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일보 박장미 기자) 2018 충북여성백일장이 지난 12일 오전 10시 청주노인종합복지관에서 열렸다. 여백문학회가 주최·주관하고 동양일보와 뒷목문학회가 후원한 이 백일장은 참신하고 역량 있는 여성문학인을 발굴, 충북지역 여성문학을 활성화하기 위해 마련됐다. 시상식은 같은 날 오후 4시 30분 동양일보 아카데미홀에서 열렸으며, 모두 20명이 수상했다. 시·수필 부문 장원 수상작과 수상자 인터뷰, 심사평을 싣는다. <편집자>


●시 장원작

연못


쉿! 달이 연못 속으로 뛰어들고 있어요

바람의 떠도는 본능처럼

아무도 못 말려요

껍데기 달이 가만히 바라보네요

달은 연못의 속을 모른 척해요

넓게 드리운 연잎이며

구멍 뚫린 뿌리도 모른 척해요

밤새 소문내는 개구리울음도 개의치 않아요



달의 잎이 물결 위에 하늘거려요

벌들도 궁금한 물의 꽃



새벽녘이 아픈 건 달이 아니고

연못이란 걸 모른 척해 주세요

돌멩이를 던져 속울음을 들으려 하지 말았으면 해요



바람만 불어도

주름처럼 드러나는 갈비뼈



소금쟁이 발끝에도 둥근 상처가 번져요

물잠자리 날갯짓에도 몸살을 앓아요



검은 물빛 앞에 얼굴도 비추지 말아 주세요



하늘도 어쩌지 못하는

저 고인 가슴





●수상자 임진순씨

임진순씨
임진순씨

 

“한없이 부족한 글을 뽑아주신 심사위원님과 동양일보에 마음을 다해 감사드립니다. 힘이 돼준 김혜경·신영순 선생님, 사랑하는 민정·세현이, 남편과 기쁨을 나누고 싶습니다.”

2018 충북여성백일장 시 부문 장원은 ‘연못’를 출품한 임진순(40·사진·청주시 봉명동)씨가 거머쥐었다.

임씨의 시 ‘연못’은 주제를 시적언어로 선명하게 그려내는 솜씨가 탁월했다는 호평을 받으며 장원 작품으로 선정됐다.

중학교 때부터 시 읽는 것을 좋아했지만 문학과는 동떨어진 삶을 살던 임씨는 스무 살때 글에 대한 갈증을 풀어보려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서른 살 초반까지 꾸준히 일기를 쓰던 그는 지인의 소개로 청주시 1인 1책 프로그램을 알게 됐다.

“1인 1책 프로그램을 통해 책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부끄러운 책이 나왔습니다. 그런데 이 책이 ‘1인1책 우수도서’ 선정되자 ‘더 열심히 글을 써야겠다’하는 용기와 자신감을 갖게 됐습니다.”

그가 시를 본격적으로 배우기 시작한 것은 3년 전이다. 1인 1책 프로그램을 통해 용기와 자신감을 얻은 그는 사창동 주민센터 시창작반에서 김혜경 시인과, 금천동 1인1책 반에서 신영순 시인에게 글을 배웠다. 이번 백일장에 참가한 것도 김혜경 시인과 신영순 시인의 권유였다.

“앞으로 더 열심히 쓰라는 뜻으로 준 상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물과 자연에 대해 그리고 스스로에 대해 더 많이 고민하고 더 많이 질문하겠습니다. 포기하지 않고 오래오래 시를 쓰겠습니다.” 박장미 기자



●수필 장원작

사진

며칠 전 이사를 했다. 직장 때문에 약 2년 여를 주말부부로 떨어져 지내던 우리가 두 집 짐을 합치는 큰 이사이기도 했다. 덕분에 오랫동안 꺼내보지 않았던 상자들을 다시 꺼내어 정리해 볼 수 있는 시간을 갖게 되었다.

어느 작은 상자에는 이미 성인이 되어버린 딸아이의 첫 번째 발치된 유치가 솜에 싸여 날짜가 적힌 쪽지와 함께 들어있기도 했고, 결혼기념일마다 남편이 한 송이씩 사다주었던 장미꽃이 잘 말려진 상태로 여러 송이가 들어있기도 했다.

그러던 중 어느 순간, A4 용지 크기의 상자 하나를 열어보고 나는 왈칵 눈물을 쏟고 말았다. 그 속에는 20여 년 전 세상을 떠나신 아버지께서 돌아가시기 직전, 버려달라고 당시 특별히 내게 부탁하신 사진들이 들어있었다.

