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일보 박장미 기자) 충북 옥천이 낳은 한국시문학사의 우뚝한 봉우리 정지용(鄭芝溶·1902~1950) 시인의 문학정신을 기리고 한국문단을 이끌어갈 역량 있는 시인 발굴을 위해 제정된 ‘지용신인문학상’ 시상식이 11일 오전 11시 옥천군청 대회의실에서 열린다.

동양일보와 옥천문화원이 주관하고 옥천군이 후원하는 24회 지용신인문학상 당선작은 박한(32·사진·경기 수원)씨의 시 ‘순한 골목’이 선정됐다.

시 ‘순한 골목’은 사물과 사물을 바라보는 시적 자아를 참신한 상상력으로 형상화시킨 탁월한 작품이라는 평을 받았다. 심사는 유종호 문학평론가와 오탁번 시인이 맡았다.

당선자에게는 500만원의 상금과 함께 상패가 수여된다. 다음은 당선자 박한 작가와의 일문일답이다. 박장미 기자


-당선 소식을 듣고 가장 먼저 생각난 사람은.

어머니와 아버지, 형과 형수, 하나뿐인 조카 그리고 지금 사랑하고 있는 한 사람, 이 외에도 큰 가르침 주신 이영진 선생님, 저를 시의 세계로 이끌어준 김일영, 허은실 시인, 함께 수학하며 고생한 정노윤 시인, 백수경 누나, 그리고 함께 시를 썼던 사람들. 차례차례 생각해 보면 많은 분들께서 절 응원해 주고 있었다는 생각에 목이 메고 이 자리를 빌려 모든 분들에게 진심으로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싶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당선작 ‘순한 골목’은 어떻게 탄생한 작품인지.

“그러니까 시가 날 찾아왔다.” 라는 네루다의 시구처럼 시는 제게 그렇게 낭만적으로 찾아오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날도 책상 앞에 앉아 오래된 풍선처럼 바람 빠진 기억들을 떠올리며 모니터 위 커서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불현듯 무엇인가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의 환기가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말로 옮겨 적었을 때, 그때 부풀어 오른 문장들이 바로 ‘순한 골목’이 됐습니다. 앞서 말한 네루다의 시구에 다음 구절이 “난 모른다” 인 것처럼, 저도 이 시가 왜 갑자기 내게 찾아왔는지 모릅니다. 다만 제 안에 체화 된 어떤 경험과 그 세계를 둘러싸고 있던 자아가 어느 지점에서 타협이라도 한 듯, ‘잠시 안개가 걷힌 순간’처럼 그렇게 탄생했습니다.


-당선작을 통해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순한 골목’은 우울해 하지 않습니다. 좁은 골목에 모여 사는 순한 삶들을 동정하지 않으며, 또한 슬퍼하지도 않습니다. 이러한 태도를 세계를 그대로 받아들이며 삶의 한가운데를 담담히 걸어가고자 하는 의지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치열한 경쟁과 타인과의 비교를 통해 끊임없이 자기증명을 해내야 하는 사회에서 이 시가 그러한 삶을 긍정해 낼 수 있는 힘이 됐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작품을 구상할 때 특별히 의식하는 것이 있는지.

첫째는 설명을 피하는 것입니다. 관념적이거나 피상적인 것들을 지양하고 우리의 삶과 맞닿아 있는 지점을 보여주고자 노력합니다. “동무여, 이제 나는 바로 보마” 라고 말한 김수영 시인처럼 과장이나 억지가 아닌 삶의 진실과 실체를 그대로 드러내는 시가 좋은 시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는 운율입니다. 시는 원래 노래였고 그 구전적인 성질을 잃어버린 탓에 대중에게서 멀어진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좋은 시는 호흡마저도 아름다워야 한다는 제 생각이 비약일지 모르나, 읽었을 때 가벼운 운율이 느껴지도록 각각의 표현에 신경을 쓰는 편입니다.


-시를 쓰기 시작한 것은 언제부터였는지. 특별한 계기가 있었다면.

시를 본격적으로 접한 건 대학 때였습니다. 학창시절 교과서에서 배운 신동엽 시인의 시에 큰 감동을 받은 적도 있었고, 또 어머니께 시를 써서 선물한 적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제가 조우한 몇 안 되는 시와의 교감이었습니다. 이 이후 대학의 어느 교양수업에서 한 시인 분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제 삶의 방향은 전혀 생각지도 못한 곳으로 흘러버렸습니다.

이전에 저는 발언에 대한 욕구가 굉장히 많았습니다. 자랄수록 세상은 어딘가 이상해 보였고 저는 그런 세상에 끊임없이 이야기를 건넸습니다. 시를 접하기 전까지 저는 영상이라는 매체를 통해 그것들을 말해 왔는데 시는 무엇인가 달랐습니다. 누군가를 비난하거나 배척하는 계몽주의나 시시비비의 영역이 아니었습니다. 한 편의 좋은 시는 모든 구절구절이 새로움 그 자체였고 한 번도 가보지 못했던 세계였습니다. 세계를 새롭게 창조해 내며 갈등을 해소해 버리는, 바로 이 지점이 시와 시가 아닌 언어의 구분이지 않을까 합니다. 저는 세상을 바꾸고 싶었지만 시는 그런 세상을 긍정해 버리는 힘이 있었습니다. 이것은 차원이 다르다고 생각했습니다. 만화나 다큐멘터리 같은 것과는 속된 말로 게임이 안됐습니다. 이 이후로 시는 제게 가장 정확한 오답이자 가본 적 없는 지도가 되었고 현재까지 창작을 멈출 수 없게 된 이유가 됐습니다.


-시의 소재는 어디서 얻는지.

모든 시인에게 그렇듯 우리가 오감으로 느끼는 생생한 삶 속이지 않을까 합니다. 삶의 여러 모습과 그 안에 사람들, 자연, 여러 사물들…. 하지만 무엇보다 제 자신이 가장 큰 소재라고 생각합니다. 시는 ‘몸으로 부딪쳐 얻어내는 언어’라고 제가 일전에 수학했던 선생님께서 해주신 말씀이 있습니다. 또한 그것이 자기 고백으로 승화돼야만 좋은 시가 될 수 있다고도 말씀 하셨습니다. 해서 저는 가장 좋은 소재는 자기 자신이며 제 몸이 통과한 모든 지점들이 시의 소재라고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앞으로 어떤 시인이 되고 싶은지.

앞으로 어떤 시인이 될지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사실 깊이 생각해 본 적 없는 질문이고 어떠한 시인이 될지는 제가 아닌 시가 결정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단지 시와 언어가 이끄는 대로 따라가며 그들에게 몸을 내어주는 것이 제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그 과정에서 몽매에 빠지거나 사랑이라는 시의 기본적인 정신을 잃지 않도록 노력을 다할 뿐입니다.


-시인으로서의 앞으로의 계획은.

지속적인 집필활동과 작품발표, 그리고 시집 발간이 목표입니다. 많은 신인들이 데뷔와 첫 시집 사이에서 가장 많이 길을 잃는다고 합니다. 고된 창작의 고통과 혹은 이미 시인이 되었다는 타성에 젖어 그럴 수 있겠다 생각합니다. 하지만 저는 이것이 끝이 아닌 더 큰 시 세계로의 도전이라는 생각으로 꾸준히 매진하여 시집이라는 결실을 만들어낼 계획입니다.

동양일보TV

저작권자 © 동양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