작가와 떠나는 쿠바여행(44) 헤밍웨이에게 바친 칵테일
  • 김득진
  • 승인 2018.05.10 18: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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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뇨로 고생하던 헤밍웨이 위해 만들어진 칵테일 '다이끼리' 그가 자주 찾던 라 플로리디따 흑입 바텐더가 고안해 낸 건데 한 모금 마셔도 머리 띵해서 정신이 번쩍 든다.
김득진 작가
김득진 작가

 

(동양일보 김득진 기자) 오비스뽀 거리로부터 시작되는 쿠바 여행, 낡아 빠진 건물 속이지만 곱게 페인트 칠 된 라 플로리디따는 이정표 노릇을 톡톡히 한다. 어두워지길 기다렸던 칵테일 바는 네온사인까지 켜서 랜드 마크 역할을 떠맡아 여행자를 빨아들인다. 그들은 쿠바에서 쓴 노인과 바다로 노벨문학상 받은 헤밍웨이 발자취 더듬으러 온 사람들이다. 체 게바라가 죽어 길이 된 것처럼 헤밍웨이는 노인과 바다로 노벨 문학상 받아 라 플로리디따 칵테일 다이끼리로 남겨졌고, 끝 모르는 쿠바 사랑은 오비스뽀 거리 초입에서 여행자들 발목을 잡아채는 거다.

홀을 기웃거린 순간 구레나룻 텁수룩한 헤밍웨이가 벙긋 웃으며 들어오라고 꼬드긴다. 곁에는 쿠바 혁명에 생애 바친 피델 카스트로 모습도 보인다. 낚시광 헤밍웨이가 개최한 대회에서 상을 받은 피델이지만 혁명 성공 후 앞서 맺은 인연 따윈 무시하고 그를 미국으로 쫓아냈다. 하지만 라 플로리디따는 호객꾼 역할을 해 줄 헤밍웨이를 믿고 그를 위해 바칠 술을 개발해 냈다. 칵테일 바 사장 예언에 따라 다이끼리는 아바나 다운타운에서 호객꾼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다. 홀의 웃고 떠드는 소리가 퍼져나는 골목. 대문호 발자취 더듬으려면 발을 들일 수밖에 없다며 성큼 문을 연다. 부풀어 터져나는 실내 공기에 설핏 가죽 냄새가 밴 것 같더니 차츰 견과류 냄새로 바뀌며 코를 후벼 판다. 생산지나 숙성도에 따라 꿀맛이 나기도 한다는 시가, 헤밍웨이가 죽어서도 그 맛과 향기를 잊지 못해 호객꾼 노릇을 자청한 게 틀림없다.

서성거리는 동안 시선은 붉은 유니폼 입은 직원 세 사람 손놀림을 쫓아간다. 마티니 잔을 일렬로 늘어놓은 바텐더가 아바나 클럽 라벨 붙은 병을 믹서에 한동안 기울인다. 또 다른 바텐더는 라임 주스를 덧 따른 뒤 각얼음을 그득 채운다. 곧이어 요란한 소리가 헤밍웨이 호탕한 웃음처럼 홀을 둥둥 떠다닌다. 뿌옇게 색깔 변한 걸 신호로 스위치가 꺼지고 일렬로 늘여놓은 마티니 잔에 믹서 속 걸쭉한 액체를 따르는 바텐더, 워낙 빠른 손놀림 탓에 시선이 움직임을 따라 잡지 못한다. 뒤에 선 여자는 손님들이 헤밍웨이를 기억하는 한 칵테일 품격이 떨어질 까닭이 없다며 빈티나는 빨대를 핀셋으로 집어 다이끼리 잔에 바삐 꽂는다. 바텐더 두 명은 럼주로 만든 여러 가지 칵테일이 있는 데도 헤밍웨이에게 바쳤다는 걸 강조하려고 줄곧 다이끼리만 만들어 낸다. 술 즐겨 마시던 헤밍웨이가 당뇨 때문에 애 먹었다는 걸 알고 그걸 고안해 냈던 흑인 바텐더가 콜론 공동묘지에서 지켜보는 탓일까.

한참 만에 차지한 의자에 엉덩이 걸치고 메뉴판을 들여다본다. 다이끼리 한 잔에 6쿡. 헤밍웨이 유명세 탓인지 가격이 장난 아니다. 그 돈이면 빨라다르 식당에서 피자 20판 넘게 먹을 수 있지만 손님이 연이어 밀려드는 게 신기하다. 칵테일 주문하려다 말고 홀을 한 바퀴 둘러본다. 천장엔 쿠바에서 흔해빠진 별 모양 샹들리에가 누렇게 변색된 채 걸려 있다. 시가를 오래 피우면 기관지며 폐가 저렇게 망가질 수 있다는 걸 증명해 보이지만 입안에 머금었다가 향기만 음미하고서 뱉어내는 요령을 귀동냥한 뒤 걱정을 덜어낸다. 기념품 코너가 갖춰진 등 뒤에선 헤밍웨이를 다시 불러들이느라 왁자지껄하고, 화답하듯 티셔츠 속에 능청스레 자리 잡은 그가 호객행위를 서슴지 않는다. 한국에선 천덕꾸러기가 된 재떨이, 열쇠고리에도 사인이 들어있고, 야구 모자와 머그잔에도 그의 얼굴은 빠지지 않는다. 쿠바에선 귀한 대접받는 부채에도 그의 사인이 보이지만 값이 너무 비싸 시큰둥한 표정으로 살피기만 한다.

바텐더 뒤 바로크풍 돌기둥 두 개가 세워진 가운데 코발트빛 바다가 범선 몇 척을 보듬고 있다. 우뚝 솟은 등대를 끼고 아바나 항구를 벗어나는 범선은 성 프란시스코 대성당과 성 크리스토발 성당 위용이 두려운지 속도를 줄이는 모습이다. 질 좋은 쿠바산 설탕이나 시가며 커피를 헐값에 실어내는 동안 하늘에서 벼락이라도 떨어질까봐 노심초사하는 듯하다. 그림 따위엔 관심 없다는 듯 홀에 앉은 사람들은 헤밍웨이 얘기로 바쁘다. 그때서야 다가온 바텐더에게 다이끼리 한 잔을 주문하고, 손님들 모습을 머릿속에 그려 나간다. 시가를 물고 호탕한 웃음을 흘리거나 헤밍웨이 흉상 배경으로 사진을 찍기도 하는 그들 얼굴은 요트를 타고 바다로 나가서 청새치 낚은 것보다 더 밝고 환해 보인다. 바텐더 세 사람은 다이끼리 명성을 해치면 안 된다는 듯 주방과 홀을 바삐 오가며 럼주와 라임 주스를 믹서에 따르고 각 얼음을 넣어 연거푸 갈아댄다.

한참 만에 날라져 온 다이끼리, 스트로로 한 모금 빨아들였을 뿐인데 인상을 찌푸려가며 머리를 싸쥐도록 한다. 흑인 바텐더는 얼마나 많은 시행착오를 거쳐 이토록 머리 띵한 칵테일을 고안해 냈을까. 헤밍웨이가 적당히 술에 취했을 때 자리 털고 일어나게 하려면 이 정도는 돼야한다고 무릎을 쳤을 테고, 혼미하던 정신이 맑아져서 다시 글쓰기에 매달릴 수 있을 거라고 엄지를 치켜 올렸겠지. 노인과 바다 집필에 몰입해서 노벨문학상 받도록 한 칵테일 한 잔 값이 6쿡이니 뒤늦게 비싸단 생각을 지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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