젊은 시절의 내 부모님의 모습들, 내가 세상에 태어나기도 전, 큰언니 초등학교 첫 소풍에 따라갔던 상고머리의 시골아이 작은 언니와 아버지, 마당에서 옹기종기 모여 앉아 놀고 있는 우리 형제들의 모습이 담긴 사진들이었다.

아버지는 당신이 세상을 떠나시기 전 이 모든 것들을 정리하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때 나는 어떤 이유에선지는 모르지만 그렇게 하면 안 될 것만 같아 아버지의 부탁을 조용히 거절했다. 물론 아버지는 내가 그것들을 모두 태워버린 줄 아시고 돌아가셨다.

사진이 주는 그 시절의 기억들은 불가역적인 추억일 것이라는 것을 어렴풋이나마 내가 알고있기 때문이었는지 모른다. 사람은 슬플 때 사진을 찍지는 않는다. 너무 기쁘거나 즐거운 날에, 또는 바람처럼 지나가버리는 생의 매 순간들 속에서 절대로 놓치고 싶지 않은, 저 세상까지라도 가져가고픈 소중한 한 찰나를 부여잡고 싶을 때 사진을 찍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므로 한 장의 사진 속에는 그것을 찍은 사람의 그 무렵의 생각과 희망, 고민까지도 들어있는 한 컷의 장면 이상이 담겨 있다고 생각한다. 병석에서 총기도 기력도 잃어가던 아버지는 당신의 추억들이 담긴 사진들을 선별하며 남기고 가실 정신적 여력도 시간도 없으셨을 것이므로 내게 그런 부탁을 하셨을 것이다. 늘 착하게 말 잘 듣던 내가 말씀을 거역하고 20년 후에 이렇게 사진을 펼쳐놓고 그리움에 눈물을 쏟을 줄을 모르셨을 것이다. 다시 생각해 봐도 매우 잘한 일이라고 스스로 자찬하고 싶다. 그렇지 않았다면 어디에서도 다시는 찾아볼 수 없는 그 많은 추억들이 사라져버리고 말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밤색 양복을 깔끔하게 차려 입은 중년의 잘 생긴 남자 옆에 어딘가 어설프게 맞지 않은 교복을 입은 여자 아이가 즐거워서 죽겠다는 표정으로 활짝 웃고 서 있다.

‘우리 희준이가 벌써 어엿한 중학생이 되었구나’

‘아버지와 함께 와서 신나고 좋아요’

사진은 그 날이 나의 중학교 입학식 날임을 말해주고 있었다.

사진에게 말한다.

‘아버지, 사진 안 버리길 잘했죠?’

‘말을 안 들어서 나빴지만 잘했구나’

사진 속의 아버지는 말씀하신다.

이번 기회에 모처럼 내가 갖고 잇는 모든 사진들을 꺼내어 기억과 함께 추억을 정리해보는 시간을 가져보기로 한다. 그래서 훗날 언젠가 딸아이가 내가 이 세상에 있지 않을 때, 자신과 함께 함박웃음을 짓고 서 있는 나를 볼 수 있는 멋진 사진 한 장을 골라 놓아야겠다.



●수상자 박희준씨

박희준씨
박희준씨

 

“충북으로 이사 온 지 두 달이 됐는데 우연히 충북여성백일장 개최 소식을 알게 돼 충북도민이 된 기념으로 참가를 결정했습니다. 상을 기대한 것은 아니었는데 큰 상을 받게 돼 무척 기쁩니다.”

2018 충북여성백일장 수필 부문 장원은 박희준(56·음성군 대소면)씨로 선정됐다.

그의 수필 ‘사진’은 이삿짐을 정리하다가 20여년 전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기 직전에 버려달라고 부탁했던 사진들을 발견하고, 아버지와의 추억을 떠올리며 지난 삶을 회고하는 내용이다. 기본에 충실하고, 정확한 문장이 돋보였다는 평을 받으며 장원작으로 뽑혔다.

어릴 적부터 무엇인가를 읽고, 쓰는 것을 좋아했다는 박씨. 대학에 입학하면서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등단 욕심은 없었기에 장르를 불문하고 무작정 글만 썼다고 한다. 당시 주로 쓴 것은 시와 단편 소설. 요즘에는 수필을 주로 쓰고 있다. 2017년에는 양구백일장에 참가해 수필부문 장원을 수상하기도 했다.

그에게 있어 문학은 곧 생활 그 자체였다.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일은 지리멸렬한 삶 속에서 그의 숨통을 트이게 해주는 유일한 탈출구였기 때문이다.

박씨는 이번 상을 계기로 좋은 글을 쓸 수 있도록 더욱 열심히 고민할 것이라고 말한다.

“이 상을 앞으로도 글쓰기에 매진하라는 ‘격려의 상’이라 여기고 좋은 작품들을 많이 읽고, 치열하게 글쓰기에 매진하겠습니다.”

성균관대 문헌정보학과를 졸업한 그는 현재 음성 대소초 도서실 사서교사로 일하고 있다. 박장미 기자



●심사평

시의 경우, 예년에 비해 참가작품 수가 많았고 작품의 수준 또한 향상되어 심사위원들이 기쁜 마음으로 심사할 수 있었다.

‘만남’, ‘연못’이라는 쉽지 않은 시제임에도 불구하고 몇몇 작품은 주제를 형상화 하는 실력이 상당 수준에 올라있음을 알 수 있었다.

특히 임진순씨의 시,‘연못’은 심사위원들 모두가 큰 고민 없이 선뜻 장원 작으로 고를 수 있는 수작이었다.

주제를 시적언어로 선명하게 그려내는 솜씨가 탁월했고 ‘연못’을 바라보는 따뜻한 연민을 통해 시인의 깊은 심상을 독백조로 잘 전하고 있다.

‘쉿, 달이 연못 속으로 뛰어들고 있어요.’와 같은 첫 연의 표현은 그 자체로 시의 무대를 차려 놓은 듯한 절창으로 시인의 내공을 엿볼 수 있었다.

‘바람만 불어도 주름처럼 들어나는 갈비뼈’라든지 돌멩이를 던져서 까지 ‘연못의 속울음’을 들으려 하지 말아달라는 표현 등이 시적 감흥을 유지하며 신선한 감동을 선사하고 있다.

선에는 들지 않았어도 일정수준에는 올라있는 작품도 많았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시란 무엇인가’에 대한 이해 부족으로 주제의식이 모호하고 시상을 전개하는 힘이 미약해서 감흥을 주지 못하는 작품이 많았다.

시가 산문에 비해 글의 길이가 짧은 것은, 시는 시가 지니고 있는 함의(含意)와 그것을 풀어내는 언어적 긴장과 시적감흥이 유지돼야 한다는 의미다.

좋은 시 쓰기란 상상이 됐든, 개인의 체험이 됐든, 시적대상을 좀 더 관심 있게 바라보고, 깊은 묵상을 통하여 자기만의 언어로 표현하는 것이어야 한다.

그래야 시를 쓰는 자신이나, 시를 읽는 독자나 시를 통해 위로와 공감을 얻으리라 믿는다.

산문의 경우도 별반 다르지 않다.

수필부문 장원으로 뽑은 박희준씨의 ‘사진’의 경우가 수필의 기본에 충실한 좋은 예가 될 것이다.

아버지가 운명하시기 전에, 모두 버리라고 하신 사진들을 간직하고 있다가, 훗날 이사를 하게 되어 짐을 정리하다 아버지의 사진을 발견하게 된다. 하마터면 흔적 없이 사라졌을 아버지의 사진을 통해 어린 딸로서 아버지와 함께 했던 오랜 추억을 떠올리는 감상을 담담하게 풀어내고 있다. 과거의 추억과 감정이 응축된 한 장의 ’사진‘을 통하여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사진 한 장의 남기고 싶은 미래의 모습을 따뜻하게 그려내고 있다. 응모작품 중 ’수필‘이라는 장르에 가장 잘 부합하고 정확한 문장도 높은 점수를 받는데 한 몫을 했다.

차상 작품인 권민정의 ‘소식’은 국문학과를 당시 집안 사정으로 중퇴하고 오래 직장생활을 하다가, 20대 막바지에 사이버대학 영문과에 진학하여 직장생활과 학업을 병행하여 학사학위를 취득하였고, 몇 년 후 서울의 모 교육대학원에서 영어교육학 석사학위와 교원자격증을 취득하여 현재는 고등학교에서 영어 선생으로 재직하고 있다는 내용으로 새로운 삶을 설계해 나간다는 줄거리였다. ‘합격’이라는 자신의 체험을 ‘소식’이라는 주제와 잘 연결시켜 기쁜 소식을 듣기 ‘전. 후’의 삶이 잔잔한 감동을 주고 있는 점을 높이 평가하였다.

끝으로 시가 됐든 수필이 됐든 스스로 위로받고 행복할 수 있어야 좋은 글을 쓸 수 있다는 말씀을 덧붙이고 싶다.

오늘 수상하신 모든 분들께 축하를 드리며 정진하시기를 바란다. 심사위원 일동



●심사위원 명단(가나다 순)

시 부문

△나기황(시인) △서은경(시인) △신영순(시인) △윤상희(시조시인) △윤현자(시조시인) △이송자(시인) △조철호(시인)

수필 부문

△김길자(수필가) △김다린(수필가) △김송순(동화작가) △박희팔(소설가) △안수길(소설가) △유영선(동화작가) △조성호(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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